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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담근 간간한 멸치젓갈 ㆍ호박잎ㆍ물미역에 싸 먹으면 별미

멸치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겠지만 생멸치를 보지 못한 한국인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가공된 형태로 나온 식재료만 보아온 도시 사람들이, 애초에 그 재료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짐작하는 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생물도감에 나와 있는 고사리 그림이, 왜 나물로 볶아 먹는 꼬부라진 고동색 식물과 같은 것인지, 나는 정말 오랫동안 의아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산에서 솟아나는 고사리 싹을 보고서, 그리고 몇 달 후 그것이 거대한 이파리로 자라 있는 것을 보고서야 밥상 위의 고사리와 생물도감 속의 고사리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멸치도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에게 멸치란 늘 비쩍 마른 작은 물고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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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혼 후 어느 날 시댁에서 희한한 멸치조림을 맛보았다. 마른 멸치를 조린 것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없이 마른 멸치만 조렸다는 것도 희한한 일인 데다가, 그 마른 멸치 맛이 독특했다. 울산에 계신 시이모님이 생멸치 말린 것을 보내오셨다는 시어머님 말씀을 듣고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을 헤매고서야 겨우 이해한 사실은, 우리가 아는 마른 멸치는 생멸치를 끓는 물에 데쳐서 말린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고서 또 얼마 후, 추어탕처럼 생선살이 풀어진 된장국을 먹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멸치국이었다. 마르지 않은 생멸치를 삶아, 된장과 얼갈이배추 등을 넣고 끓인 국이었다. 이것을 먹어보고서야 나는 말리지 않은 ‘생멸치’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이제 나는 해마다 이때쯤이면 생멸치를 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4월 중순이면 기장 멸치축제를 가보고 싶고, 5월부터 6월 초까지는 수산물 도매시장에 나가 멸치를 살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계절에 도매시장에서는 납작한 상자에 담아 생멸치를 판다. 파르스름하게 반짝거리는 작은 생선인 생멸치를 직접 눈으로 보면, 그것이 고등어·삼치·꽁치·정어리·전어처럼 등 푸른 생선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살은 매우 연하고 기름기가 많으며 달착지근한 맛도 강해, 어떻게 조리해 먹어도 매우 맛이 있는 재료다. 하지만 이 계절에 이것을 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으로 멸치젓을 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늦봄에 밤 10시가 넘어 우연히 들른 수산시장에서 생멸치를 만났다.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사다가 멸치 한 짝을 발견한 것이다. 어찌나 신선한지, 그 연한 살이 하나도 무르지 않고 반짝거렸다. 상인 말로는 이 정도면 그냥 회로도 먹을 수 있다는데, 정말 눈으로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자가 꽤 컸다는 점이다. 반 상자는 팔지 않는다니 다 살 수밖에 없는데… 그 상자 앞에서 한 10분쯤 망설였나 싶다. 결국은 그 반짝거리는 멸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차에 싣고 왔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시장에서 생멸치를 사서 직접 젓을 담가 달라고 부탁하면, 멸치를 씻지 않은 채 김장용 비닐봉투에 왕소금과 함께 섞어 준다. 그대로 항아리에 넣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입맛에 시장에서 담가 주는 멸치젓은 너무 짜다. 소금을 덜 넣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전문가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해줄까 봐. 이렇게 넣지 않으면 상해요” 하며 바가지로 소금을 푹푹 퍼서 넣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게 ‘전문가’ 레시피인 모양이다. 산지에서도 그렇게 멸치젓을 담그니 시중에 파는 멸치젓도 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10년 전부터 직접 멸치를 사다가 젓을 담그기로 마음먹었고, 이 계절에 생멸치를 사는 것이다.

작년에도 그래서 멸치 한 짝을 사서 그대로 집에 들고 왔다. 집에 들어온 시각이 밤 11시. 그래도 이 생물을 어쩌랴. 그대로 두면 상해버릴 테니 어쨌든 처리를 해야 한다. 우선 특별히 싱싱하고 굵은 것들을 몇 개 골라 다듬어, 집에 있는 야채와 함께 비빔회를 버무렸다. 멸치회는 고추장보다는 된장을 기본양념으로 쓴다. 새콤하고 구수한 멸치회에 막걸리 한두 잔을 남편과 나누어 마셨다.

여기까지는 행복한 밤참이었다. 그러고는 검불이나 스티로폼 조각 하나라도 씻어버리고 싶어서 멸치를 깨끗한 물에 한 번 헹구는데, 어찌나 양이 많은지 나중에는 진땀이 났다. 멸치 기름과 생선비늘로 뒤범벅이 되고, “내가 또 이런 짓을 하다니, 미쳤지, 미쳤어” 하는 말을 몇 번 반복하고서야 그 노동은 끝이 났다.

사실 젓갈 담그기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생멸치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만 넣으면 되니 말이다. 적당하게 간을 보는 것이 관건이지만, 생선이 엔간히 절여진 4, 5일 후에 국물을 약간 찍어먹어 보면서 다시 간을 맞추면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

젓갈 항아리는 창호지나 소창 같은 헝겊으로 단단히 봉하고, 항아리 뚜껑을 덮어서 실온에 둔다. 간장이나 된장처럼 햇볕을 쐴 필요는 없다. 새우젓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숙성되니 땅을 파고 묻으면 더 좋다고 하는데, 멸치젓은 두어 달만 지나면 다 익으니 그럴 필요도 없다. 단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라 그것을 빨아들일 종이를 덮는 것이 좋은데, 요즘은 깨끗한 창호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커피여과지를 덮어놓으면 안전하다.

날이 더워올 때쯤 멸치젓 항아리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 멸치젓이 익은 것이다. 너무 짜지 않게 담근 젓갈이니 더 상하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면 한두 해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잘 숙성된 멸치젓은 마늘과 고춧가루나 풋고추 등을 썰어 넣고 반찬으로도 먹고, 날 양배추나 찐 호박잎, 물미역이나 다시마 등과 쌈을 싸 먹어도 기막히게 맛있다. 입속에서 살살 녹는 멸치 살을 건져 먹고, 남는 국물과 뼈 등은 김장 담글 때 양념에 넣으면 걸진 남도식 김치 맛을 잘 살려준다. 그러고도 남는 찌꺼기는 약간의 물을 넣고 끓여 국물만 보관하면서 틈틈이 양념으로 쓰니,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게 문제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내면 작년에 “미쳤지”를 연발하던 마음을 잊어버리고, 또 멸치젓을 사러 도매시장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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