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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29>지원금을 수술하라

1980년대 영국 문화예술인들의 ‘공공의 적’은 대처 총리였다. ‘영국병’ 치유를 모토로 내건 대처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복지·교육·문화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자연스레 예술가에게 돌아가던 정부 보조금도 씨가 마를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대영 제국의 문화를 황폐화시킨다”란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셰익스피어와 비틀스를 탄생시킨 영국 예술에 엄청난 위기가 닥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지원금을 싹둑 잘라버린 대처의 지독함이 허허벌판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게 되는, 새로운 예술집단을 탄생시킬 줄. 데미언 허스트·트레이시 에민 등으로 대표되는 yBa(young British artists)는 ‘대처의 아이들’로 분류되며, 이들의 활약 속에 런던은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 미술의 최고 메카가 되었다.

뜬금없이 영국을 언급한 건 정부의 예술 지원을 말하기 위해서다. 원론적으로 예술에 대해 정부가 지원 정책을 펴는 건 맞다. 예술가들의 자발적 행위란 상당 부분 ‘시장’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위대한 창조물일수록 대중의 기호를 따르지 않는 독창성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시장’에서 일탈한, ‘제도권’과 거리가 먼 예술은 보호돼야 하고 그게 결국은 그 나라 문화의 밑바탕이 되리라는 걸 누가 부정하랴. 그러나 원론과 취지란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앙상해지곤 한다.
지난해 난 누군가의 추천으로 연극 분야 지원금 심사에 참여했다. 50개가 넘는 작품의 지원서를 봤고, 대본도 훑어봤다. 1차 서류 심사에 통과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2차 심사에선 지원자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연극뿐 아니라 오페라·발레·전통 등도 함께였다.

근데 솔직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한 개 정도를 빼곤 ‘저 작품을 지원해봤자 잘 나오겠어?’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지원금 총액은 10억원 정도였고, 한 작품당 많게는 1억원, 적게는 6000만원가량 지원해야 하는 구조였다. 지원금을 다 쓰지 못하면 지원 기관이 난리 날 판이었다. 게다가 무용·전통 등 장르별 안배도 신경 써야 “특정 장르만 몰아준다”란 편파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욕하던 ‘지원금 나눠 먹기’ 심사를 한 꼴이었다.

얼마 전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어떡하면 정부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나’란 내용으로 강의를 했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지원 기관은 여러 군데이며 지원 프로그램은 숱하다. 그걸 안테나를 세우고 계속 봐야 한다. 한번 넣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우리가 계속 뭔가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지원 기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내용은 별반 특별한 게 아니었지만 그의 마지막 멘트가 핵심이었다. “눈 먼 돈을 못 따 먹는 게 바보다.”

2주 전 신재민 문화부 차관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동안 민간 지원 사업이 관행적으로 진행돼 왔다. 공공 지원이 자칫 장르 발전에 독이 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 예술 지원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원금으로 각 예술 장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온 문화부 관료들이 과연 이를 포기할까. 지원금을 안 주면 “정권이 예술을 망친다”는 비난을 받을 게 뻔한데, 지원금을 주면 욕도 안 먹고 폼도 잡을 수 있는데 말이다. 참고로 1년에 문화부가 민간에 쓰는 지원금은 무려 1조원이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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