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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도 꺾이지 않는 근성이 이들을 승부사로 키웠다

그는 36살 때 군수가 됐다. 전국 최연소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경상도(남해)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6·2 지방선거의 최대 파란을 일으킨 김두관(51) 경남도지사 당선자의 얘기다. 15년 전 작은 파장을 던졌던 그는 이번엔 더 큰 ‘사고’를 쳤다.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된 것이다. 상대는 거대 여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서울대 교수·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행정안전부 장관. 왜일까. 김 당선자는 5일 “도지사 두 번,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 떨어지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지역을 지키고 버틴 걸 도민들이 인정해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도지사 출마를 결심했을 때, 이 정도로 원칙을 지키고 버텼는데 부모 때려 죽인 원수도 아닌데 (도민들이) 나를 내치겠나 싶었다.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6·2 지방선거 ‘승자의 조건’

6·2 지방선거가 정치의 권력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시장·도지사의 지방권력이 정치무대의 한가운데로 옮아가는 ‘시장·도지사 정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인공은 김두관·송영길(47·인천시장)·이광재(45·강원도지사)·안희정(45·충남도지사) 당선자다. 민주당이 한번도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지역들이다. 한나라당 오세훈(49) 서울시장, 김문수(58) 경기지사도 이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이들 역시 거세게 불어닥친 야당 쓰나미 속에도 자리를 지켰다. 25개 서울 구청장 중 한나라당이 이긴 곳은 4곳뿐이다. 그러나 오 시장은 한나라당 구청장 후보들이 얻은 득표 합계보다 26만1000표를 더 얻었다. 26만여 표는 오세훈의 경쟁력이다.

“난 경남 최고 빚쟁이, 그러나 도망가지 않았다”
이들 6인의 승리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 피어나는 매화 같은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의 원천은 뭘까.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승자의 조건 세 가지를 추적해본다.

첫 번째 코드는 역경에 굴하지 않는 뚝심과 끈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사 근성이다. 주변이 흔들려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힘은 강한 생명력의 원동력이 됐다. 쓰러져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근성, 쓰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승부욕이 이들을 승부사로 단련시켰다.

김두관 당선자는 대학(동아대) 졸업 후 지금까지 23년간 남해를 떠난 적이 없다. 그가 낙향을 결심한 건 감옥에서다. 1986년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구속됐을 때다. 좁은 감방에서 그는 ‘서울엔 너무 쟁쟁한 사람이 많다. 고향에 내려가서 지역활동을 하자’고 결심한다. 남해 농민회와 마을 이장(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을 한 게 인연이 돼 88년 총선 때 민중의 당으로 출마해 낙선한다. 이후 2006년 보궐선거, 2008년 총선과 2002·2006년 도지사 선거에 나갔지만 모두 떨어졌다. 김 당선자는 기자에게 “선거 때마다 친구·친척들한테 신세를 많이 졌다. 선거 때마다 계속 떨어졌으니까 경남 최고의 빚쟁이였던 셈이다. 그러나 한 번도 도망가거나 딴 길을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영길 당선자는 운동권 출신이다. 연세대 졸업 후 인천 대우차 공장 배관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사법시험을 보기로 결심, 변호사가 된 건 동구권의 붕괴(91년)를 목격하면서다. 그의 별명은 황소다. 사법시험 볼 때는 하루 16시간씩 공부했다. 정치권에 들어와 고비 때마다 맨발로 산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대선 패배 땐 계양산과 청량산을, 지난 2일엔 계양산을 맨발로 올랐다. “가톨릭 신자가 육체적 고통을 매개로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맨발로 뛰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선거를 도운 이기문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3선 의원과 최고위원이란 자리를 내던지고 인천시장 선거에 뛰어들어 현역 시장에 맞선 건 패기와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기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업자’로 불리는 이광재·안희정 당선자의 얘기는 오히려 고전에 속한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안 당선자의 수도권 재·보선 출마 얘기가 나왔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멀리 보면 출신 지역을 지키는 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 당선자는 이 가르침을 따랐다. 2008년 총선 때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그는 당을 떠나지 않고 불출마의 길을 택했다. 안 당선자는 “(노 전 대통령은) 충청이 불모지이고 그래서 깨지더라도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난 무일푼으로 내려갔고 그 어렵다는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다”고 털어놨다.

오세훈 시장은 ‘야당 쓰나미’ 속에도 자리를 지켜낸 데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취임 이후 뉴타운 지정을 한 곳도 하지 않았다. 부작용과 역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점 사업인 뉴타운 지정을 하지 않은 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됐지만 결국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는 걸 보고 시민들이 원칙과 뚝심이 있다, 아니라고 하면 끝까지 하지 않는 고집과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내려준 것 같다.” 선거를 도운 이종현 공보특보는 “무상급식 공약이 여론 지지를 받을 때였다. 참모들이 우리도 무상급식 공약을 받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끝내 ‘1회성 정치에 휘말리는 선거는 안 한다. 오직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 버텼다”고 귀띔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71년 학생시위로 제적된 뒤 25년 만에 졸업장을 받은 ‘운동권의 전설’이다. 96년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의 공천으로 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을 누르고 당선(부천 소사)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몸을 담은 것은 숱한 논란과 시비를 불렀지만 그는 깐깐한 성격과 청빈한 생활, 빈틈없는 논리로 ‘따뜻한 보수’의 이미지를 굳혔다.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차명진 의원은 “대학 등록금을 깎아달라는 대학생들과 만나 ‘안 된다’며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이 김문수”라며 “폐부에서 나오는 정직함과 당당함을 도민들이 인정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키워 주면 대통령감 될 수 있나”라며 관심
6인의 승자는 ‘차세대 대권주자론’을 들고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큰 인물, 큰 그릇론은 지도자 부재의 시대에 카리스마 정치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차세대 지도자’ 전략은 상대 후보를 왜소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더욱이 이들은 40, 50대다. 60대 후보와 벌인 싸움에서 젊음과 차세대를 이끌 지도자란 이미지는 플러스 요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안희정 당선자는 “2인자 정치, 지역주의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걸 부각했다. 김종필(JP)·심대평 전 총리 등 충청을 대표하던 정치인들의 쇠퇴로 인한 공백을 메울 차세대 지도자란 걸 강조한 것이다. 김종민 대변인은 “유세 다니면서 ‘키워 주면 대통령감 될 수 있나’ ‘잘해봐라’는 어르신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며 “안 당선자가 큰 인물로 컸으면 하는 기대가 바닥에서 꿈틀댔던 것”이라고 했다.

이광재 당선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여야를 떠나 강원도가 이광재는 키워줘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만들어지고 그런 얘기들이 먹힌 게 승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는 TV토론 때 “도정을 잘 이끈 뒤 그 경험을 살려 10년 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의 경우 ‘깨끗한 힘, 미래의 힘’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서울의 경쟁력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다’ ‘서울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현수막이 선거 내내 내걸렸다. 서장은 정무부시장은 “MB 심판이란 쓰나미가 밀려왔는데도 살아남은 건 유권자들이 오세훈이 차세대를 이끌어갈 지도자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세훈의 미래에 투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영길 당선자의 공약은 ‘인천을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로 만들겠다’였다. “차세대 주자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 시정을 맡아야 인천이 동북아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기문 위원장)이란 설명이다.

어른들 “광재야”라고 불러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대중친화적 리더십은 승리의 필수 요인이다. 이광재 당선자는 “정치는 서비스업, 그중 유통업이다. 유권자와 소통하는 게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재선의원(태백-영월-평창-정선) 출신인 그는 평소 수행원 없이 등산복이나 평상복 차림으로 지역구에 간다. 그러고는 마을회관·노인정·찜질방 등을 다니며 주민들과 만난다.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그러다 같이 잠들기도 한다. 이번 선거 때도 그는 승용차 대신 택시를 타고 지역을 돌았다. 팬클럽인 ‘광재사랑’ 회원들이 돌아가며 운전을 해줬다. 동네 어른들은 그를 ‘이 의원’이라고 하지 않고 ‘광재야’라고 부른다. 마치 옆집 청년 대하듯 한다. 이 당선자는 “나에게 지역구는 표밭이 아니라 일터다. 선거 때 찜질방에서 청소부와 같이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말하지만 거기서 난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우게 된다. 대화하다 보면 그걸 어떻게 정책으로 만들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고 한다.

김두관 당선자는 23년 전 고향(남해)에 정착할 때 남해신문이란 주간지를 창간해 7년간 사장을 했다. 신문이 나오면 사장이 직접 읍내로 배달을 다녔다. “신문을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한테 지난 호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들을 수 있었고 시중 여론을 담을 수 있게 됐다”(김 당선자)고 한다. 그는 1만 개의 도민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 선거 때가 아니라도 수시로 안부전화를 주고받는 사람이 1만 명이란 얘기다. 선거를 도왔던 조수정 언론특보는 “주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친화력은 타고난 것 같다. 선거 캠프가 차려지니까 형·동생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위·아래의 위계질서가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렇게 하면 나도 국회의원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김문수 지사는 2008년부터 매년 1일 택시기사 체험에 나서고 있다. “직접 택시운전을 해보면 도지사 관용차 뒷좌석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된다. 어느 장소에서 듣는 좋은 얘기 백 마디보다 승객들이 쏟아내는 불만 한마디가 보약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현장에 가라.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은 그가 학생운동가에서 노동운동가로 변신하면서 생겨난 습관이다. 70년 전태일 분신 사건을 겪으면서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직접 용접기술 등을 배워 노동현장에 들어갔다. 선거운동 기간 중 그가 내건 슬로건은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였다. 24일25박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관내 곳곳을 누비는 현장체험형 선거운동을 했다. 경쟁자였던 유시민 후보 측 관계자도 “막상 해보니 쉬운 상대가 아니더라. 현직에 있으면서 궂은 일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영입형 정치가’ 아닌 ‘전업 자생형’
오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20대부터 일찍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전업자생적 정치인이란 점에서도 닮았다. 3김정치가 막을 내린 이후 최근 정치의 주류는 영입 인재들이 차지해왔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선진당 이회창 대표, 민주당 정동영·정세균 전·현 대표는 영입형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뒤 그 성취와 유명세를 바탕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케이스들이다.

송영길 당선자는 노동운동가→변호사를 거쳐 96년 국민회의 인천시지부 정책실장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문수 지사는 노동운동을 하다 90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함께 진보정당인 민중당을 만들어 정치를 시작했다. 이광재·안희정 당선자는 대학 졸업 직후인 89년 각각 노무현 의원, 김덕룡 의원(현 대통령 정치특보)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이들을 두곤 “현실 정치를 잘 안다”는 얘기와 “권력지향적”이란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입지 강화될 정치인 오세훈·김문수·김두관 순
이번 선거에서 정치적 입지가 가장 강화될 정치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꼽혔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3일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응답자 중 24.9%가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오 시장을 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정치인으로 지목했다. 2위는 역시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경기지사(23.4%)였고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11.0%)가 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10.1%),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8.8%) 순이었다. 이광재 강원지사 당선자는 응답자의 3.7%만 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봐 6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 당선자의 경우 11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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