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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떠난 자와 남은 자

자살자(自殺者)와 그 가족에 대한 편견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살을 사회에 대한 책무를 비겁하게 회피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고대 아테네에서 자살자의 장례를 치를 수 없고, 그 시신이 도시 변두리에 비석 없이 매장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세 유럽에선 자살한 사람의 죽음은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자살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결과라고 봤다. 그러니 자살자의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 뒤따랐다. 재산을 빼앗기고 모욕과 비난을 받았다.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 자살은 ‘처벌의 대상’에서 ‘치료의 대상’이 됐다. 악마의 유혹이 아니라 우울증 같은 불가항력적인 병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전적 요인이 강조된 탓에 자살자의 가족은 죄책감과 비난이란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자살이 유가족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기는 건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를 리 없다. 커다란 충격과 슬픔, 죄책감, 분노에 더해 자살자의 가족이라는 낙인(烙印)까지 감내해야 한다.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져 유가족마저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자살로 이어진 사례는 많다. 독일을 무대로 신교와 구교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바이에른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1615년 5명, 1623년 8명에서 1627년 29명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라면 허무함과 자책감이 보태져 후유증은 더 크게 마련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아동센터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가 자살한 아이는 자살을 선택할 위험이 다른 아이들보다 세 배나 높다.



지금 한국 사회에선 한 해에 인구 10만 명당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루 평균 35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한 명이 자살하면 주변의 5~10명이 치명적 영향을 받는다. 국내에서 가족의 자살로 고통받는 유가족이 매년 7만~14만 명에 이른다는 얘기다. 한국 생명의 전화가 어제 이들을 돌볼 ‘자살 유가족 지원센터’를 서울·대전·경남 지역에 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사회 전체가 나서 자살자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을 일이다. ‘중세 사회’의 암영(暗影)이 남아 있어선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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