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전문가 기고] 아키히토 일왕 발언 의미는…

이번에 아키히토 일왕의 혈연관계 발언을 놓고 일본 국민들이 놀랐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무척 놀라운 일이다. 일왕가가 모두 백제 계통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멀리 1200여년 전의 한 천황의 생모가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 무슨 큰일인가. 더구나 그것은 일본 사서에 나와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그런 발언을 한 것에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상식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싶다. 그러면 문제가 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8세기 후반에 재위했던 환무(桓武)천황의 어머니는 광인(光仁)천황의 부인으로, 이름은 다카노 니이가사(高野新笠)이다. 『속일본기』에 보면 789년 12월에 환무 천황 재위 중에 그 어머니인 황태후가 죽자 그 다음 해인 790년 1월에 장례를 치르는데, 그 장례 기사 말미에 황태후는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아들인 순타태자(純抒太子)의 후손이라고 나온다.





그 조상인 주몽(都慕王)은 하백녀가 햇빛에 감응하여 태어났고 황태후는 그 후손이기 때문에, "높은 하늘에 있는 태양의 아들의 따님(天高知日之子姬尊)"이라는 뜻의 시호를 주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순타태자는 505년에 사아군(斯我君)이라는 이름으로 왜국에 파견되어 오랫동안 체류하다가 513년에 죽었다. 그 동안에 그는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야마토노키미(倭君)의 선조가 되었다.





그 야마토씨가 770년대에 다카노씨로 성을 바꾸었고, 환무 천황의 생모인 다카노 니이가사는 그 일족이었다. 그들은 약 270년에 걸쳐 일본 귀족사회에서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명분으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반도와 일본은 고대 시기에는 비교적 문화 교류가 활발하였다. 정상적인 교류도 있었지만, 대개 한반도에서 큰 전란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의 이주민이 일본열도로 들어갔다.





그러한 사례 중에 주요한 것이 5세기 초에 전기 가야연맹이 해체되었을 때였고, 5세기 후반에 백제 수도 위례성이 함락되었을 때였으며, 7세기 중엽에 백제가 멸망했을 때 등이다. 일본 고대 문화의 발전은 그들, 즉 도래인들의 이주를 계기로 고양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신라보다는 한반도에서 일찍 사라진 국가인 가야와 백제에 친근성을 보였던 것이다.





이번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은 일본의 역사 인식이 한걸음 더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긴 하지만, 잘못하면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일선동조론은 한국과 일본의 옛 조상들이 같다는 학설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내놓은 학설이나, 그 연구 수준은 깊지 않다.





또한 아직은 일본 왕가의 기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일왕의 한마디에 고무되어, 사소한 증거들을 가지고 너무 떠들어대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혈통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실을 밝힌다는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김태식교수(홍익대.한국고대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