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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지휘자가 드문 이유

나는 음악, 특히 클래식에 대해서라면 문 밖의 사람이다. 음악을 들으면 꼭 어딘가에 갇힌 느낌이 들어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밖으로만 나오다 보니 그만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되어버렸다. 문외한이 자진해서 음악회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도 누군가 가자고 하면 싫다고는 하지 않고 따라나선다. 서울시향의 연주회에 가자는 전무님을 따라간 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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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시작되려면 10분은 더 있어야 한다. 그 10분이 나는 불편하다. 문 밖의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간 셈이니 주눅이 드는 것인지 모른다. 반면에 전무님은 축구공을 만난 박지성 같다. 마치 박지성이 공을 몰고 가듯 전무님은 해박한 음악지식을 음악회라는 그라운드 위에서 맘껏 펼친다. 지휘자 정명훈이 왜 천재인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진은숙이 얼마나 대단한 작곡가인지, 왜 비비아네 하그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함께 간 신 팀장과 박 대리는 그런 전무님을 감탄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럴수록 나는 더 주눅이 든다. 주눅 든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사가 밖으로 드러났을까? 신 팀장이 내 자세를 지적한다.
“부장님, 왜 그러고 계세요?”
“뭐?”
“상체를 잔뜩 부풀려서 앉아 있잖아요.”
“의자가 불편해서 그래요.”

신 팀장이나 박 대리는 내 변명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들은 나를 마치 화난 침팬지라도 되는 것처럼 쳐다본다. 침팬지는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뭔가 아는 체를 하고 싶다. 아이디어 하나가 악상처럼 문득 떠오른다.

“신 팀장, 지휘자 중에 대머리가 드문 이유를 알아요?”
“네?”
“왜 언젠가 식물에 클래식을 들려줬더니 더 잘 자라더라는 뉴스 있었잖아요. 항상 음악을 들으니까 머리카락도 잘 자라는 것 아닐까? 봐요, 전무님도 머리숱이 엄청 많잖아. 앞으로 대머리 남자들이 헤드폰을 끼고 앉아서 한 시간 정도 클래식을 듣는 클리닉이 생길지 몰라요. 곡목은 ‘대머리를 위한 발모교향곡’. 생각만 해도 근사하죠?”

“그런 곳이 생기면 부장님부터 가셔야겠네요.”
드디어 연주가 시작됐다. 정명훈의 지휘는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친다. 나는 지휘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음악회에서 지휘자의 지휘는 뭘까? 지휘자와 교향악단은 오늘 연주하는 곡들을 이미 수없이 연습했을 텐데. 지휘가 없어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악단의 연주자들은 가끔 지휘자를 쳐다볼 뿐 악보를 보면서 연주한다.

아, 알겠다. 연주 당일 지휘자의 지휘는 악단이 아니라 객석을 향해 있는 것이다. 청중에게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서비스다. 지휘자의 몸짓을 통해 음악의 고저와 강약과 완급을 해설해주는 서비스. 문제는 지휘자의 이런 몸짓이 청중에게 뒷모습으로 보여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지휘자는 발을 구르고 상체를 흔든다. 그래도 음악의 서정과 격정, 침잠과 비상, 광포한 격동 그 클라이맥스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역시 지휘자의 머리카락일 것이다. 대머리 지휘자가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놀라운 발견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아무리 실황 녹음 중이라 해도 말이다.

“신 팀장, 지휘자 중에 대머리가….”
내가 입을 열자마자 신 팀장을 비롯해 객석의 청중이 일제히 나를 노려본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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