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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 빼고 비료 빼고...무공해 뮤지컬의 깊은 맛

‘태양의 동네’에는 정작 태양을 볼 수 없는 한 소녀가 살고 있다. 17세 소녀 카오루. 해가 서산을 넘어야 비로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이 소녀의 유일한 낙은 밤마다 기차역(태양역)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소녀에겐 몹쓸 병이 있다. 햇빛을 받으면 얼굴과 손발 등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피부가 말라 위축되는 ‘색소성건피증’. 밤의 노래가 유일한 위로였던 이 소녀에게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동네 윈드서핑 선수인 코지. 한데 사랑이 결실을 맺기엔 카오루에겐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정재왈의 극장 가는 길 - 뮤지컬 ‘태양의 노래’

뮤지컬 ‘태양의 노래’의 여주인공 카오루에게서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여주인공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마냥 뽀얀 얼굴에 마치 순수의 정화 같은 그 이미지는 죽음이 예고돼 있음으로 더욱 슬프다. 게다가 ‘희귀병’이라는 다소 미스터리적인 죽음의 전령이 덧씌워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통속 멜로 드라마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췄다.

이 뮤지컬은 덴카와 아야의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2006년 출간돼 그해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에서 꽤 인기를 모았다. 신인 여가수 유이는 주인공 소녀처럼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다. 평이한 멜로디지만 중독성 강한 ‘Good-bye days’ ‘Skyline’ ‘It’s happyline’은 유이의 청아한 음색으로 퍼지면서 숱한 매니어를 낳았다.

서울시뮤지컬단이 만든 뮤지컬은 일본 영화의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른 듯하다. 시대의 아이콘인 소녀시대 출신 가수 태연을 카오루 역으로 기용한 점이 그렇다. 마케팅 전략은 예상대로 적중해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다.

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연을 본 지난 목요일 밤 공연의 주인공은 태연이 아니어서 그 인기 실황을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작품은 주인공의 이미지만큼이나 소박하고 순수했다. 태연과 더블 캐스트인 카오루 역의 홍은주는 충분히 청순가련했고, 관객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묶어두는 흡입력도 높았다. 홍은주의 이미지를 통해 ‘태연의 카오루’도 그 언저리일 것이라는 연상이 가능했다.

뮤지컬의 이야기는 막간을 전후에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사랑에 눈 뜬 카오루가 코지(정선영)와 심야 데이트를 하다 그만 아침의 태양 빛에 쏘인다. 1막 종결부에 등장하는 카오루의 솔로곡 ‘Good-bye Days’는 이렇게 시작한다. “외롭던 날들 이제는 안녕 날 달라질 거야/ 주머니 속에 이 노랠 담아 너에게 달려갈 거야/ 모르는 척하기 이제 힘들어 나에게 솔직할 거야”.

이렇게 찾아온 사랑이 이별의 시작임을 관객들은 제목만 봐도 쉽게 짐작한다. 이어 2막에서는 카오루가 사랑을 뒤로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애틋하게 전개된다. 카오루가 이별을 앞둔 아빠와 곧 저승에서 만나게 될 엄마와 함께 부르는 3중창 ‘해바라기’를 통해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농작물로 치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자연에서 생성한 거름으로 쓴 유기농 같은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단박에 관객을 현혹시키는 조미료와 당의정의 맛은 덜했지만 나름의 깊은 맛이 녹아있었다. 단맛·쓴맛·신맛·매운맛 등을 한꺼번에 죄다 동원하려는 요즘 뮤지컬의 과조미료 상태와는 이 뮤지컬이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었다.

물론 다소 썰렁하고 오버한 대목도 없지 않다. 카오루와 코지의 러브라인에 거칠게 파고드는 아빠(박봉진)와 이웃집 여자(임화춘)의 관계 설정 등은 거슬리는 부분. 동네 건달처럼 등장한 록커들의 개그적인 설정도 좀 작위적이며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일본 소설 원작의 구도를 그대로 따른 대본인지라 무대 디자인은 한적한 일본의 시골 해변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사실적이었다. 카오루가 사는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2층 집의 테라스에서 카오루와 코지가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눈에 반하는 유명한 발코니 신과 겹쳐 보였다.

세상사가 거칠고 험할수록 관성적으로 순수를 동경하는 마음이 우리에겐 있는 것 같다.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그것에 대한 본질적인 그리움을 빛 바랜 풍경처럼 보여주는 뮤지컬의 ‘빈티지룩’이었다. 극본·작사·연출 3역을 맡은 황재헌의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다소 지루한 이야기라도 무대에 압축적이며 입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능력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다.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공연예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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