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카카와 메시, 남아공 ‘10번의 전설’ 누가 쓸까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왼쪽)와 브라질의 카카는 마라도나와 펠레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은 지난해 9월 5일 열린 월드컵 남미예선 경기. [로사리오 AP=본사특약]
남미축구의 두 강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팬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질문이 있다.
“펠레가 훌륭한가, 마라도나가 훌륭한가.”

6월 11일 개막 2010월드컵의 수퍼스타들


혹시 질문을 받는다면 장소와 상대를 살펴서 대답해야 한다. 브라질에서는 펠레, 아르헨티나에서는 마라도나다. 마라도나라는 답이 약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남아공 월드컵 남미 예선을 간신히 통과했다. 감독 마라도나는 자국 팬들에게 잠시 미운 털이 박혔다. ‘펠레냐, 마라도나냐’를 묻는 팬들도 답을 모르지는 않는다. “답은 없다”가 답이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맞대결한 적이 없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만 17세의 나이로 혜성처럼 떠오른 펠레는 77년 은퇴했다. 마라도나는 77년 만 16세에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둘 다 10월에 태어나 등번호 10번을 달았고, 멕시코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펠레는 70년 브라질, 마라도나는 86년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가상의 세계에서 매치 메이킹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70년의 브라질 대표팀과 86년의 아르헨티나를 맞붙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컴퓨터 게임도 있다. 50년대의 철권 로키 마르시아노와 60년대의 무하마드 알리를 링에 올리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세계 축구팬들은 꿈을 꾼다. 그 꿈은 꿈이라는 이름의 현실이다. 펠레와 마라도나를 모니터에 띄울 필요는 없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브라질의 10번 카카, 아르헨티나의 10번 메시를 주목하는 게 낫다.

메시는 대표팀에서 19번도, 15번도 달았다. 그러나 남아공에서는 10번이다. 일간스포츠의 축구전문 최원창 기자는 메시가 이번에 10번을 다느냐고 묻자 대답했다.

“그럼요, 에이스인데요.”

카카와 메시의 플레이는 펠레와 마라도나에게 바치는 오마주(hommage) 같다. 오마주란 영화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오마주는 단지 모방이나 흡사함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창조라고 해야 옳다.

유튜브에서 마라도나와 메시를 키워드로 찍어 보라. 놀라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마라도나는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60m를 드리블해 잉글랜드 수비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메시는 2007년 헤타페와의 스페인 국왕컵 경기에서 비슷한 골을 넣는다. 상대가 잉글랜드는 아니지만, 메시도 수비수 6명을 제쳤다. 눈부신 오마주다.

카카는 카리스마를 찾아보기 어려운 선수다. 골을 넣으면 기뻐서 울 것 같다.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그가 운다면, 스웨덴 월드컵의 17세 소년 펠레를 닮았을 것이다. 펠레는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세계에 그 존재를 알렸다. 브라질은 우승했다.

펠레는 희대의 테크니션이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승리를 만드는 마라도나와는 달랐다. 그럴 힘이 있었지만 펠레의 플레이는 팀워크에 녹아들었다. 자일지뉴·토스탕·리벨리노 같은 스타들이 펠레의 젖줄 같은 패스를 양식 삼아 그라운드를 적셨다.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는 이타적인 플레이. 카카는 조용히 펠레의 축구를 오마주한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만나는 그곳. 월드컵은 꿈의 세계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매 순간이 드라마다. 4년 전 독일로 돌아가 보자.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8강전. 잉글랜드의 루니가 후반 17분 포르투갈의 카르발류에게 파울을 했다. 사타구니를 밟았다. 40m나 떨어져 있던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달려왔다. 그는 엘리손도 주심에게 “왜 카드를 주지 않느냐”는 듯 항의했다. 격분한 루니는 호날두를 밀쳤다. 엘리손도 주심은 루니를 퇴장시켰다. 호날두는 벤치를 향해 윙크했다.

루니는 펄펄 뛰었다. 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인 호날두를 “두 동강내 버리겠다”고 별렀다. 평소 뜨거운 가슴을 여과 없이 드러내온 루니였다. 한바탕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해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하자, 루니와 호날두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맨유는 둘을 앞세워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홈그라운드의 지네딘 지단은 냉정한 킬러였다. 지단의 헤딩슛 두 방에 브라질은 맥없이 쓰려졌다. 8년 뒤 독일. 지단의 헤딩은 여동생을 모욕한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의 명치에 폭발했다. 지단은 퇴장당했고, 프랑스의 꿈은 깨졌다. 마테라치는 사나이답지 못했다. 어쨌든 이탈리아는 챔피언이 됐다.

잉글랜드 팬들을 슬프게 한 루니의 퇴장과 호날두의 윙크는 승부의 잔인함을 보여줬다. 그들의 화해는 현실이 요구하는 엄혹한 과업을 일깨운다. 마테라치의 명치에 꽂힌 지단의 헤딩은 감정의 분신(焚身)이다. 승패의 명암은 분명하다. 그리고 스타디움 밖에서는 축구 경기의 결과에는 무심한 듯 세월과 인간의 삶이 흘러간다.

한국은 86년 이후 일곱 차례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고 있다. 월드컵은 낯선 무대가 아니다. 낯익음은 매너리즘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출전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본선 무대를 밟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86년 한국은 54년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했다. 첫 출전과 다름없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저조한 성적으로 연결됐다. 당시 한국의 멤버 구성이 최고였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적잖다. 공격수 차범근과 최순호, 미드필더 허정무·조광래·박창선, 수비수 조영증·정용환이 함께 뛰었다. 지금 봐도 화려하다. 그러나 한국은 붕 뜬 것 같은 플레이를 거듭했다. 첫판에서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먹잇감이 됐다. 1-3. 두 번째 상대 불가리아는 이길 수도 있었지만 1-1로 비겼다. 이탈리아와는 잘 싸웠지만 수준 차는 어쩌지 못했다. 2-3.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한국은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했다. 그러나 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3전 전패였다. 94, 98년 모두 ‘될 듯 될 듯 안 되는’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다. 갑갑증은 2002년에야 풀렸다. 그러나 홈그라운드라는 점 때문에 반신반의한 성적이다. 4년 뒤 다시 조별 리그 탈락. 토고에 거둔 1승은 감질나는 전리품이었다.

한국 축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한국은 최근 세 차례 월드컵에 일본과 동반 진출하면서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두 번이나 쉽게 이긴 일본은 식욕촉진제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 대신 북한이 44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다. 한국 축구로서는 새로운 동기 부여다. 북한은 일본 못잖게 져서는 안 될 경쟁 상대가 아닌가.

그러므로 북한과의 레이스는 남아공의 메인 디시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매력적인 뉴스 메이커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갔다. 아직도 유효한 전설이다. 최근 남북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축구는 단순한 운동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 십상이다.

북한의 경기력은 종잡을 수가 없다. 세련된 경기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맞붙어 보면 만만치 않다.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북한과 1승1무를 기록했다. 중국에서 열린 1차전은 질 뻔했다.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겨우 이겼다. 최근 북한과 그리스의 평가전 결과는 더 놀라웠다. 2-2 무승부. 그리스는 한국의 본선 첫 상대다.

북한 팀의 구성도 흥미롭기 짝이 없다. 정대세와 안영학 등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 선수가 주축 선수로 뛴다. 특히 정대세는 한국에도 팬이 많다. 쭉 찢어진 눈매가 매서운데도 왠지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2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빠르고 골 결정력이 뛰어나다. 한국 팬들은 그에게 ‘인민 루니’라는 별명을 붙였다.
안영학은 한국에서 뛰다가 일본 리그로 돌아갔다. 성실한 선수였지만 수원 삼성에서 자주 출전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쉰 시간이 길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도 있다. 능력의 차이보다 스타일의 차이가 컸다. 일본식 축구를 배운 그에게 한국식 축구는 지나치게 거칠었을지 모른다.

북한이 그리스와 비기자 한국 팬들은 그리스를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2004년 유럽 챔피언이 만만하리라고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2002년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황선홍 부산 감독은 “한국 축구의 5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47위다. B조 4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고 꼬집었다. 그리스는 12위다.

월드컵은 영원한 판타지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의 6월을 떠올려 보자. 그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얼마나 특별했는가. 꿈 같은 세상이었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병상의 환자들, 교도소 수감자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손에 땀을 쥐었다.

월드컵은 가진 사람들이나 힘센 사람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 그늘진 곳에 소외된 사람들조차 외로움을 잊었다. 골고루 행복했다. 월드컵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충격은 먼 데로 날려 버렸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한국인들은 그들이 꿈꾸곤 했던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해 6월의 기적은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로 집약된다. 세계적 스타가 없는 한국이 4강에 갔다. 평범한 사람들도 협력하고 잘 조직되면 1등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시 성적은 중요했다. 한국이 2002년에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면? ‘오~필승 코리아’도 수백만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팽팽한 긴장에 사로잡혔다. 천안함, 유럽발 금융위기, 4대 강, 전교조…. 2002년 대한민국은 축구를 통해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환란의 충격을 스스로 씻어냈다. 8년이 지난 지금,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남아공 입성을 눈앞에 둔 태극전사들은 축구팬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2010년 한국 축구대표팀. 그들은 엄청난 힘을 지녔다는 신비로운 반지를 찾아 떠난 원정대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