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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지난 25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의회 개원식을 주재했다. 화려한 왕관을 쓴 채 마차를 타고 전통 복장의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왕궁인 버킹엄궁을 출발해 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영국 군주는 매년 의회가 새 회기를 시작하거나 총선 뒤 새 정부가 구성되면 개원식을 열고 국정연설을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전통은 영국에서 독립해 공화국이 된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연초 대통령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그렇다.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 미국에서 독립한 필리핀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다.

재미난 것은 영국 군주는 국정연설을 반드시 상원에서만 한다는 점이다. 군주는 절대 하원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7세기 이래의 전통이다. 1642년 국왕 찰스 1세가 자신에 맞서는 의원들을 잡으려고 하원에 들어갔다가 의장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나간 게 마지막이다. 군주가 의회의 일에 간섭할 수도, 압력을 넣을 수도, 심지어 하원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이 전통은 국왕으로부터 민중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둥이 됐다.

영국 상·하원에는 모두 긴 의자가 층층이 놓여 있다. 전통적으로 상원은 붉은색, 하원은 녹색이다. 가장 앞자리에는 총리와 야당 당수, 정부 각료와 야당 그림자 내각의 각료들이 마주보고 앉는다. 그 사이 바닥에는 2.5m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검 두 개의 길이다. 말싸움 대신 칼싸움에 의존하려는 불상사에 대비해 그어 놓은 전통의 평화선이다.

그 사이에서 여야는 끝없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한다. 영국 민주주의의 힘은 토론이고 그 토론의 장이 바로 의회다. 전통적으로 의회에선 상대방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방을 ‘돼지’라고 모욕해도 안 된다. 물론 “돼지에게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부를 자유는 있다”는 정치유머의 전통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하원총회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좁아서 놀랐다. 가로 14m, 세로 20.7m로 넓이는 290㎡다(상원도 넓이가 334㎥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으니 650명의 하원의원이 자리에 다 앉을 수도 없다. 총리가 연설하거나 대정부 질문이 있을 때면 당선 횟수가 적은 의원들은 총회장 양쪽에 서서 이를 경청한다. 좁다고 투덜거릴 법도 한데 그런 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전통의 힘이다. 국민의 대표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국민이 낸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는지를 감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회에 수많은 전통이 생긴 연유도 바로 이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뽑을 다양한 대표들이 맡을 임무도 그들과 다를 게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차이는 있어도 국민(주민)의 대표로서 세금을 제대로 쓰게 하고 그것을 감시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그동안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중에 비리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이가 부지기수다. 그런 이들을 수없이 뽑아준 오욕의 전통을 이번에는 꼭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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