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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밝아 밤낮 모르고 돌아다녀 ‘로드킬’

셋방살이 설움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주인집 눈치 보느라 목소리는 낮추고, 늦은 귀갓길 발걸음은 그저 ‘살금살금’이다. 한때 서울의 원주민이었다가 이제는 더부살이로 얹혀 지내는 서울 야생동물들. 인간으로 가득 찬 서울에서 인간의 법을 따라 살다 보니 주거지부터 짝짓기와 식생활, 성품에 이르기까지 야생동물의 생태도 변하고 변했다. 동물들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동물들이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고 갇히는 현상이다. 빌딩 숲은 야생동물에게 다리 없는 섬이나 마찬가지다.

야생동물의 힘겨운 서울살이

인간의 개발은 동물 서식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도로나 인공건물이 들어서면 동물들의 서식처는 파괴된다. 동물들의 안방 한가운데에 담벼락이 서고 길이 나는 형국이다. 그래서 동물들이 도심에서 이동하려다 발생하는 것이 로드킬(road kill)이다.
도심뿐 아니라 알고보면 산도 단절돼 있다. 겉으론 푸르러 보이지만, 실상은 물길이 끊겨 있다. 산의 물이 하천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스팔트가 흐름을 막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서울에서 청계산에 그나마 야생동물이 많이 사는 것은 지하수맥이 남았고 계곡에 물이 많기 때문이다. 산과 하천이 연결돼 있지 않으면 산림이 울창해도 일정 크기 이상의 포유류는 살 수 없다.

생활 터전이 단절될 때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근친교배다. 활동 반경이 좁으니, 가까이 사는 친척뻘의 동종과 짝짓고 새끼를 낳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유전자가 건강하지 못해 환경변화에 취약해진다. 생존에 불리한 유전자가 축적되어 질병을 타고날 수도 있다. 다행히 자연이 마련해 둔 장치가 있다. 장마 때 한강이 범람하면 강변에 사는 들쥐, 삵 등은 살기 위해 헤엄치다 다른 지역으로 떠내려가 그곳에 정착한다. 낯선 이성과 짝을 이룰 기회다. 우동걸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은 이를 ‘긍정적 교란’이라고 설명한다. 장마가 지나면 생물 분포가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손이 주기적으로 생태계를 휘저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셈이다.

포유류 야생동물은 대부분 야행성이다. 그런데 가로등이나 자동차 불빛 등 도시의 빛은 이들의 밤을 침범해 동물들의 시간감각을 어지럽힌다.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문태국 본부장은 “해 뜨기 전까지는 깜깜해야 하는데, 밤에도 환하니 동물들이 밤낮도 모르고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이는 로드킬의 원인이 된다. 밤에 도로를 지나다 자동차 전조등 빛을 보면, 인간은 몸을 피한다. 하지만 동물은 한밤의 불빛이 그저 당황스러워 멈춰 있다가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다.

입맛도 변했다. 참새는 주로 씨앗류나 벌레를 먹는다. 그런데 도심에는 떨어진 낱알이 없고, 가로수마다 농약을 뿌려 벌레도 사라졌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밖엔 살길이 없다. 인간의 호의에 기대어 생계를 해결하다 야성과 건강을 잃는 동물들도 있다. 양재천의 너구리들은 사람에게 다가와 먹이를 달라는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도심의 비둘기들이 고지혈증에 시달릴 것이라 얘기한다.

야생동물이 난폭하고 해롭다는 인식이있다. 도심에 출몰해 시민들을 놀라게 하는 멧돼지, 나무에 열린 배마다 부리 자국을 내놓는 까치를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 이들은 환경부 지정 유해야생동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과 관계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한다.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는 배보람씨는 “도심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멧돼지가 겁에 질려 난폭한 성향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퇴로를 막아놓고 소리를 질러 멧돼지를 흥분시킨 뒤, 쥐가 고양이를 무는 형국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은 ‘멧돼지가 난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길조에서 유해조수로 전락한 까치의 사정도 비슷하다.

산중 심처로 숨어들면 야생동물은 안전할까. 최근 걷기 문화의 확산과 등산로의 증가는 야생동물에게 위협이다.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지난해 등산객이 865만 명이 넘는다. 75개 지정탐방로의 총 길이는 165㎞다. 465개 샛길의 총 길이 222㎞와 합하면 서울에서 울산까지 거리다. 인간 발자국이 산 곳곳에 찍히니, 동물들은 산에서도 사람에 치인다. 안방마저 내준 격이다. ‘정상 정복’의 등산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봉호 서울시립대(조경학과)교수는 “‘등산’대신 ‘탐방’의 개념으로 가자”고 주장한다. 입산영역을 제한하고, 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자연을 누리는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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