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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써가며 그리스 국채 매입, 유로화 사수 안간힘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화를 지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유로화는 존폐의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프랑스 출신인 장 클로드 트리셰(68).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그의 별명은 ‘미스터 유로(Mr. Euro)’다. 단순히 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로타워(ECB 건물)의 주인이라서가 아니다. 1990년대 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ECB 탄생 순간壙� 총재 후보 1순위였다. ‘절묘한 중재자’ ‘시장과 소통의 명수’라는 별명이 이름 앞에 늘 따라다녔다.

흔들리는 유로존,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의 선택

ECB 총재가 되고픈 트리셰의 소망도 간절했다. 그는 19세기 후반 남유럽통화동맹(LMU)의 꿈을 이루고 싶어했다. LMU는 프랑스와 스위스·이탈리아 등이 참여한 단일통화 실험이었다. 프랑화를 기초로 이뤄져 한동안 작동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회원국 재정적자가 불어나면서 해체됐다.<아래 표>

그러나 트리셰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금융 중심가인 방켄비르텔에 있는 유로타워에 입성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른바 유로사용권(유로존) 내 ‘남·북 유럽의 경쟁구도’ 탓이었다. 프랑스는 남유럽의 리더다. 독일은 북유럽의 수장이다. 독일 등이 트리셰를 강력히 견제했다. 독일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남유럽 출신이 총재를 맡으면 유로존이 붕괴될 것”이라며 트리셰를 견제했다.

독일 등의 방해공작은 성공적이었다. 트리셰는 1998년 초대 ECB 총재가 되지 못했다. 독일이 뒷배를 봐준 빔 다위센베르흐가 초대 총재를 맡았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이다. 다위센베르흐는 시장과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통합 중앙은행’을 이끌 만큼 중재자로서 자질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다위센베르흐는 임기 8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003년 물러났다. 뒤를 이어 트리셰가 유로타워 책임자가 됐다. 그의 꿈은 5년을 기다린 뒤에야 이뤄진 셈이다.

“흥청망청 돈 쓰는 남유럽 출신”
트리셰의 ECB 입성은 한편으로 유로 시스템 개혁 실패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른바 ‘1999년 개혁 실패’다. 유로가 탄생한 그해 독일 등 유로존 북유럽 국가들이 ‘유로 시스템 변화’를 추진했다. 자신들이 밀어올린 다위센베르흐가 ECB 총재로 있어 좋은 기회였다. 독일 등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3% 이내에서 억제하지 못한 나라를 제재하거나 축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프랑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재정적자 3%를 지킬 수 있는 곳은 3~4개 나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남유럽 진영은 이른바 독일의 개혁이 ‘콜의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콜의 원칙은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이 91년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유럽 정상회의에서 제시한 기준을 말한다. 그는 “가능한 한 가장 많은 나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유럽 리더들이 ‘재정적자 3% 룰’만을 제정했을 뿐 강제 제재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이유다.

그 시절 유로 설계에 참여한 닐스 타이게센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교수(경제학)는 이달 14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91년 희망에 들뜬 유럽 리더들은 일부 나라가 재정적자 3% 룰을 어기더라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결국 유로는 불완전한 모태에서 잉태된 셈이었다. 통화가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인 재정 건전성이 유로존 회원국의 선의에 내맡겨진 꼴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등 북유럽 진영의 개혁 실패 이후 4년이 흘렀다. 2003년 남유럽 국가들은 똘똘 뭉쳐 트리셰를 ECB 총재로 밀어 올렸다. 그가 갈등 조정과 소통의 명수라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나 위기대응보다 통화가치 안정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독일 등을 견제하기 위한 노림수였다.

지난주 초 트리셰는 그리스 등의 국채 매입에 뛰어들었다. ECB의 국채 매입은 기본적으로 금지된 일이다. EU가 유럽중앙은행법을 만들며 물가안정을 유일한 의무로 규정하고 회원국 국채 매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반 채권시장(유통시장)에서 국채 매입까지는 막지 않았다. ECB의 자체 포트폴리오 조정을 배려한 조항이다.

트리셰는 이 조항을 이용해 그리스 등의 국채를 사들였다. 지난 한 주 300억 유로어치 정도를 매입했다. 유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트리셰는 통화가치 수호자라는 ECB의 위상과 유로화의 신뢰성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구제금융 1조달러도 못 미더워” 회의론
지난주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폴 볼커(83)의 입에서 천기누설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왔다. 유로존 해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미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 자격으로 14일 런던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그는 “여러분은 유로존이 해체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해체 경고는 몇 차례 있었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 상품투자의 귀재인 미국의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등이 볼커에 앞서 유로존 해체나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등을 예상했다. 하지만 볼커의 중량감은 달랐다. 그는 교수나 금융시장 플레이어가 아니다. 미 중앙은행 수장을 지낸 인물이다. 12년 전 독일이 제기했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최근 시장에서는 유로존 국가들이 조성한 구제금융 약 1조 달러도 그다지 미덥지 않다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트리셰의 국채 매입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유로 가치 하락을 촉발시켰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유로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양상이다.

그리스 등이 재정적자를 바로잡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지만, ‘긴축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남유럽 경제가 ‘긴축→경기침체→디플레→부채 부담 증가’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정부의 지출 감소로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물가가 하락하게 된다는 진단이다. 그러면 실질 금리 부담이 커지면 남유럽 국가들이 짊어지고 있는 빚의 부담이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주 말 발표된 스페인의 올 4월 근원 물가지수(Core CPI)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긴축의 악순환에 대한 두려움이 일면서 미국과 유럽 주가가 미끄러져 내렸다. 시장이 트리셰의 의지와 힘을 뛰어넘어 움직이기 시작한 듯하다.

재정긴축의 부작용이 커지면 정치·사회적 갈등도 불거진다. 갈등은 남유럽의 정치 리더들을 선택의 기로에 몰아넣을 수 있다. 그들은 경제 체력보다 고평가돼 수출과 경기회복을 제약하는 유로 대신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 유로존 탈퇴나 B급 화폐 발행이다(중앙SUNDAY 5월 9일자 4~5p).




트리셰는
1942년 프랑스 남부 도시 리옹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29세 때인 1971년 프랑스 재무부에 들어가 재정정책 실무를 배웠다. 45세인 1987년에는 재무장관에 올랐다. 93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돼 재정과 통화 정책을 모두 총괄해본 금융 엘리트 대열에 합류했다.
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있다. 그가 재무장관 시절인 80년대 말 크레디트리옹이 부실화돼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트리셰가 국가 소유인 크레디트리옹의 분식회계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일면서 2000년 그는 검찰 조사를 거쳐 법정에 섰다. 3년 동안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직후 곧바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됐다. 독일 쪽은 프랑스가 트리셰를 ECB 총재로 링浴� 위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트리셰의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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