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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전, 장신 수비수의 무릎 아래를 뚫어라

한국 축구대표팀의 안정환(왼쪽에서 두번째)이 4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헤딩슛하고 있다. 그러나 공은 안정환의 머리에 맞지 않고 지나갔고, 한국은 0-1로 졌다. [인스브루크=연합뉴스]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놀이, ‘축구’를 통한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5일 남아공 입성한 태극전사들 허정무의 3경기 ‘맞춤 병법’

여덟 번째 입장권을 손에 넣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25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쾌승(2-0)한 뒤 알프스의 심장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에서 고지대와 시차 적응을 마쳤다.

스페인과의 마지막 평가전(4일)에서는 비록 0-1로 패했지만 균열 없는 조직력과 예리한 역습으로 사상 첫 월드컵 16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마지막 조율을 끝내고 남아공에 입성한 허정무(55) 대표팀 감독의 손안에는 세 개의 주머니가 들려 있다. 각 주머니 안에는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예리한 창을 벼리고, 방패를 든든히 세워 상대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들 진법(陣法)이 담겨 있다.

이 주머니는 크기도, 모양도, 내용물도 각양각색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어김없이 유럽 2개 팀과 상대했던 한국은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색다른 대진을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유럽)와 아르헨티나(남미)·나이지리아(아프리카)는 각기 다른 대륙인 데다 축구 스타일도 천양지차라 한 가지 전술만으로는 뚫어낼 수 없다. 허 감독은 지난해 12월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끝난 직후부터 6개월간 상대 분석은 물론, 최상의 멤버를 구성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상대국 경기 DVD를 수도 없이 보며 선수들의 사소한 버릇까지 살폈다. 상대국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꼼꼼하게 메모했다. 남아공·스페인(1월)-일본(2월)-영국(3월)에 이어 5월 일본과 오스트리아를 거치며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했고 마침내 3개국에 전력에 맞는 ‘맞춤형 베스트 11’을 완성했다. 허 감독은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팀도 없지만, 못해 볼 팀도 없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경기마다 다른 전술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의 주머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야심 차게 준비한 ‘맞춤형 베스트 11’과 전술을 미리 들여다봤다.

그리스 깨기① 레하겔을 이해하라
그리스 축구의 옛 별명은 ‘매맞는 소년(whippnig boy)’이었다. 왕자 대신 체벌을 받는 소년이란 뜻인데 축구에서는 매번 지는 팀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유럽 축구의 동네북으로 불리던 최약체였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던 1994 미국 월드컵 때는 1골도 넣지 못하고 10골을 내준 끝에 탈락했다. 메이저 대회 언저리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던 그리스는 2001년 독일 출신의 오토 레하겔(72) 감독 부임 이후 환골탈태했다. 유로 2004(유럽축구선수권)에서는 포르투갈·체코·프랑스 등을 꺾고 유럽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스 깨기’는 레하겔의 진법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레하겔의 전술은 간단하지만 한 번 걸려들면 세계적인 강호들도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측면 돌파에 이은 헤딩 역습은 얼마나 매서운지 상대는 알면서도 당한다. 그의 축구를 시대착오적이라며 한물갔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이기는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다”고 강변한다. 레하겔 축구는 변치 않는 패턴이 있다. 우선 공격 때 반드시 키 크고 강한 두 명의 공격수를 중앙 수비와 경쟁시킨다. 사마라스(셀틱·1m93㎝)·하리스테아스(뉘른베르크·1m91㎝) 등 공격수들이 모두 장신인 까닭이다. 중앙 수비수 키르기아코스(리버풀·1m93㎝)와 파파도풀로스(올림피아코스·1m88㎝)의 세트피스 가담도 위협적이다. 독일 월드컵 때 스위스전에서 한국은 먼 골대로 돌아 뛰어들어온 수비수 센데로스에게 선제 헤딩골을 내줬다. 이 같은 전술이 그리스의 주요 공격 루트라는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스의 고공 폭격에 맞선 허 감독의 비책은 곽태휘(교토)였다. 힘이 좋은 데다 1m86㎝ 장신으로 제공권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곽태휘는 지난달 30일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왼무릎 인대가 부분 파열돼 명단에서 제외됐다. 1m84㎝의 강민수(수원)가 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긴급 투입됐다.

허 감독은 그리스전 제공권 장악을 위해 장신 포백 라인을 구상하고 있다. 왼쪽 풀백 이영표(1m77㎝)를 제외한 이정수(1m85㎝)-강민수-차두리(1m81㎝)를 내세워 공중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세트피스 수비 때는 1m86㎝의 기성용까지 수비로 내려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이들 4명의 장신 수비벽을 세운 후 박지성(맨유)·이청용(볼턴) 등은 상대 공격수들을 맨투맨으로 막아서며 세트피스 실점을 내주지 않겠다는 전술이다.

백전 노장 이영표의 역할은 요주의 인물 테오파니스 게카스(1m79㎝·프랑크푸르트)를 막는 일이다. 게카스는 키는 크지 않지만 측면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활발하게 공격에 가담하며 그리스 공격을 다채롭게 만든다. 유럽 예선 때 그리스가 올린 21골 중 10골을 기록하며 유럽 예선 득점 1위에 오른 점만 봐도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주로 오른쪽 윙포워드로 서는 게카스는 왼쪽 풀백 이영표가 막아낼 것으로 허 감독은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 깨기② 첫 골에 모든 게 달렸다
레하겔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유행했던 리베로 시스템(일자 수비라인 뒤에 한 명의 수비수를 더 배치하는 전술)을 여전히 애용한다. 허 감독은 그리스의 리베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정된 포지션 없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포지션 파괴’를 구상하고 있다. 허 감독은 박주영(모나코)·염기훈(수원)·박지성·이청용을 90분 내내 스위칭시켜 골을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리스가 지난달 26일 북한과 평가전에서 정대세(가와사키)에게 2골을 내주던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스 수비수들은 장신인 반면 순발력이 떨어져 뒷공간 침투에 약한 면이 있다. 허 감독은 무의미한 공중볼 크로스를 자제하는 대신 빠른 2대1 패스와 돌파로 그리스 수비라인을 공략할 생각이다. 승부는 무릎 밑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결국 한국-그리스전 승부는 ‘선제골 싸움’으로 압축된다. 그리스 일간지 카치머리니는 자국 대표팀 전력을 분석하면서 “선제골을 내주면 좀처럼 승부를 뒤집지 못한다. 이는 패배를 의미한다. 역습 혹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만 득점을 올린다. 게카스가 10골을 넣었지만 약체 라트비아전에만 4골을 기록했다”고 꼬집었다. 그리스는 월드컵 예선 3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줬는데 한 번도 뒤집지 못하고 1무2패에 그쳤다. 선제골 의존도가 높기는 허정무 팀도 마찬가지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치른 15차례 평가전에서 거둔 10승 모두 선제골을 얻었다. 선제골을 내준 5경기에서는 1무4패에 그쳤다.

허 감독은 박주영·염기훈 투톱에다 박지성-기성용-김정우-이청용 등을 포진시킨 4-4-2 시스템으로 선제골을 노린다. 만일 선제골을 뽑아낸다면 박지성을 중앙으로 돌리고, 김남일을 투입하는 4-2-3-1 시스템으로 바꿔 승리 굳히기에 나선다. 골이 필요하거나 선제골을 내줬을 때는 안정환·이승렬 등 조커를 투입해 반전을 노릴 생각이다.

아르헨티나 깨기 늦춰라. 압박하라
허 감독이 구상하는 아르헨티나 대비책은 지연전술이다.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비롯,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시티)·세르히오 아게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디에고 밀리토(인터 밀란) 등 세계 최고의 킬러들을 보유하고 있다. 장신은 아니지만 빠르고 기술이 뛰어난 이들은 마치 모기처럼 상대 수비진영을 파고들어 골을 쏘아댄다. 허 감독은 “상대가 지공을 펼칠 수밖에 없도록 버틴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빠른 공격 템포를 늦출 덫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초반부터 4-2-3-1 시스템으로 나설 생각이다. 핵심 키는 중원을 지키는 박지성이 갖고 있다. 그는 2008년 4월 바르셀로나(스페인)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메시를 효과적으로 막아 맨유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지난 3월 AC 밀란(이탈리아)과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때는 밀란의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스 피를로를 봉쇄한 데 이어 쐐기골까지 터트리며 맹활약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역할은 메시를 막는 동시에 역습의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다. 허 감독은 박주영을 원톱에 박아두되, 5명의 미드필더로 촘촘히 공간을 좁혀 아르헨티나의 공격 템포를 늦추겠다는 계산이다. 그리스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조용형(제주)·오범석(울산)처럼 순발력이 좋은 수비수들을 내세워 한 템포 빠르게 공간을 선점하는 압박을 준비했다.

허 감독은 24년 전 멕시코 월드컵 때 디에고 마라도나(현 아르헨티나 감독)를 진돗개라는 별명답게 물고 늘어지며 악착같이 수비했다. ‘태권 킥’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1-3으로 졌고 아르헨티나는 우승했다. 허 감독은 “24년 전 우리는 단지 숫자만 늘린 우왕좌왕한 수비를 하다가 아르헨티나를 막지 못했다. 이제는 한국 축구도 경험을 축적했다. 천하의 아르헨티나라고 해도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24년 전에는 마라도나와 몸으로 부딪혔지만, 이제는 머리로 부딪혀 이기겠다는 구상이다. 허 감독은 화려한 공격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아르헨티나 수비라인을 공략하기 위한 역습 전술을 스페인 평가전을 통해 테스트했다. 아르헨티나는 주축 미드필더였던 호나스 구티에레스(뉴캐슬)가 오른 무릎 수술로 최종 엔트리에서 빠졌고, 부동의 중앙 수비수 마르틴 데미첼리스(바이에른 뮌헨)가 3월 독일과 평가전에서 광대뼈를 다쳐 한동안 재활하며 감각이 떨어져 있다.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보카 주니어스) 대신 후안 파블로 카리소(사라고사)가 수문장을 맡고 있지만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

나이지리아 깨기 춤추기 전에 끝내라
‘수퍼 이글스’로 불리는 나이지리아는 한때 세계 중심부에 합류했던 축구 강호였다. 96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94 미국 월드컵·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잇따라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주역인 느왕쿼 카누(포츠머스)가 아직도 뛴다. 카누 이후 특급 스타를 배출하지 못한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예선에서 3승3무로 튀니지를 제치고 겨우 월드컵에 진출했다. 더 큰 문제는 감독 교체 후유증이다. 스웨덴 출신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이 지난 2월 샤이부 아모두 감독 대신 나이지리아 감독직에 올랐지만 여전히 선수 장악에 애를 먹고 있다. 라예르베크 감독은 뇌물 수수 스캔들에 휘말린 데다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와 불화로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지난달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기자 선수들에게 극심한 실망감을 보이기도 했다. 선수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30명 예비 명단을 뽑는 촌극을 벌인 나이지리아는 선수들이 좋은 기량을 갖췄는데도 조직력을 극대화시키지는 못한 느낌이다. 게다가 주축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첼시)은 4월 말 볼턴과의 경기에서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은 후 최근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하지만 허 감독은 “검은 대륙의 팀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흥이 나면 무서워진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FIFA 20세 이하 월드컵과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잇따라 8강에 올랐지만 8강전에서 가나와 나이지리아에 무릎을 꿇었다. 경기를 지배하다가도 특유의 유연성과 스피드에다 경험을 갖춘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허 감독의 필승 전략은 초반에 나이지리아를 쓰러뜨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지리아는 한번 신나면 무섭게 춤을 춘다. 우리는 그들이 춤추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볼을 오래 소유하는 버릇이 있다. 그 점을 노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이동국(전북)이다. 지난달 에콰도르와 평가전에서 오른 허벅지 근육을 다친 그가 회복하기를 기다려 최종 엔트리에 발탁한 이유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를 염두에 둔 데 있다. 허 감독은 “이동국을 뽑은 이유는 한 경기 때문이라고 봐도 좋다. 나이지리아전”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허 감독은 경기 초반 나이지리아의 볼을 끊어 박지성과 박주영을 거친 패스를 이동국이 마무리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선제골을 터트린다면 다급해진 상대의 허점을 공략해 추가골을 노리겠다는 구상까지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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