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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68>다양한 경력의 서기원 Ⅰ

1976년부터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으로 일하던 서기원은 79년 10·26으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대통령 공보비서관(대변인)직을 맡았다. 그 무렵 전두환은 보안사령관과 합동수사본부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청와대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었다. 청와대를 처음 방문하던 날 군복 차림의 전두환이 권총을 찬 채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려는 것을 서기원이 제지했다. ‘권총을 비서실에 맡기고 들어가라’고 무뚝뚝하게 말하자 전두환은 험악한 눈초리로 서기원을 노려보다가 돌아서서 권총을 비서실에 맡긴 뒤 들어갔다. 어떤 기록에서 본 듯도 싶지만 서기원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할 때도 서기원은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하야 성명을 기초했다. 소설가로서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 이후 서기원은 그때의 체험들을 어떤 형태로든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놓곤 했으나 결국은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혹 어디엔가 원고뭉치로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에서, 특히 소설에서 작가의 현실적인 체험이 무엇보다 중시된다면 서기원이야말로 누구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축적한 작가였다.

1930년 서울 송월동에서 태어난 서기원은 서울대 상대 재학 중 6·25가 발발하자 공군장교에 자원 입대, 55년 대위로 예편한다. 제대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서기원은 생활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57년 습작 가운데 ‘안락사론’과 ‘암사지도’가 황순원의 눈에 띄어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게 된다. 그때부터 ‘전후문학의 기수’로 불리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펴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벗어나지 못해 50년대 후반 동화통신사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몸담는다. 서울신문 도쿄특파원, 동화통신 경제부장을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마지막으로 언론계를 떠나 72년 경제기획원 대변인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한다.

이미 60년을 전후해 ‘오늘과 내일’로 ‘현대문학상’을, ‘이 성숙한 밤의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해 작가적 재능을 두루 인정받은 서기원은 언론계 생활 중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단편소설은 물론 ‘혁명’ ‘김옥균’ ‘이조백자 마리아상’ ‘사금파리의 무덤’ 등 장편소설도 많이 썼다. 특히 70년대 초에 발표한 5편의 연작소설 ‘마록열전’은 특이한 형태의 풍자소설로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관직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제5공화국 출범 후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처음 발표한 작품이 조광조의 개혁사상을 다룬 장편소설 ‘왕조의 제단’이었다.

그 무렵 그는 관직과 문학활동을 병행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문학 그 자체가 생계의 방편이 될 수 없으므로 대개는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마련이지만, 다른 직업은 몰라도 관직을 가지게 되면 심리적 갈등에 부닥치게 된다는 것이다. 관직과 문학은 물과 기름처럼 잘 섞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책임감과 성실성이 늘 강조되는 관직생활에서 한눈 팔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기질이 관직으로 인해 녹슬거나 훼손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자리에 있든지 간에 틈틈이 책을 읽고 자료를 갖춰 언젠가는 쓰게 될 작픔을 구상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도 서기원은 여러 개의 요직을 거쳤다. 문예진흥원장 직을 맡는가 하면 서울신문 감사를 거쳐 사장을 역임했고 뒤이어 KBS 사장을 지냈다. 이처럼 계속 요직을 떠맡을 수 있었던 것도 매사에 분명하고 꼼꼼하며 성실하다는 점이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가 원했던 자리들은 아니었다. 90년 KBS 사장으로 발탁됐을 때도 처음에는 완곡하게 고사했다가 마지못해 취임했으나 노동조합과의 갈등으로 하루하루가 편치 않았다.

문학에 대한 서기원의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경제기획원 대변인으로 취임한 직후인 72년 말 신춘 ‘중앙문예’ 소설 부문의 심사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다른 두 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박범신의 ‘여름의 잔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했으나 서기원은 약간의 단점을 지적하고 가급적이면 손질을 해서 발표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심사위원의 그런 의견만 전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직접 만나 지도하겠노라고 했다. 박범신과 함께 대변인실로 그를 찾아갔을 때 박범신을 곁에 앉혀놓고 원고지를 한 장 한 장 들춰가며 자상하게 지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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