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끓는 물에 데쳐 전 부치면 담백한 맛 고깃국에 넣어 끓이면 탱탱하고 쫀득

철을 따지지 않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야채로 버섯은 단연 으뜸이다. 온실에서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어 놓고 톱밥 같은 것에 키우는 팽이버섯이나 새송이버섯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버섯들은 대개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우는 것들이니 제철 아닌 야채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과도한 농약 사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12> ‘맛있다’ 소리 절로 나오는 생표고

하지만 제철이 중요한 버섯이 있다. 재배를 할 수 없어 여전히 산을 헤매며 채취해야 하는 자연산 송이버섯은 가을 딱 한 철만 생생한 생물을 맛볼 수 있다. 나머지 계절에 송이 요리를 하려면 냉동한 송이를 쓸 수밖에 없다.

재배를 하는 버섯 중에서도 표고버섯은 가장 계절을 많이 타는 버섯이다. 물론 표고버섯은 종균을 박은 커다란 참나무를 비닐하우스에 놓고 온도를 맞추어 놓으면 사시사철 생생한 것들이 생산된다. 하지만 원래 표고버섯의 계절은 날이 따뜻하고 습기가 적당한 봄부터 가을까지며, 그중에서도 봄에 가장 좋은 표고가 나온다.

표고버섯의 등급은 가장 고급인 백화고, 그 바로 아래 등급인 흑화고, 보통 흔히 먹는 등급인 동고 등으로 나눈다. 이것은 종자가 달라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품질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대개 명절 때 선물용으로 전시되는 값비싼 고급 표고버섯이 바로 백화고를 말린 것이다. 말 그대로 하얀 꽃 같은 표고다. 표고를 재배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무튀튀한 참나무 등걸에 피어나는 이 표고버섯이 하얀 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그저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꽃보다는 거북등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

백화고는 버섯의 갓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것이 심해 하얀 부분이 많이 드러나 있는 표고다. 아니, 검은 갓이 갈라져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하얀 버섯에 갈색의 융기가 올라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하얀 부분이 많이 노출돼 있다.

이 백화고는 육질이 가장 단단하고 향도 좋다. 그런데 이것은 겨울 지나고 맞은 봄날의 건조한 기후에서만 생산되고, 그나마 버섯 천 개 중 두세 개만이 백화고가 된다고 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이렇게 귀하니 수확하는 사람들에게는 ‘하얀 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이 명명에는 농민들의 기쁨과 찬탄이 스며 있다.

이슬이나 습기를 많이 먹으면 이보다 좀 무르고 축축한 버섯이 되는데, 그것이 흑화고다. 버섯 갓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기는 한데 백화고처럼 하얗다는 느낌까지는 주지 않는다. 습기를 더 많이 먹어서 백화고처럼 완전히 오그라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상당히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좋다. 단지 백화고만은 못할 뿐이다. 이 흑화고는 봄과 가을 두 번 생산되는데, 봄에 더 흔하다.

우리가 사시사철 시장에서 보는 생 표고버섯은 동고다. 버섯 갓이 거의 갈라지지 않은 고동색이며 만져 보면 꽤나 축축하다. 당연히 백화고나 흑화고보다는 육질이 무르다. 이것도 갓이 완전히 핀 것보다는 오그라든 상태의 덜 핀 것이 더 탱탱하고 맛있다.

이러니 표고버섯의 계절은 확실히 봄이라 할 만하다. 4월부터 6월 정도까지가 생 표고버섯은 물량도 가장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품질도 좋다. 따라서 이런 계절에 질 좋고 값싼 표고버섯을 넉넉히 사다 먹고, 남으면 그대로 얼리거나 말려 두었다가 쓰면 좋다. 표고버섯은 말려야 비타민이 더 활성화된다고 하는데, 나는 귀찮기도 하고 생 표고버섯 맛을 더 즐기기도 하는 터라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 얼려 보관한다.

나는 이 계절이 되면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대형 할인매장에 간다. 표고버섯이 한창 나오는 이 계절에는 대형 매장에서 표고버섯을 산처럼 쌓아 놓고 마음대로 골라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두어 개 랩에 포장돼 2000~3000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던 표고였건만, 이 계절에는 100g에 1000원 정도의 싼값으로 특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매장에서 이런 걸 만나면 ‘아이고 고마워라’ 소리가 절로 나온다. 큰 비닐을 들고 그 앞에서 표고를 고르기 시작한다. 이처럼 산처럼 쌓인 표고 더미에서는 다른 계절에는 거의 만나볼 수 없거나 매우 비싼 값으로 팔리는 백화고나 흑화고를 종종 만날 수 있다. 나는 바로 이걸 고르는 것이다. 대형 매장 좋다는 게 뭔가. 20분씩 서서 골라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닌가. 손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날 것처럼 거죽이 마른 백화고가 많은 날에는 너무 좋아서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다. 이게 웬 횡재냐 싶다. 비닐봉지 하나 가득 담아도 가격은 5000~6000원 정도밖에 안 된다.

표고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버섯이다. 싱싱한 생 표고를 사면 나는 제일 먼저 전을 부친다. 끓는 물에 데쳐 갓을 떼어내고 약한 소금 간을 한 후에,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팬에 부치는 것이다. 요리책에는 고기 다진 것을 양념해 표고 가운데에 박아서 부치는 법도 소개되어 있지만, 표고 자체가 이렇게 맛있고 담백한데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제철이 아닌 겨울에 먹는 물렁한 버섯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탱탱한 표고 전을 한 입 베어 물면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쇠고깃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재료도 표고다. 양지나 사태 살을 덩어리째 한두 시간 푹 고아 고기는 찢어 놓고, 생 표고버섯 저민 것과 마늘·파 등을 넣고 다시 한 번 끓인다. 간은 당연히 조선간장으로 해야 제맛이 난다. 이렇게 끓이면 고기의 양을 줄여도 감칠맛이 유지되고, 고깃국치고는 기름기가 적어 개운하다. 고깃국에 든 표고버섯을 씹으면 쫀득하고 탱탱한 그 맛이 기가 막힌다. 대형 매장에서 백화고와 흑화고만 20분을 고른 보람이 있다. 이래서 봄은 즐겁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