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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0년 만에 여행업계 2위, 100년 가는 기업 만들겠다”

벤처 붐이 한창 불던 2000년 1월 서울 충정로의 작은 사무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셋을 키우던 박혜원(당시 35세)씨는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온라인투어란 ‘닷컴기업’을 차렸다. 인터넷으로 항공권 등 여행상품을 판매했다. 박씨는 전 직원 다섯 명을 불러 모은 조촐한 개업식에서 야심 찬 비전을 선포했다. “IBM의 하청업체였던 마이크로소프트가 결국 IBM을 넘어섰듯이 우리도 언젠가 세계 정상의 관광·문화기업이 되자.”

여성 임원의 리더십③ 박혜원 온라인투어 대표

그로부터 10년 만에 박 대표는 정상을 향한 큰 고비를 넘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2009년 항공권 매출 순위’에서 온라인투어(2143억원)가 국내 1만여 여행사 중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회사는 2008년까지 하나투어·모두투어에 이어 3위에 머물렀지만 지난해는 모두투어를 제쳤다. 과거 두 배 이상 벌어졌던 1위 하나투어와의 격차도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직원 수는 10년 동안 150여 명으로 늘었고, 자본금도 27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단순히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라 내실도 탄탄하다.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이 회사의 항공권 검색·예약 시스템에 대한 남다른 기술력을 인정해 정보통신진흥기금(18억원)을 지원한 것을 제외하면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여행업의 특성에 따라 적자를 본 해도 있었지만 흑자를 더 많이 낸 덕분에 회사 통장에는 이익잉여금(19억원, 지난해 3월 결산 기준)이 잔뜩 쌓여 있다.

박혜원(45) 대표는 최근 서울 명동 본사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여행업 전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단 한 번의 감원·감봉 없이 이뤄 낸 성과라 더욱 값지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여행사가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봤다. 원천기술을 갖고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하면서 100년, 200년을 가는 영속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업계 최초 벤처기업 인증받아
-창업 10년 만에 업계 2위라니 대성공이라 할 만하다. 비결은 뭔가.
“첫째도 기술력, 둘째도 기술력, 셋째도 기술력이다. 경쟁사는 직원이 1500명인데 우리는 150명이다. 그런데 항공권 매출은 우리가 약간 많다. 1인당 생산성으로 따지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 기술력의 핵심은 ‘영화 예매보다 간편한’ 실시간 항공권·호텔 검색 및 예약 시스템이다. 24시간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직원들이 고객에게 일일이 응대하지 않아도 된다. 자체 기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관련 특허도 여러 건을 출원했다. 창업 당시부터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기술력은 우리 같은 벤처기업의 생명이다.”(온라인투어는 2001년 여행업계 최초로 중소기업청에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여행사의 항공권 예약 시스템은 서로 비슷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사이트에 들어온 고객이 기본 정보를 입력하는 순간부터 최종 항공권 발권까지 과정을 8단계로 줄였다. 경쟁사는 최대 25단계다. 한 번 맛을 본 고객이 계속 우리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 다른 여행사는 자체 기술로 시스템을 개발하기보다 외주를 주거나 링크를 걸어 놓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으니 제2, 제3의 진화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 게다가 항공사 홈페이지에는 없
는 저렴한 요금까지 제시하니 금상첨화다.”

-요금은 얼마나 싼가.
“영업 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웃음). 분명한 사실은 가격 경쟁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출이 많아지면 항공사와 가격 협상력이 커진다. 그러면 다른 여행사보다 유리한 요금을 받아 올 수 있다. 매출 극대화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내년 하반기 해외 진출 구상도
-가정주부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대학생 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 졸업 후 대기업(SK)과 공기업(KOTRA)에서 잠시 일했다. 전공이 문헌정보학이라 해외 정보 등을 수집·가공하는 일이었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직장 생활에 대한 한계도 많이 느꼈다. 특히 큰 조직에서는 열심히 일한 개인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것을 자주 봤다.”

-창업 아이템으로 다른 것도 많았을 텐데 왜 여행업을 선택했나.
“1994년 첫 해외여행으로 런던에 갔다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조금 더 일찍 외국을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 후 유럽에선 가 보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다 돌아다녔다. 벤처 붐이 일었을 때 정보기술(IT)과 접목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일지 고민했다. 그랬더니 여행업이란 결론이 나오더라. 여행상품은 일부 패키지 관광을 제외하고 품질의 차이가 크지 않다. 관건은 서비스인데 ‘친절한 직원’을 많이 두진 못해도 ‘친절한 시스템’에는 자신 있었다.”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사무실을 구하고 집기를 들여놓는 것에서부터 직원을 뽑고 법인 설립 등기를 하는 것까지 법무사나 대행업체에 맡기지 않고 전부 직접 했다. 전화도 받고 티켓도 끊고 1인 10역을 한 것 같다. 항공사에 갔다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한 적도 많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더니 차츰 인정을 받고 모양새도 갖춰 나갔다. 올해로 45세인데 솔직히 내 나이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직도 마음은 10년 전 그대로다.”

-여행업은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한 업종이다. 위기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최근 중앙SUNDAY에서 ‘위기가 닥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투명성이다’는 글을 읽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설립 첫해부터 외부 회계감사를 받았다. 부실을 숨기거나 우회상장 등으로 한눈을 팔지 않았다. 회사가 잠시 어렵다고 월급을 깎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직원들의 확실한 믿음을 얻고 비전을 공유하려 노력했다. 또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이다. 혁신이 없으면 제자리에 머물고, 그것은 곧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증시에 상장할 계획은 없나.
“사실 2006년에 상장을 추진하다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중단한 적이 있다. 아직 구체적 시기는 말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상장할 계획이다.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다. 상장을 통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장으로 대주주나 회사만 돈을 번다고 하면 직원들은 커다란 상실감을 느낀다. 상장 차익을 보고 돈을 싸들고 와 투자하겠다는 제안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실제로 상장 후 휘청거리는 회사를 많이 봤다.”

-해외 진출 계획도 있나. 세계 정상의 관광·문화기업을 목표로 한다고 했는데.
“내년 하반기 정도에 일본·중국·동남아에 현지 법인을 세운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 해외에서 온라인 기반으로 영업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가격 경쟁력이 있고 번역 시스템을 잘 구축하면 중국 사람이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도 우리에게 와서 사 갈 것이다. 현재는 국내 관광객을 해외로 내보내는 아웃바운드 영업을 하지만 앞으로는 외국 관광객을 한국으로 불러오는 인바운드 영업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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