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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

지난 4월의 마지막 날 저는 아끼던, 한 여인을 떠나보냈습니다. 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아트디렉터였습니다. 두 달 전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유학을 가겠다. 그리고 유학수속을 밟기 전에 먼저 유럽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다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참 부럽다. 너의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너의 그 자유에 축복을 보낸다.” 그랬던 그녀가 차가운 시신으로 동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자살이었고 원인은 실연이었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잃을 때 죽음을 선택합니다. 삶의 의미보다 죽음의 의미가 더 클 때 죽음을 선택합니다. 전자는 자신의 삶의 의미였던 대상이 사라졌을 때 일어납니다. 자살의 경우입니다. 후자는 자신의 목숨과 지키려는 가치 사이에 양자택일을 요구받을 때 일어납니다. 순교(殉敎)의 경우입니다.

“삶의 의미란 말에서 의미는 그 사람의 의미가 아니라 삶의 의미다. 즉 의미의 주어(主語)는 사람이 아니라 삶인 것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는 우리가 삶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심리학자 빅터 E 프랭클이 한 말입니다. 저는 떠나보낸 옛 직장동료와 같이 근무할 때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권하지 못한 것을 한동안 후회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순교는 자신이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순교자는 삶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와 죽음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죽음이 기대하는 바를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에게는 죽음이 자신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가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합니다. 단지 삶에게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삶에게 기대하는 소리의 볼륨을 꺼보십시오. 그러면 삶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삶은 각기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주제 넘는 일이 되고 맙니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각 삶의 단계별 발달과제(發達課題) 정도입니다.

10대의 발달과제는 선택(選擇)입니다. 어느 분야에 뿌리를 내릴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무의 씨앗은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거목이 되기도 하고 분재가 되기도 합니다. 20대의 발달과제는 양적(量的) 성장입니다. 능력의 넓이, 관심의 넓이를 최대한 키우는 것입니다. 20대의 가슴에는 누구에게나 광개토대왕이 있어야 합니다. 30대의 발달과제는 질적(質的) 성장입니다. 20대에 넓혀 놓은 능력의 땅에 질적 깊이를 더하는 것입니다. 40대의 발달과제는 수확(收穫)입니다. 40대에 평생 먹을 것을 벌어 놓지 못하면 그 인생의 겨울은 추워집니다. 50대의 발달과제는 조화(調化)입니다. 버는 것과 쓰는 것,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사이에 균형을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60대 이후의 발달과제는 유지(維持)입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야만 떠내려가지 않는 배와 같습니다.

오늘은 5월 30일, 오늘의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천년이 지나갑니다” 1999년 말, 새 천년을 앞두고 한 정보기술(IT) 회사를 위해 쓴 카피입니다. 다가올 6월 2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투표로 말하세요. 말하지 않으면 4년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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