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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서 36년 연속 흑자 내고 장기집권 꿈꾼다

‘저돌적인 수익머신(Profit Machine)’.
국제축구연맹(FIFA)의 별명이다. 영국의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앤드루 제닝스가 2004년 처음 그 별명을 FIFA에 붙여 줬다. 그는 『피파의 은밀한 거래』의 지은이다. 그는 “제프 블라터(74) 회장이 월드컵 대회를 미끼로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흡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회사 FIFA’의 CEO 제프 블라터


4년이 흐른 뒤인 2008년 FIFA의 향기롭지 못한 그 별명에 경외감이 더해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수많은 금융회사·일반기업·투자자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그해 FIFA는 순이익 1억8400만 달러(약 2200억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한 해 전인 2007년보다 2.7배 늘어난 것이다.

순이익 급증 외에도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재테크 수익이다. 내로라하는 헤지펀드들이 손해를 본 그해 FIFA는 재테크로 1600만 달러(약 19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재테크했는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헤지 거래를 했다고만 설명했다.
FIFA가 2008년 실적을 발표한 지난해 6월 미국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자조 어린 말투로 “블라터와 그 친구들은 아주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지난해만 FIFA의 하늘이 화창했거나…”라고 말했다.

2009년 매출 사상 첫 10억 달러 돌파
FIFA의 하늘은 그 이듬해도 화창했다. 2009년 FIFA는 순이익 1억960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한 해 전보다 6% 남짓 늘어난 것이다. 매출액은 FIFA 역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해마다 벌어들인 순이익을 쌓아 둔 이익 잉여금 규모도 10억6100만 달러로 불어났다. <그래프>

FIFA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리는 2010년에도 매출액과 순이익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1974년 이후 36년 연속 흑자를 기록할 듯하다”고 전망했다.

FIFA의 비즈니스모델은 아주 단순하다. 단일 상품인 축구를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이벤트를 통해 세계 축구팬들에게 파는 구조다. “FIFA는 월드컵이라는 이벤트를 ‘독점적으로’ 파는 기업”이라고 독일 훔볼트대 크리스티안 아이젠베르그(경영학) 교수는 최근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FIFA는 월드컵의 모든 비즈니스를 장악하고 있다. TV 중계권에서 공식 후원사 결정까지 모두 FIFA의 몫이다. FIFA의 이름으로 돈을 벌어 주최국과 참가국에 나눠 주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주최국 시설까지 직접 관할한다.

최근 중앙SUNDAY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와 더반시를 방문해 월드컵경기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FIFA 안전요원이 남아공 정부 공무원의 출입을 막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반면 올림픽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주최국 올림픽위원회(NOC)의 몫이다. 주최국이 돈을 벌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나눠 갖는 구조다.

이런 ‘주식회사 FIFA’의 현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블라터다. 아이젠베르크 교수는 “역대 FIFA 회장 가운데 블라터가 독점적인 지위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며 “그는 주최국을 압박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 블라터는 남아공 정부를 압박해 면세 혜택을 관철시켰다. 올해 월드컵 대회를 통해 FIFA가 벌어들인 수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이다. 덕분에 FIFA는 TV 중계권료 6억2500만 달러와 공식 후원권 판매대금 2억7700만 달러를 고스란히 챙길 수 있게 됐다. 이는 국제 스포츠 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FIFA는 2002년에 중계권료 가운데 22% 남짓을 한·일 양국에 세금으로 내야 했다.

블라터는 한술 더 떠 2018년 이후 월드컵을 유치하려는 나라는 면세 혜택을 서면으로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유치 경쟁을 이용해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셈법이다.

블라터, 아벨란제 돈 관리하며 경영 수업
블라터는 FIFA를 축구 규칙을 만드는 조직에서 수익머신으로 바꿔 놓은 주앙 아벨란제(94) 전 회장의 오른팔이었다. 아벨란제 밑에서 FIFA 사무총장을 17년 동안(1981~98년) 맡았다. 기업으로 말하면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오랜 세월 한 셈이다.

사무총장 시절 블라터는 TV 중계권료를 FIFA 핵심 수익원으로 키웠다. 처음 컬러TV 생중계가 70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 때 시작됐지만 중계권료는 80년대 초까지 FIFA의 주요 수익원이 아니었다. 당시 핵심 돈줄은 다국적 기업들의 공식 후원 계약이었다. 아벨란제가 남미·아프리카 국가의 지지를 받아 74년 FIFA 회장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한 수익원이었다.

그해 아벨란제는 반인종차별을 부르짖으며 출마했다. 상대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를 지지한 영국 스탠리 로스였다. 승리는 아벨란제 몫이었다. 그는 대륙별 협회가 개최하는 대회보다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을 키우기 시작했다. 독일 스포츠용품업체인 아디다스와 미국 코카콜라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어 수익원을 확충했다. FIFA가 비즈니스 조직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초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코카콜라 등과 후원 계약을 벌이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당시 사무총장인 블라터는 방향을 바꿔 각국 방송사에 파는 중계권료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FIFA는 82년 스페인 월드컵 참가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렸다. 파울로 로시 등 걸출한 스타와 늘어난 경기 수는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사들의 군침을 당기기 충분했다.

마침 FIFA,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벨란제의 돈에 대한 목마름도 커졌다. 80년대 초 외채 위기가 발생하면서 남미·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 축구협회 보조금을 삭감했다. 그들이 아벨란제를 찾아와 자금 지원을 호소했다. 아벨란제는 자신의 지지세력인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해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줘야 했다. 블라터는 TV 중계권 협상을 성공적으로 벌여 주군(아벨란제)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줬다. 덕분에 그는 아벨란제에게서 남미·아프리카 네트워크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98년 FIFA 회장에 등극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수익원 확대 재생산
요즘 블라터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남미·아프리카 대표들을 돈으로 매수한 혐의부터 기업들에 뒷돈을 받은 혐의까지 여러 가지다. 한때 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 검찰이 조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최근 미국 CBS 마켓워치는 월드컵 특집기사에서 “블라터 스캔들은 부유해진 FIFA의 어두운 그늘”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FIFA의 비밀주의가 화근이라고 지적했다. 블라터는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아디다스·코카콜라·현대자동차·비자카드·소니 등을 간택했다. 이들 기업은 2007~2010년 월드컵 공식 후원사임을 자랑하며 마케팅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FIFA에 얼마를 줬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블라터는 의혹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저 수익을 늘리는 아이디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축구 최대 시장인 유럽 방송사들을 분할해 협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FIFA는 유럽 TV 중계권은 유럽방송연합(EBU)에 일괄 판매했다. 각국 방송사들은 EBU와 계약을 맺고 월드컵 경기를 중계했다. 올 남아공 월드컵부터 블라터는 축구 시장 규모가 큰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과는 개별적으로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 유럽 국가는 기존 EBU 방식에 따라 중계권을 부여했다.

분할 통치 방식은 효과 만점이었다. 월드컵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유럽 주요 방송사들이 더욱 치열하게 경쟁했다. 블라터는 이중 플레이도 서슴지 않았다. 영국 BBC와 협상을 벌이면서 동시에 민영 방송인 스카이TV와도 접촉했다. 그 결과 블라터는 중계권료를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보다 30~50% 더 받아 냈다. 또 블라터는 후원사 계약 기간을 기존 4년에서 8년으로 늘리고 있다. 두 차례 월드컵을 하나로 묶은 뒤 후원권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받아 내겠다는 전술이다. 아디다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속수무책이다. 블라터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공식 후원사 타이틀을 포기하는 길뿐이다.

최근 블라터는 모바일과 인터넷에서 돈 냄새를 포착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고 있는 점을 활용해 월드컵 인터넷 중계권료를 거둬들이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기존 방송사들뿐 아니라 인터넷TV(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FIFA의 새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영국 브라이튼대 앨런 톰린슨(스포츠경영)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수익머신으로서 FIFA의 효율성이 나날이 높아져 불황을 모를 정도”라며 “하지만 의혹의 눈초리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블라터가 올해 월드컵으로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아 내년 회장 선거에서 실탄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의혹이다. 그의 뜻대로 승리한다면 스승 아벨란제(24년)에 버금가는 장기집권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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