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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Champions -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 ⑤ 상신브레이크

대구 달성공단의 상신브레이크 생산라인에서 김효일(왼쪽) 사장이 자동차 브레이크 마찰재(패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여긴 웬만해선 외부인에게 안 보여주는 곳인데….” 이달 초 대구 달성공단 내 상신브레이크 생산공장. 공장 내부를 안내하던 직원이 2층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문을 열자 갖가지 원료들이 담겨 있는 커다란 통과 자루들이 눈에 띄었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생산 현장과는 달리 늘 22도가 유지돼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흡사 와인 저장고 같은 분위기다. 이 공장의 생산품인 브레이크 마찰재(패드)의 원료가 배합되는 곳이다. 동행한 수출입은행 담당자는 “공장에 자주 들렀지만 이곳은 처음 와 본다”고 말했다. 이곳은 상신브레이크의 자부심이 응축돼 있는 곳이다. 실제 어떤 원료를, 얼마의 비율로 섞는지는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 주는’ 1급 비밀이다. 현장 직원은 “배합 비율이 1%만 차이가 나도 제품의 제동 능력과 수명과 소음 등 품질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사업다각화 유혹 뿌리치고 기술 쌓아 … 국내1위 넘어 세계로

상신브레이크는 독자 기술로 만든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다. 그렇다 보니 기술료(로열티)로 나가는 돈이 적고 제품의 원가 경쟁력에서 타 업체들에 앞선다. 이 기술로 자사 브랜드를 붙인 고급 제품도 내놓고 있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의 저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브레이크 ‘한 우물’ 35년=브레이크 제품을 만드는 회사여서일까. 이 회사의 성장사는 ‘질주’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1975년 정도철(76) 회장이 창립해 35년간 브레이크 ‘한 우물’을 파왔다. 현대자동차의 초기 모델이었던 포니에도 상신브레이크의 제품이 들어갔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브레이크 마찰재 시장 점유율은 44%다.



하지만 그 연륜을 감안하면 기업의 외형이 크거나,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정 회장의 아들인 정성한 부사장이 창업한 듀오가 오히려 일반인들에는 낯익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창업 이후 차량은 빠르게 늘었지만 브레이크 제품의 수요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품질 향상이 가져온 역설이다. 브레이크 제품의 내구성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자주 갈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신브레이크를 비롯한 ‘빅3’가 장악한 국내 시장도 거의 포화상태다.



무엇보다 외형 성장을 가로막은 건 보수적인 경영이다. 비슷한 연륜을 가진 업체들이 이런저런 제품으로 상품 구성을 확대하고, 사업 다각화로 외형을 키워갈 때 이 회사는 브레이크 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산도브레이크·산도테크· 상신이엔지(제조용 기계) 등 계열사들도 모두 브레이크 관련 기업이다.



◆위기 넘기니 기회가=차가 잘 달리려면 우선 잘 멈춰야 하는 법이다. 유명 수퍼카를 만드는 회사들이 엔진뿐 아니라 브레이크 성능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과욕을 부리다간 멈춰야 할 곳에서 제대로 멈추지 못해 파국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면에서 상신브레이크는 잘 멈췄다. 여환열 상무(CFO)는 “보수적 경영으로 성장이 느렸던 측면은 있었지만 재무구조가 안정돼 금융위기를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채비율이 동종 업계는 200%에 달하지만 우리는 80%대”라며 “외환 파생상품 등도 최소한으로 활용하고, 그것도 제때 처분해 거의 손실이 없었다”고 말했다.



매출처를 다각화해 놓은 것도 위기를 순탄히 넘기는 데 도움이 됐다. 자동차 회사에 납품해 신차에 장착하는 물량이 대부분인 다른 회사와는 달리 이 회사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비롯해 교체용으로 시판하는 제품의 매출 비중이 41%에 달한다. 김효일 사장은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물량을 줄이면서 지난해 초에는 일부 휴업까지 했지만 그나마 우리는 매출처가 분산돼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터진 ‘도요타 리콜 사태’도 상신에는 득이 됐다. 안전과 직결되는 브레이크와 같은 부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이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해외 생산을 늘리며 부품도 현지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브레이크 부품만은 가급적 국내 업체 제품을 쓰려 한다는 것이다.



◆“이젠 달릴 때”=이 회사도 고민이 있다. 매출은 매년 꾸준히 늘지만 이익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3.5%로 전년의 4.4%에서 오히려 줄었다. 국내 차업계의 ‘원가 절감’ 요구에 많이 팔아도 정작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김 사장은 “결국 승부는 해외에서 봐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06년 해외사업부를 독립시키고 조직도 키웠다. 때마침 2002년 설립한 중국 법인도 지난해 이후 안정 궤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덕이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들도 품질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국내 업체 제품을 찾고 있다. 김 사장은 “현지 생산품의 40%가 중국 업체들에 공급되고 있는데, 곧 국내 업체 공급 물량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찰재 원료 제조 기술에 이어 생산 설비 수출도 시작했다. 김 사장은 “중국 업체 사장이 자동화된 우리 생산라인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겠다고 나서더라”면서 “설비 수출은 이익 폭이 기존 제품보다 커 앞으로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신성장 동력’ 찾기에서도 ‘한 우물 경영’이라는 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산학협동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는 풍력 발전기용 브레이크가 대표적이다. 박세종 기획실장은 “풍력이 미래의 에너지로 부각되고 있는 데다 풍력기용 브레이크는 단가가 3000만~4000만원에 달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대구=조민근 기자






전문가가 본 상신브레이크



한국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이다. 자동차가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그 선봉에는 현대·기아 등 자동차 메이커가 있다. 많은 ‘히든 챔피언’이 뒷받침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신브레이크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는 무엇보다 꾸준한 성장이 돋보인다.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글로벌 경기가 얼어 붙으면서 한때 국내 자동차 산업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신브레이크의 매출은 매년 늘었다. 올해는 더욱 특별한 해가 될 것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미국 시장에 보수용(RE) 브레이크 패드 수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럽시장에서도 쏘나타·K5 등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차가 출시되면서 수출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기술력 확보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초기 해외 업체와의 기술제휴로 제품을 생산해 왔지만 이제는 해외 업체에 제조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현대모비스 등과 함께 다양한 국책과제도 수행하고 있다. 대형차용 에어 디스크 브레이크(Air Disc Brake)의 국산화 개발 착수는 부품 기술의 독립을 앞당긴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잘해 왔다. 하지만 숨어 있는 챔피언이 아닌 명실상부한 챔피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도 눈에 띈다. 우선 유럽형 제품에 집중된 매출을 기술 개발을 통해 북미·국내 승용차용 시장으로 넓혀 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본 브레이크 부품 1위 업체인 아케보노브레이크 같은 회사들과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또 장기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차, 만도 등 국내 업체에 대한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 기존에 납품했던 물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신규 수주를 통해 매출을 더욱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선 해외 완성차 업체로 납품처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최중혁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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