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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매력에 빠진 뒤 축구 응원에 중독”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장종수씨의 열정은 젊은이가 무색하다. 그는 70세의 최고령 서포터스로 남아공에 응원하러 갈 계획이다. 신인섭 기자
우리 나이로 일흔. 손자 재롱 보는 낙으로 살 나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손자뻘 되는 청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는 낙으로 산다.
장종수(69)씨는 축구판에서 인정하는 ‘국내 최고령 서포터’다. 프로축구 FC 서울의 공식 서포터스 모임인 ‘수호신’ 회원인 그는 지난 5년간 FC 서울의 경기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경기장에서 봤다.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홈 경기는 물론이고, 대구·부산·광주에다 바다 건너 제주까지 원정 서포팅에 빠지는 법이 없다. 이뿐만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 경기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개근했다. 물론 6월 12일 개막하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그는 태극전사를 응원하러 간다. 그에게 축구는 여가가 아니라 삶 자체다.

남아공 월드컵 응원 가는 칠순 서포터 장종수씨


장씨는 지난 23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FC 서울과 광주 상무의 경기를 다녀왔다. 단관(단체관람) 버스를 타고 내려가 경기를 보고 다시 버스로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24일 밤 한·일전이 열린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그는 1000여 명의 한국 응원단과 함께 목청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경기도 2-0으로 기분 좋게 이겼고 응원에서도 대한민국은 6만의 일본 응원단을 압도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온 그는 잠깐 눈을 붙인 뒤 아침 일찍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했다.

박주영의 얼굴을 그린 대형 걸개를 든 장종수씨.
“힘들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물론 힘들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겼잖습니까. 이기고 나면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는지 피곤한 줄도 몰라요. 며칠 동안 골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려 실없이 웃곤 합니다. 물론 경기에 지면 며칠간은 잠을 청하기가 어렵죠.”

“무박 3일 강행군도 문제 없어요”
장씨는 축구 응원이 매우 강한 중독성이 있다고도 했다. 해외 원정은 무박2일, 심지어 무박3일의 강행군일 때가 많다.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원정 경기의 경우 밤새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가까이 날아가 현지에 도착,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경기장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응원 준비를 한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공항으로 출발해 다시 밤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씩 꼼짝 없이 좁은 좌석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이동하는 것도 쉬운 건 아니지요. 응원을 마치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경기 날짜가 돌아오면 ‘이거 내가 안 가면 안 되는데’하면서 주섬주섬 응원장비를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장씨는 “누가 돈을 주고 이 일을 하라고 하면 몇 백만원을 준다고 해도 못할 겁니다. 내가 좋아서,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거죠.”

그는 서포팅이 건강에도 좋다고 예찬론을 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두 시간 내내 서서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치면 운동량이 상당합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밖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정말 좋다니까요.”
 
발 구르고 소리지르기, 상당한 운동량
50년 넘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장씨는 TV가 없던 시절 라디오로 축구 경기를 들으며 경기 장면을 상상하던 축구광이었다. 1950년대부터 A매치를 보러 다녔다는 그는 당시 최고의 센터포워드 최정민 선수의 플레이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선수들이 헤딩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죠. 무조건 공을 높이 멀리 차면 좋은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최정민 선수는 공 다루는 솜씨가 확실히 달랐어요. 그 선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관중이 엄청나게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1983년 프로축구가 생기면서 그는 축구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다. 매주 열리는 프로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러다가 ‘최정민의 데자뷰’를 만났으니 그가 바로 박주영(25·AS 모나코)이었다.

“2004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결승에서 박주영 선수가 중국 선수 다섯 명을 올챙이 몰듯 몰고 다니다가 골을 넣었잖습니까. 그 장면을 보고 심장이 뛰었어요. ‘야, 우리나라에도 저런 선수가 나왔구나’ 감탄을 하면서 곧바로 팬이 됐죠.”

박주영이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하면서 장씨는 서포터스로 가입해 활동하게 된다. A매치 해외 원정을 따라 나서게 된 것도 박주영이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부터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주영이 할아버지’다.

“주영이 사진을 티셔츠에 커다랗게 인쇄해서 입고 다녔더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수군수군 하더라고요. A매치 때는 주영이 걸개그림을 경기장에 걸려고 하다가 못 하게 막는 사람들과 승강이도 많이 했어요.”

박주영이 AS 모나코에 입단한 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A매치가 열렸다. 장씨는 어렵게 구한 AS 모나코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했다. 그걸 본 박주영이 달려와 “할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그 유니폼은 어디서 사셨어요”라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더란다.

장씨의 휴대전화에는 귀여운 박주영 캐릭터가 그려진 휴대전화 고리가 달려 있다. 그는 자비로 ‘박주영 핸드폰 고리’를 2000개 구입했다. 경기장에 박주영 유니폼을 입고 오는 아이들에게 “우리 주영이 응원 많이 해 줘”라며 하나씩 나눠준다.
 
서울 변두리서 강아지와 생활
우리 사회에는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암묵적 통념이 있다. 젊고, 튀고, 활동적인 행동을 나이든 사람이 하면 당장 ‘체신머리 없다’는 싸늘한 반응이 돌아온다. 장씨도 처음 서포터 활동을 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울긋불긋한 유니폼 입고 설쳐대면 주위에서 뭐라고 할까, 젊은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릴 수는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우리 회원들이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용기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지방으로, 해외로 축구 경기를 보러 쫓아다니는 그를 두고 ‘돈 많고 여유 있는 노년’이라 짐작할 수도 있겠다. 장씨는 젊은 시절 의류 사업과 레스토랑 운영 등으로 돈을 좀 벌긴 했다. 하지만 가정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20여 년 전 부인과 사별했고, 지난해는 유일한 혈육인 딸도 먼 나라로 떠나 보냈다. 지금은 서울 변두리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산다. 외로움을 쫓아버리려고 더욱 축구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장씨는 “우리 세대는 먹고살기 바빠 젊었을 때 자신만의 취향이나 취미를 가질 엄두를 못 냈죠. 그래서 젊은 층과 틈새가 더 벌어졌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 40~50대들이 노년이 되면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클린 서포팅’을 지지한다. 축구 응원 문화가 지나치게 과격해지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라이벌 팀 구장에 갔을 때 손자 같은 상대 서포터로부터 험한 욕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팀에 불리한 판정이 나왔을 때 ‘심판 눈 떠라’고 하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죠. 그런데 상대 팀이 조금 거친 플레이를 했다고 해서 ‘그 따위로 축구 하려면 나가 뒈져라’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라고 봐요. 축구장에는 가족 단위로 오는 분도 많잖아요.”

장씨는 6월 10일 남아공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설렌다. 홍콩을 거쳐 남아공까지는 20시간이 넘는 여정이지만 두렵지 않다. 현지 치안이 워낙 불안하니 몸조심하시라는 권고에도 “다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요. 단체로 움직이면서 돌출 행동만 하지 않으면 큰 문제 없다고 봐요”라고 했다.

장씨는 인터넷을 통해 이청용의 소속팀 볼턴 유니폼을 찾고 있다. 박주영과 기성용(스코틀랜드 셀틱) 유니폼은 갖고 있으니 이청용 것만 구하면 월드컵 조별예선 3경기에 차례로 입고 나갈 거란다. 열정은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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