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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태양과 해체되는 옛 범선, 기계 문명 시대의 도래

1 전함 테메레르(1838),J M W 터너(1775~1851)작, 캔버스에 유채, 91×122㎝, 내셔널 갤러리,런던
석양이 하늘과 물을 붉은색과 금빛으로 물들인 가운데, 돛을 내린 거대한 범선이 그보다 작은 체구의 검은 증기선에 이끌려가고 있다.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J M W 터너(1775~1851)가 그린 이 그림(사진 1)의 제목은 ‘전함 테메레르(1838)’인데, 두 배 중 어느 쪽이 그 전함일까? 이 그림의 원제는 ‘해체를 위해 최후의 정박지로 이끌려가는 전함 테메레르’다. 저 장대하지만 창백한 범선이 테메레르인 것이다.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7> : 산업혁명의 시대, 속도에 매혹된 화가들

테메레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승리와 프랑스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이름 높은 전함이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던 이 용맹한 배도 증기선 시대가 도래하면서 1838년 결국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됐다. 터너는 그날 마침 템스 강에 갔다가 이 노장의 장례 행렬과도 같은 모습을 보게 됐고,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을 그림에 담았다.

떨어지는 태양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쇠락을 말해주는 듯하고, 그 석양이 만든 찬란한 금빛 구름 휘장은 죽음을 맞는 노병에게 보내는 최후의 경례처럼 보인다. 그리고 증기선이 뿜어내는 불 같은 연기는 그 석양의 마지막 빛과 대구를 이루며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2 비, 증기, 속도-대서부철도(1844), J M W 터너(1775~1851) 작, 캔버스에 유채, 91×121.8㎝, 내셔널 갤러리, 런던 3 생 라자르 역(1877), 클로드 모네(1840~1926)작, 캔버스에 유채, 60×80㎝, 시카오 아트 인스
실제 사건을 묘사한 그림인데도 마치 상징적으로 구성된 것처럼, 이 작품은 저물어가는 옛 문명과 떠오르는 새로운 기계문명의 충돌을 더할 나위 없이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싶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농업중심 사회에서 공업중심 사회로 이행하는 것을 뜻하지만,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영국에서 1780년부터 1840년까지 일어난 대규모 산업화를 가리킨다. 그 변혁의 주요 동력은 터너의 그림 속 증기선에 사용된 것 같은 증기기관의 발명과 그밖의 기술 혁신이었다.

물론 증기기관의 발명만으로 갑자기 천지가 개벽하고, 농업과 가내수공업이 주를 이루던 사회가 기계공업 사회로 변모한 것은 아니다. 영국은 18세기부터 그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봉건사회적 길드가 공장제 수공업으로 전환됐고, 농업의 대형화에 따라 몰락한 군소 농민들이 도시의 노동자가 됐다. 게다가 식민지 개척으로 면화를 포함한 풍부한 자원이 해외에서 들어오고 있었고 해외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8세기 후반에 새로운 방적기가 연이어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공장 시대가 열렸다. 기계 제작에 필요한 철을 가공하는 제철업과 제철을 위한 석탄산업이 발전했으며, 마침내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증기기관으로 대규모 기계를 돌릴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증기선과 증기기관차가 나타나 운송의 혁신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격변을 미술가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어떤 비평가들은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가 위대한 옛것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기계문명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드높은 돛대를 단 창백한 범선 테메레르는 고귀하고 영적으로 묘사된 반면 그것을 끌고 가는 검은 증기선은 무미건조하고 세속적으로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터너의 또 다른 명작 ‘비, 증기, 속도’ (사진 2)를 보면 그가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터너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기차를 보면서 그린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본 다음 그 인상을 바깥에서 본 시점으로 재구성해서 그린 것이다.

당시 많은 영국인은 특별히 목적지가 없어도 증기기관차에 오르곤 했다. 기차라는 새로운 탈것이 주는 그 놀라운 속도감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획기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도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에~”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듯이 기차를 타는 것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런던 토박이 터너는 ‘시골영감’은 아니었지만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이미 영감님이긴 했다.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 풍경이 열차의 빠른 속도와 빗줄기로 인해 끊임없이 변하고 흔들리고 어그러지며 빛과 섞이는 것을 봤고, 또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바람으로 그 속도를 느꼈다. 그는 그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젊은이들 못지않게 온몸으로 받아들여 혁신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다.

‘빛, 증기, 속도’의 과장된 원근법은 그림의 주인공인 증기기관차가 더욱 극적으로 속도감 있게 모습을 드러내게 해준다. 빗줄기와 안개를 뚫고 나타나는 기차의 불빛을 보고 있으면 증기기관의 굉음까지 귀에 들릴 듯 박진감이 넘친다. 고전주의 풍경화들과 달리 거친 붓질로 묘사된 빛과 대기의 떨림이 역동성과 속도감을 더해준다. 이런 작품이 나온 것은 터너가 동적인 에너지에 주목했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업혁명이 모든 것의 속도를 빠르게 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페터 보르샤이트는 그의 저서 『템포 바이러스』에서 산업혁명은 곧 속도의 혁명이었으며 이것은 단지 새로운 운송수단에 의한 속도뿐만 아니라 분업 등 산업 공정의 합리화와 기계 도입에 의한 생산과 업무의 속도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분업 하면 근대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90)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스미스는 고전 『국부론』에서, 그전까지 금·은 화폐를 축적하는 것이 부(富)라고 생각한 중상주의를 배격하면서, 부의 원천은 노동에 의한 생산이고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성의 개선으로 이뤄지며 노동생산성은 분업을 통해 개선된다고 했다. 국부론의 예에 따르면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하루 핀 1개를 제작할 수 있고, 숙련된 사람은 하루 20개를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핀 제작과정을 몇 단계의 전문작업으로 분화시킨 공장에서는 분업과 협업을 통해 노동자 10명이 하루 4만8000개의 핀을 생산해 낸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생산 속도의 향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미스는 또한 개개인의 이기심이 경제행위의 동기이며, 이런 경제행위가 자유경쟁 속에서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조화돼 궁극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했다. 이런 자유주의적 고전경제학은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신흥 산업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그들이 기존의 지배층인 귀족과 지주 계급을 압도하면서, 중상주의적 보호와 통제 정책이 무너지고 자유주의와 자유무역 정책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산업자본가와 임금노동자 계급이 사회의 중요한 두 축을 형성하면서 자본주의사회가 성립한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속도는 하나의 화두였다. 보르샤이트는 이 같은 속도의 변화가 19세기 후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빠른 붓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과 대기의 묘사에 있어서 터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생 라자르 역’(사진 3)을 여러 번 그린 것처럼 인상파 화가들 역시 터너처럼 근대적인 속도의 산물인 기차와 철도역을 주목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symoon@joongang.co.kr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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