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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안 거친 지도자는 내공 달려 망하게 마련”

프로농구 전자랜드 시절 최희암 감독. 그는 지금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사장으로 일한다. [중앙포토]
아마추어 농구대회인 농구대잔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팀과 군대팀인 상무가 참가하는 단출한 대회로 열린다. 전성기의 농구대잔치는 성인남자농구의 최고봉이었다. 실업과 대학팀이 모두 출전했다. 삼성과 현대가 라이벌전을 통해 숱한 명승부를 완성했고, 기아농구단이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코트 떠나는 문경은·이상민·우지원에게 … CEO 변신 최희암 감독의 충고

93~94시즌에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연세대 농구팀이 실업팀을 제치고 우승한 것이다. 대학 팀 최초의 우승이다. 그때의 주력 선수는 이상민·우지원·김재훈·문경은·서장훈 등이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할 때도 간판급 선수였다. 이들이 속속 은퇴하고 있다. 특히 ‘오빠부대’로 알려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이상민·우지원의 은퇴는 한 시대의 종말을 보여준다. ‘농구대잔치 세대’의 퇴진이다.

농구대잔치 세대의 ‘대부’는 최희암(55) 전 감독이었다. 그는 지금 기업인으로 변신해서 중국 다롄에서 일한다. 그의 직함은 ‘고려용접봉 유한공사 중국법인 동사장’이다. 연세대가 절정을 구가할 때 최 사장도 전성기를 누렸다.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속옷 광고를 찍고 자서전도 썼다. 나중에 프로팀 감독이 됐지만 연세대에서만큼 성공하지는 못했다.

제자들의 은퇴를 지켜보는 최 사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에게 전화로 소감을 물었다.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중국어가 들렸다. 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나중에 e-메일로 답변을 적어 보내겠다고 했다. e-메일은 이튿날 도착했다. 생각보다 길었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다는 뜻이리라. 다음은 최 사장의 감회와 은퇴한 제자를 향한 충고다.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한 연세대 농구팀 선수들이 최희암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중앙포토]
“농구대잔치 시절의 제자들이 은퇴할 때마다 ‘나도 지나간 사람이 됐구나’ 하고 실감한다. 나의 마음속에서 제자들은 항상 선수로, 나는 감독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지만 누가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가. 중국인들도 장강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한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지도자의 길을 걷기 원하고,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가시밭길이고,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제자들이 좋았던 시절보다는 힘에 겨웠던 순간들을 먼저 기억하기 바란다. 90년대 초, 연세대 농구부는 가장 추운 날을 골라 충북 옥천의 서대산으로 동계훈련을 떠났다. 선수들에게 속옷만 입혀 개울가에서 극기훈련을 한 적이 있다. 89년 겨울 추위를 견디느라 이를 딱딱 부딪치던 (문)경은이와 (김)재훈이를 본 동네 할머니들이 숙소에 들이닥쳤다. 할머니들은 “아이들 얼려 죽인다”며 잔뜩 화가 나셨다.

20㎞ 크로스 컨트리에서 항상 1등으로 들어오던 (유)도훈이, 불평 한 번 안 하는 (오)성식이와 (이)상민이, 항상 웃는 (김)훈이와 (정)재근이, 성실하지만 때로는 엉뚱한 (이)상범이, 몰래 픽업을 얻어 타다가 들켜 ‘호랑이’ 박건연 코치에게 기합을 받던 (강)양택이와 (김)광이, 2m7㎝의 거구로 재래식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며 투덜거리던 (서)장훈이, 초반 3일 잘 뛰다가 다친 무릎을 잡고 미안해 하던 (우)지원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이 서린 17년간의 대학 감독 생활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험난했고 가장 보람을 느꼈던 그 시간들을 제자들과 함께 보낸 것은 엄청난 축복이며 행운이었다.

얼마 전 상민이와 지원이의 은퇴 소식을 들었다. 며칠 간격으로 경은이의 은퇴 소식이 들렸다. 처음에는 무척 놀랐고 걱정이 뒤를 이었다. 박수 받으며 떠나는 그들의 선택이 현명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도록 돌봐줘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멀리 떠나 지내는 나로서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몇 마디 당부를 하고 싶다.

승부의 세계, 특히 지도자의 세계에 보호자는 없다. 선수는 감독과 코치 그리고 팬이 보호자다. 지든 이기든 이들은 선수를 숙명적으로 보호하고 사랑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자기 몸만 잘 챙기면 된다. 현명하게 몸을 단련하고 부상을 피하면 된다. 사생활을 건전하게 하고 주변을 잘 정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승부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 동료든, 팬이든, 구단이든 그 누구도 돕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즉,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승부뿐이랴. 지도자의 말 한마디와 그 말의 결과, 행동의 결과가 모두 천금의 무게를 지닌다. 선수가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도 연좌 책임을 진다.

무릇 지도자라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3다(多), 즉 경험·실력·사람이다.

벤치의 경험은 따로 긴 설명이 필요 없지만 특히 강조할 것은 위기에서 팀을 흔들리지 않도록 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위기에는 반드시 안팎의 적을 마주친다. 스스로 흥분하여 망치는 것이 내부의 적이고, 선수들이 흥분해 포기하는 경우와 상대의 플레이에 위축되거나 방심해 얕보다가 당하는 경우가 바로 외부의 적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실력이란 농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전략과 전술)이다. 또한 이러한 지식을 정확하게 선수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코칭 능력과 선수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실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

단번에 감독이 돼 팀을 지휘할 수는 없다. 전력분석원이나 보조 코치, 트레이너 등의 단계가 필수다. 처음부터 화려한 감독이나 코치를 하는 경우 일정 기간은 운이 좋아 잘될 수 있으나 결국은 내공이 달려 망하고 만다. 우선 전력분석가를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와 나를 분석해 통계를 내고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능력에다 선수 시절 경험을 가미한다면 훌륭한 감독의 자질을 쌓을 수 있다.

감독이라고 해도 독불장군은 불가능하다. 선수는 간혹 독불장군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독불장군 감독은 죽음을 자초한다. 좋은 시절에는 이런 성향이 나오지 않지만 어려운 시절을 당하면 마음속에 죽순처럼 돋는 것이 아집과 편견이다. 항상 겸손하고 어떠한 문제라도 상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3다 가운데 사람이다.

명심하라.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고 나에 대한 정보는 내 주변에서 새 나간다. 주변 관리 즉, 수신(修身)을 해야 한다. 또한 모든 판단은 직접 보고 숙고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상의해서 내려야 한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 정보를 전달한 사람에게 있지 않다. 틀린 정보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성공하기에 앞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라.

나의 제자들아. 선수 시절 너희는 주위에서 모든 것을 챙겨 줬다. 이제 같은 방식으로 생활할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했다면 먼저 지갑을 꺼내라. 얻어먹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네가 하지 않아도 남이 해주리란 생각은 버려라. 늘 환영 받을 것이란 기대도 버려라. 이것이 중국 다롄에서 용접봉 회사 사장으로 변신한 내가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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