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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의 탄생 과정은 한 시대를 여는 경건한 의식”

<1> 2007년 3월부터 건설 중인 국새문화원에 대해 설명하는 민홍규 원장. <2> 민 원장(오른쪽 위 사진)이 거푸집을 만드는 전각전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다. <3> 방문객이 귀감석에 온몸을 대거나 기도를 한다. 거북바위의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함이라고 한다. 신동연 기자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 제4대 국새(國璽)를 제작한 민홍규(56·사진)씨를 찾았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왕산(王山·925m) 자락 국새문화원 건설 현장은 진작부터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산청 전통한방관광휴양지 위에 터 잡은 국새문화원은 한눈에 봐도 빼어난 명당이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결집한 지리산 천왕봉이 북동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왕산과 필봉을 짓는다. 앞에는 남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그 너머에 멀리 남(南)덕유산의 지맥이 만든 황매산으로 왕산과 조응하고 있다.

한국인의 혼을 일깨우는 민홍규 국새문화원장

“이곳 고령토는 옛날부터 국새의 거푸집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산의 명칭도 왕산이고 문자를 새겨 넣는 터에 걸맞게 문필봉인 필봉산이 에워싸고 있지요. 국새문화원 터로는 안성맞춤이지요.”

우리 시대 연금술사 민씨는 이 터를 직접 잡았다. 그는 랍아트(LAP ART)를 창시한 종합예술가이기도 하다. ‘선과 점(Line And Point)의 예술’이라는 뜻의 랍아트는 그가 주력해온 전통서예와 전각을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로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첨단기술로 만든 3대 국새엔 ‘상처’
국새는 국권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다. 옥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옥새(玉璽)라고도 하는데 훗날에는 다섯 가지 금속을 합금해 재료로 썼다. 한 국가의 공식 문서에 사용되는 관인인 국새는 황제나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 자체로 절대적 명령이며 새로운 왕의 즉위식 때는 대보(大寶)를 전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왕이 행차할 때도 반드시 의장물로 동원된다. 국새는 국운(國運)과 통치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새를 만드는 장인은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다. 민씨는 동양고전에도 해박하다.

“국새는 도장 부분인 인면(印面)과 손잡이 부분인 인뉴(印<9215>)로 돼 있어요. 인면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통합하지요. 음양오행에 따라 문자를 조율하되 인장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 자획을 구부려서 조형성을 높입니다. 인뉴는 용이나 거북, 봉황 모양 등으로 다양합니다. 천손민족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는 우리 동이족 고유의 문화 원형이지요.”

그는 국새의 역사가 곧 나라의 역사라고 말한다. 단군의 천부인(天符印)으로부터 조선조 마지막 황제 순종이 사용했던 대한제국 옥새에는 나라의 명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대한제국은 일제에 나라를 뺏겼고 강제병합 문서에 치욕스러운 옥새를 찍어야 했다.

“약 5000평 규모의 국새문화원이 조성됩니다. 한국인의 혼과 문화 원형을 배워가는 명소로 만들 계획입니다. 2007년 3월에 터를 잡았는데 앞으로 2년 후면 얼추 모양이 갖춰집니다. 완공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할 겁니다. 전각의 위치는 물론 나무 한 그루 허투루 심지 않습니다.”

천기(天氣)를 읽으며 가마에 불을 지핀다는 그는 전각전 가마에 불을 넣는 광경을 처음으로 중앙SUNDAY에 공개했다. 국새를 만들 때는 신성성을 지키고 위조 방지를 위해 철저히 비밀을 고집한다.

“이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작업을 할 때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부드러운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그 속의 온도를 순간적으로 1500도까지 올려서 녹인 합금을 부은 뒤, 거푸집을 깨면 국새가 태어납니다. 한 시대가 열리는 경건한 의식이지요. 만물의 뜻을 깨달아 일을 성취하는 개물성무(開物成務) 그대로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글을 가벼이 써서도 안 되지만 특히 인장은 절대로 신중히 써야지요. 하물며 한 나라의 문서에 쓰는 국새인데요. 그 제작과정부터 신성해야 함은 물론이고 보관이나 사용법 또한 신중해야 합니다.”

그는 스승 정기호(鄭基浩·1989년 작고)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인 제작법을 고수한다. 최첨단 기술로 제작한 대한민국 제3대 국새에 금이 간 ‘사건’이 있었다. 반면 만들기에 불편하고 까다롭지만 그가 재현한 가마에서 전통 기법으로 만든 국새들은 완벽하다는 평을 받는다.

왕산의 기맥이 흐르는 중심에 들어선 등황전(騰皇殿). 2층 규모의 전시관으로 역대 국새 모형과 관련 의장품, 예술품 등 유물 209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건물의 설계·장식을 민씨가 직접 맡아 감독하고 있다.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삼족오를 앉혔고 1, 2층의 갖가지 장식물들은 태극과 음양 오행론에 맞게 배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 가지 신물의 배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등황전 뒷산에 자리 잡은 검은 오석으로 만든 석경(石鏡), 산자락과 등황전이 만나는 지점에 선 8m 크기의 귀감석(龜鑑石), 그리고 마당에 안치하게 될 복석정(福石鼎)이 그것이다. 이들은 왕산의 기운이 흐르는 기맥에 따랐기 때문에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신물은 천부인을 상징하는데 70t이 넘는 거대한 석경은 동경을 연상케 한다. 산청의 ‘범학’이라는 곳 산중턱에서 발견하여 어렵게 운반해 왔다. 태양의 형태로 중심 부위를 깎아내자 봉황 형상의 흰 무늬가 나왔다.

귀감석은 황매산 8부 능선에서 만났다. 130t이 넘는 거북 모양의 돌을 어렵게 옮겨와 천연의 6각형 형태에 거북등 모양을 파고 귀감이 될 만한 글귀들을 새겼다. 좌선(左旋)하는 천도(天道), 우선(右旋)하는 지도(地道)의 이치에 따라 인도(人道)에 해당하는 글귀들을 반대 방향으로 새긴 것이다. 거북의 뼈에 새긴 갑골문은 문자의 시원이자 문명의 시작이기도 하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거북신앙이 생겨났다. 누가 일러주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거북바위 앞에서 기도를 하고 간다. 집단 무의식으로 전수된 이른바 거석 감응 주술이다.

복석정은 산청의 ‘만암’이라는 곳의 개울가에서 발견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먹고 즐기도록 해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데 솥은 본래 혁명을 뜻하는 기물이다. 세상만물을 솥에 넣고 삶으면 그 기질이 변한다. 새 시대에 맞게 변모하는 것이다. 구정(九鼎)은 중국 고대 왕권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나를 버리기 위해’ 이름도 ‘민홍’으로 바꿔
“이곳이 한국인의 혼을 일깨우고 한국학의 전당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련의 역사가 가고 이제 바야흐로 우리 한국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뜻 있는 분들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보태면 우리 민족문화가 융창하게 됩니다.”

사재를 털어 넣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일구는 국새문화원은 산청군에 기부채납을 한 상태다. 그는 아무런 사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근래에 아호와 이름을 바꿨다. 스승이 내린 세불(世佛)이라는 호가 너무 커서 부농(夫農)으로 바꿨고 ‘민홍규’란 이름에서 ‘규’자를 빼 ‘민홍’으로 새 이름을 삼았다. 후학이 나타나면 그에게 세불이라는 아호를 줄 생각이란다. 굳이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까지 바꾼 것은 자신을 버리기 위함이다.

지난해 여름에 대진고속도로에서 차량 전복 사고를 당하고 나서 6개월을 고생한 끝에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거듭나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지리산의 석종(石鐘)을 그 누가 울린 것인가. 지리산을 닮고자 하는 부농 민홍은 민족문화를 꽃피우는 산파가 되겠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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