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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낙선 끝 금배지, 공격적 추진력 갖춘 실용주의자

간 나오토 신임 총리가 4일 오전 민주당 양원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간 대표는 이날 오후 중의원 투표에서 새 총리에 뽑혔다. [도쿄 AP=연합뉴스]
4일 일본 호(號)의 새 선장이 된 간 나오토(菅直人·63) 신임 총리. 그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가 크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 4대째 초밥집을 운영해온 70대 남성은 “세습 정치인과 달리 밑바닥부터 올라왔으니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일본, 어디로 가나

전후 고도성장을 이뤄낸 일본 국민들은 지난 2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사퇴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오락가락 발언’과 비현실적인 정책공약에 대한 실망감으로 내각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그의 퇴진은 시간 문제였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더 큰 상실감에 빠진 것은 네 명의 총리가 재임 1년도 안 돼 줄줄이 물러나 정치 불안이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이 지난해 8월 총선에서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창당 16년밖에 안 된 민주당을 선택한 것은 변화에 대한 욕구였다. 그 결과 민주당은 중의원(총 480석) 가운데 308석을 차지하는 거대 정당이 됐다. 54년간 정권을 독점했던 자민당의 병폐가 금세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과 과도한 복지 확대 공약 등을 잇따라 번복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토야마의 전격 사퇴는 일본 정치의 고질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 자민당 정권 시절 아베 신조(安倍晋三)·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가 총리직을 내던진 데 이어 아소 다로(麻生太<90CE>) 역시 실언을 되풀이하다 재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 신임 총리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각종 민생·개혁 정책을 추진했지만 ‘단명 총리’에 그쳐 그것들은 모두 폐기되거나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국제 경쟁력은 뒷걸음질치고 정치 불신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간 총리의 역할은 막중하다.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장기 불황의 덫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간 총리는 정부와 민주당을 장악해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총리가 허수아비처럼 되고, 막후 실력자들이 파벌과 계파의 이해에 따라 정국을 움직이는 이중권력 구조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 미야모토 사토루 세이가쿠인(聖學院)대 교수는 “정치 불안이 지속되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정치현장에서 경험해온 간 총리는 일본의 막후 정치를 주물러온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정치를 시도할 작정이다. 간 총리는 난국을 해결하지 못하고 줄줄이 물러난 세습 정치인들과는 달리 ‘풀뿌리 정치인’의 DNA를 갖고 있다.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포함해 일본에서 역대 최대인 8명의 총리를 배출한 야마구치(山口) 출신인 그는 시민운동가로 처음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금배지를 단 것은 세 번의 낙선 끝에 가능했다. 그는 지역구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전임 총리들과 달리 밑바닥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그 덕에 유연하면서도 공격적인 추진력을 갖춘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총리에게 필요한 덕목인 강력한 리더십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엘리트 집단 관료들에 대한 장악력과 업무 조정력도 간 총리의 장점이다. 그는 1996년 후생노동상 시절 혈액 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관청의 실수로 비롯된 사고임을 밝혀낸 뒤 철저한 관료개혁주의자가 됐다.

그럼에도 간 총리가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의 상왕’으로 불리는 오자와의 협조 없이는 총리직 수행은 물론 정국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민주당 대표 경선을 위해 반(反)오자와 기류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는 출마 선언 직후 “(오자와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만큼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것이 본인과 민주당, 그리고 일본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자와 배제 발언’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등 당내에 포진한 반오자와 세력의 지지를 촉발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오자와 그룹 의원들은 지명도가 떨어지는 다루도코 신지(樽床伸二) 의원을 내세워 간 총리에 맞서게 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오자와는 측근 의원들에게 자율투표를 허용함으로써 간의 총리 취임을 가로막지 않았다. 국민에게 구시대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은인자중하는 그로선 ‘간 총리 대세론’을 막을 수 없다는 동물적 정치 감각을 느낀 것이다.

생각이 유연한 간 총리도 대표 경선 뒤 즉각 태도를 바꿨다. 그는 오자와 측근들의 처우에 대해 “지금은 분열을 초래할 때가 아니다. 어느 쪽도 아닌 ‘노 사이드(No Side) 선언’을 하겠다”며 당내 결속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적재적소에 사람(오자와 측근들)을 쓰겠다”고 밝혔다. 당장 다음달 1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간 총리로서는 선거의 달인 오자와의 경험과 전략이 절실하다. ‘꾀돌이’ 간 총리의 실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외교 분야에서는 미·일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그는 4일 “하토야마 전 총리로부터 ‘미국·중국·한국과의 관계를 잘 부탁한다’는 메모를 전달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신뢰 관계를 확실하게 강화하면서 대중국 관계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오자와는 요즘 자신의 정치자금 관리단체인 리쿠잔카이(陸山會)를 통해 4억 엔의 불법 정치자금을 세탁했다는 의혹에 정치 생명이 걸려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혐의가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의 판단은 다르다. 지난달 11명의 시민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오자와의 혐의에 대해 기소해야 한다고 결정한 데 이어, 조만간 추가로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오자와로선 검찰심사회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다.

간 총리와 오자와는 가끔 바둑을 두는 사이다. 크게 대립한 적도 없고 필요하면 언제든 공조를 해왔다. 오자와의 운명은 결국 참의원 선거와 정치자금 의혹의 향방에 달려 있다. 일본 정치는 장편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곡절이 많다. ‘도련님 정치’의 마지막 주자인 하토야마의 실패가 일본 정치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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