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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부담 주면 안 돼요. 안 온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습니다”

1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음식점 뒷마당으로 나가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하나둘씩 끼어들어 판은 점점 커진다.
고3 스트레스도 쉬어가는 시간
23일 낮 1시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인근 고깃집. 김종해 시인과 부인 박영자(72)씨, 큰아들 요일(45ㆍ시인ㆍ아이들판 대표)씨 부부와 요일씨의 자녀 새힘(고3)·새별(고1), 둘째아들 요안(43ㆍ문학평론가ㆍ문학세계사 기획실장)씨 부부와 요안씨의 자녀 이삭(중2)·이솝(초6), 막내딸 봄비(37)씨 부부와 봄비씨의 아들 찬샘(초2) 등 가족 13명이 모두 모였다. 만나자마자 시끌벅적 얘기가 많다.

30년간 매주 일요일 온 가족이 함께 점심 먹는 김종해 시인의 ‘食口 이야기’


2 1979년 경주에서 찍은 가족 사진. 2남1녀 모두 ‘품안의 자식’일 때다.3 89년쯤 찍은 사진. 이때도 식구 수는 다섯 명이었다.4 96년 막내딸 봄비씨의 대학 졸업식장에서. 새힘ㆍ새별은 고모 졸업식을 축하하러 왔고, 이삭은 엄마 뱃속에 있었다.5 2001년 여름 제주도 가족여행 사진. 두 아들이 모두 1남1녀를 낳고 봄비씨가 결혼해 12명 대가족이 됐다.6 2001년 가을 강위수 작가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 두루뫼 박물관에 가족이 모였다. 아직 찬샘이는 태어나기 전이다.
“똑같다, 똑같애.” 이삭은 숙모(요일씨 부인 손민경씨)와 등을 맞대고 서 키를 쟀다. 숙모 키는 165㎝. ‘숙모만큼 크고 싶다’고 몇 년을 별러 왔던가. 요즘 부쩍 큰다 싶더니 드디어 비슷해졌나 보다. 가족들은 “똑같다”를 외치며 함께 흥분해줬다. “모델 해도 되겠다”고 추임새까지 넣어주니 이삭 얼굴엔 뿌듯한 표정이 흐른다. 그사이 이솝과 찬샘은 사촌형 새힘의 양 팔을 잡아당기며 밖에 나가 축구를 하자고 조른다. “밥 먹고”라며 동생들을 달래는 새힘. 고3 스트레스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어느새 불판의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술 한잔 빠질 수 없는 자리. 할아버지가 제일 서둘렀다. “애들은 사이다 채워라.” 초등학생까지 잔을 든다. “건배사는 뭘로 하지?” 오락가락 날씨 때문인지 감기 기운을 못 벗은 할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은 “감기 빨리 나으세요”를 외쳤다.

다섯 명으로 시작해 이젠 열세 명
“막내 봄비가 대여섯 살쯤 됐을 때부터니, 이제 30년이 넘었네요.”
박영자씨 말에 따르면 이들 가족에게 일요일 점심 외식은 오래된 습관이다. 부부와 2남1녀, 그렇게 다섯 식구의 오붓한 외식으로 시작했고, 참석자 수는 세월 따라 자연스레 늘었다. 둘째 며느리 임선미(43)씨는 “남편과 사귄 지 한 달 됐을 때부터 일요일 점심 모임에 함께 왔다”고 말했다. 그 세월이 15년이다. 며느리 입장에서 매주 시집 식구들을 만나는 게 반갑기만 할까.

결혼 19년차인 큰며느리 손민경(42)씨는 “처음엔 친구들이 ‘너네가 너무 잘하는 것 아니냐’며 경계하는 충고를 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 친구들의 반응이 이젠 “어른들이 그렇게 잘하시니까 너네가 따라가는 거지”로 바뀌었다고 한다.“그동안 시부모님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만나면 늘 재미있고 맛있는 음식 먹고 그러니 모이기 싫을 이유가 없죠.”어머니 박씨는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나무라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엄한 아버지 역할을 해줬으니, 엄마까지 악역을 할 필요가 없었죠. 또 애들이 잘했어요. 착했고 공부도 잘했고…. 그러니 혼낼 일이 뭐 있나요.”
부모 욕심이야 끝 간 데 모르기 십상인데, 박씨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늘 만족스러워했다. 그 눈높이는 며느리ㆍ사위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못마땅한데도 참으시는 게 아니에요. 자식들 입장을 진짜 진심으로 이해하신다니까요.” 딸 봄비씨 말에 사위 곽만재(40ㆍ한국IBM 팀장)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장인ㆍ장모님은 ‘내가 부모니까…’ 식의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아요. 자식들한테 강압적으로 요구하시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아버지와도 스스럼 없이 ‘한잔’
제아무리 즐거운 모임이라 하더라도 ‘매주 일요일’이라는 규정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혹 압박으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아니에요, 아니에요. 일이 있어 연거푸 2∼3주 못 온다 연락 받을 때도 있죠. 그래도 전혀 아무렇지 않아요.”
어머니 박씨는 내내 ‘자유’를 강조했다. 이유는 “내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내가 편안하게 살자면 자식들에게도 부담 주면 안 되죠. 자식들이 내게 잘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또 나도 별다르게 잘해주지 않고…. 그렇게 살아요.”

김종해 시인은 “안 온다고 섭섭해 하면 그건 어른 노릇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참석 못하면 못 오는 사람에게 아쉬운 일이지, 다른 가족에게 미안해 할 일은 아닌 것이다.강제는 아니지만 출석률은 높다. 3년 전 큰아들 요일씨가 암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도 모임은 이어졌다. 약속장소가 병원이었을 뿐, 일요일 점심엔 늘 가족들이 모였다.

이들 가족이 매주 꼬박꼬박 만나는 데는 ‘맛있는 음식’이 기여한 바도 크다.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면 꼭 애들에게도 먹여보고 싶다”는 할아버지. 소문난 미식가로 알려진 그가 고르는 음식점이니 그냥 한끼 때우는 수준을 넘는다. 이날 모인 돼지갈비집 ‘솔밭농원’은 “우리가 이 집 고기에 중독됐나 보다”라며 3주에 한 번꼴로 가는 곳이란다. 그리고 샤브샤브집 ‘일품당’과 ‘오장동 함흥냉면’, 마포 ‘조박집’ 등도 자주 들른다. 손녀 이삭은 “할아버지 따라 맛집에 다니며 성게나 장어 같이 친구들은 못 먹어 본 음식들을 많이 먹어봤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며느리들은 시아버지에게 술을 배웠다. 어른 앞이라며 고개 돌리고 술을 마시는 식의 주도(酒道)는 처음부터 없었다. 편하게 즐겁게 마시기 시작했고, 이젠 소주 한 병쯤은 기본이 됐다. “새힘이 낳기 전날도 아버님과 술을 마시다가….” 큰며느리 손씨가 이야기를 꺼냈다. 출산 예정일 1주일 전이었다고 한다. 순산하라며 시아버지가 술을 권했고, 그 술에 만삭의 며느리는 취하고 만다. 그 때문인지 그날 밤 갑작스레 양수가 터졌고 곧 새힘이를 낳게 됐다는 것이다. “애가 태어났는데 얼굴이 벌겋더라고요. 한눈에 ‘내 애다’ 알아봤죠.” 큰아들 요일씨도 이야기를 신나게 거든다. 자주 만나 자주 부대낀 가족답게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우린 친척이 아니라 한 식구”
이야기는 소재를 바꿔가며 줄곧 유쾌하게 흘렀다. 하지만 금기어도 있다. 바로 정치 얘기다.
“옛날 같으면 선거 앞두고 한참 목소리 높였을 거예요. 아버지와 오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서요. 이젠 아예 대화 소재로 올리질 않죠.” 봄비씨가 설명했다. 한때 아버지는 “너희가 만약 ○○를 찍는다면…” “이번 한 번만 △△를 찍어주면…”이라며 자녀들을 앉혀 두고 ‘협박’과 ‘읍소’를 하곤 했었단다. 당시엔 서로 답답했을 대화인데, 지나고 나니 그 역시 추억이다.

정치만큼이나 열띤 대화 주제는 또 있다. 바로 프로야구. 가족들이 응원하는 팀이 롯데와 LG로 나뉘었다. 마침 현재 순위가 5위와 6위니, 팽팽한 설전이 불가피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누리는 대가족 문화는 아이들의 생활도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외동인 찬샘은 “형들이랑 축구도 하고 달리기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하고, 이삭은 “(사촌)언니ㆍ오빠가 공부를 잘해서 좋다”고 했다. 의젓한 맏형 새힘은 “다른 애들은 할아버지ㆍ할머니를 일 년에 서너 번밖에 안 만나 좀 서먹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매주 만나 가깝게 지내니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린 명절 때 만나는 친척이 아니라 한 식구”라고 했다. 최근 DSLR 카메라를 마련한 새별은 사촌들 모습을 찍느라 계속 바쁘다.

1년에 한두 번씩 가족여행을 하는 것도 이들 가족의 즐거움이다. 그동안 경주ㆍ백령도ㆍ제주도 등을 돌았고, 발리ㆍ코타키나발루 등으로 해외여행도 했다. 올여름엔 아버지 고희 기념으로 대마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대마도는 부산 출신인 아버지가 ‘먼 바다 수평선 너머/아련히 보이는 대마도/눈썹 끝에 맺힌 섬은 슬프기만 하다’(‘봄날’ 중)며 시에 담았던, 추억이 어린 섬이다. 여행 경비는 매달 가정당 15만원씩 내는 회비로 충당한다. 그리고 모자라는 비용은 부모님이 채워 주신다 했다. 그러고 보니 매주 밥값도 거의 아버지가 낸다. “자식이 부모를 찾아왔는데 부모가 밥 주는 게 당연하다”는 아버지의 ‘밥값론’에 따라서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차장까지 걸어간 가족들은 좀처럼 흩어지질 못한다. 무슨 할 말이 이토록 많은 걸까. “자주 만나니 시시콜콜한 부부싸움 얘기까지 다 언니들에게 하게 된다”는 봄비씨는 “이렇게 가족끼리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렇게 매주 새 힘을 충전받아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한다. 분명 유리한 스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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