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칸 국제영화제가 남긴 단상

한국 영화는 이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3일 폐막된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거머쥐었다. 3년 전 영화 ‘밀양’으로 배우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이목을 끌었던 이 감독은 이번 각본상 수상으로 세계 영화계에 확실히 그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사회적 약자들의 비루한 삶을 소재로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져왔던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남다른 철학과 사유를 가진 이야기꾼 ‘이창동’을 알아본 칸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영화팬으로서 세월의 더께를 거부하지 않은 여배우 윤정희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연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칸 영화제가 선택한 이창동 감독의 ‘시’가 정작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공모에서는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이 사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의 국제적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의 제작 프로젝트 지원을 통해 영화 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공모에서 이 감독의 ‘시’가 평점 평균 70점을 넘기지 못해 탈락한 것은 물론 한 심사위원으로부터는 ‘0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영진위는 1997년 ‘애니깽’ 이후 거의 작품 활동이 없는 김호선 감독의 작품을 선정했는데, 이를 두고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력 때문에 이 감독이 배제됐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그리고 이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으로 다시 이를 둘러싼 뒷말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물론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 국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칸 영화제 수상소식과 동시에 들려온 영화인회의 등 13개 영화 관련 단체들이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은 뭔가 석연치 않다. 지난 20일,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사업’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들이 칸 국제영화제에 출장 갔던 조 위원장이 여러 차례 국제전화를 걸어 ‘내부 조율’ ‘밸런스’ 운운하며 특정작품을 거명하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조 위원장이 거명한 작품은 북한에 삐라를 날리는 우익단체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신상옥 감독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등이라고 하는데, 둘째 작품에는 자신이 직접 인터뷰이로 출연한다고 하니 참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처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초 독립영화 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주체 선정 과정에서도 실적과 성과가 없는 급조된 단체를 선정, 영화계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친정부, 보수 성향의 조희문 위원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영진위가 이처럼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데는, 문화예술계마저 좌우로 ‘정치적 편 가르기’를 일삼아온 정권의 원죄가 적지 않다.



MB정권이 출범한 이후 문화예술계·방송연예계는 물론 종교계까지 우리 사회는 이른바 ‘정치적 외압’ 논란으로 들끓고 있다. 가수 김C의 ‘1박2일’ 하차를 두고 네티즌들이 현 정부에 밉보인 방송인 김제동과 같은 소속사여서 하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당사자와 소속사 대표, 제작진까지 나서 해명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2010년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또 지난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의 사회를 본 이후 지상파방송 MC에서 하차했던 김제동씨가 케이블채널 Mnet에서 새로 진행하려던 ‘김제동 쇼’가 뚜렷한 이유 없이 방송이 지연되면서 ‘정치적 외압’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지나친 정치적 해석인가.



그 판단에는 사회구성원들이 가진 ‘상식(常識)’이 준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념의 늪에 빠진 사회에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명한 인류학자였던 클리퍼드 기어츠가 정의했듯 ‘상식’이 일종의 주류 문화체계라 해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다수가 이성애자라고 해서 동성애를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익숙한 잣대로만 세상을 보고 옳다고 믿는 것, 이는 홍콩 출신의 시사평론가 량원다오(梁文道)가 말한 ‘반편이들의 상식’이다. 우리 사회가 ‘온전한 상식’을 회복할 때, 좌든 우든 정치적 성향을 초월한 문화적 토양에서 다양성을 키운 한국 영화가 다시금 칸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



김미라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