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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지연 덜 따지는 건 여성의 강점 올라갈수록 말하기보다 듣기 힘써야”

설금희(사진 오른쪽) 상무가 멘토-멘티의 관계로 만난 곽유정 차장에게 ‘미래를 위한 열정과 꿈’을 강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흔히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면 ‘별’을 달았다고 한다. 5대 그룹은 보수적 기업 문화로 인해 오너 일가가 아니면서 ‘별을 단 여성’은 그룹별로 손에 꼽을 정도다. 설금희(49) LG CNS 상무는 대기업 1세대 여성 임원의 대표 주자다. 1983년 금성사(현재 LG전자)에 공채로 들어가 21년 만인 2004년 상무로 승진했다. 금성사에서 대졸 여성 엔지니어는 설 상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화려한 경력의 외부 영입파가 아닌 신입사원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오직 땀과 실력으로 과장·차장·부장을 거치며 ‘유리 천장’을 깬 흔치 않은 경우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여성 임원의 리더십 ② 설금희 LG CNS 상무

부하 직원들에게 ‘따뜻한 카리스마’로 존경받는 설 상무는 자신의 경험을 회사 안팎의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중 하나가 여성 임원들의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 회장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부사장)에서 ‘멘토링(Mentoring)’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멘토링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나가며 가장 신뢰하는 친구였던 멘토에게 아들의 교육을 맡긴 것에서 유래했다. 현대에 와선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선배가 애정 어린 지원과 충고로 후배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멘토의 지도와 교육을 받는 상대는 멘티라고 한다. WIN에서 인연을 맺은 설 상무의 멘티는 외국계 기업 파맥스오길비헬스월드의 곽유정(33) 차장이다. 두 사람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나 ‘여성 임원의 리더십’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70여 개 업체의 120여 명 회원이 참여하는 WIN은 24일 오후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 컨퍼런스’를 연다. 이 자리에선 미래의 임원을 꿈꾸는 젊은 여성 직장인과 현직 여성 임원들의 멘토링 결연이 이뤄질 예정이다.

-곽유정 차장(이하 곽): 지난해 5월 WIN 컨퍼런스에서 멘토-멘티로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년이 됐네요. 여성 임원이 드문 국내 대기업에서, 더구나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목표를 이룬 선배를 보고 처음엔 수퍼우먼인 줄 알았어요.

-설금희 상무(이하 설): 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다 학교 앞 전산학원에 다닌 게 이쪽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됐지. 같이 입사한 동기 100여 명 가운데 나 말고도 여성이 10명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 그만두고 혼자 남았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사에 구축하고 운영하는 서비스를 주로 했어. 컴퓨터 하면 공대 출신 남성이 유리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교함이거든. 정확하고 섬세하게 일처리를 하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어.

-곽: 저는 중앙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론스타·맥쿼리코리아 등 금융계를 거쳐 지난해 3월 현재의 회사로 옮겼어요. 제약·헬스케어(건강관리) 분야에서 홍보·광고·교육·컨설팅 등 전방위 서비스를 하는 곳이죠. 인적자원(HR) 담당 팀장을 맡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쭉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요.

-설: 나도 인사 담당 임원을 딱 1년 해봤는데 무척 행복했어. 학연이나 지연에 덜 얽매이고 최대한 공평하게 사람들을 대하려 한다는 점에서 여성이 유리한 분야지. 외국계 회사에서 HR 임원이 대부분 여성인 것도 그런 이유일 거야. 명심할 점은 인사 담당은 두 얼굴을 가져야 해. 하나는 사원의 입장, 다른 하나는 최고경영자(CEO)의 입장이지. 사원들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면 그들도 행복해 하고 나도 일하는 보람을 느끼지.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회사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잊지 말아야 해.

-곽: 저도 선배처럼 언젠가 임원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설: HR은 여성이 전문성을 살리기 좋은 분야지. 잘한 선택인 것 같아. 대학원(중앙대 인적자원개발대학원)에서 전문지식도 쌓았다고 했지. 직장생활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여자나 남자나 똑같아. 첫째는 일을 즐기고, 둘째는 상사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해. 아부하라는 게 아니라 상사와 원만한 의사소통이 아주 중요하다는 얘기야. 셋째는 체력이야.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부지런함과 꼼꼼한 시간관리도 필수야. 나는 과장 시절에도 ‘시간관리는 설 과장을 배워라’는 소리를 들었어.

-곽: 여자라서 힘들었던 경험은 없었나요. 어떻게 이겨냈나요.

-설: 부장 시절에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아 고객사에 갔는데 “전산실 직원도 접대 자리에 참석하고 사우나도 따라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못한다. 하지만 조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 내 밑에 남자 후배들이 많았거든.(웃음) 사우나까지는 아니라도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겠다는 열정이 필요해. LG그룹에 여성 임원이 10여 명 있는데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6명이야. 외국계 회사보다 한국 대기업에 여성 임원이 적은 게 현실이지만 앞으로는 문이 활짝 열릴 거야.

-곽: 결혼한 지 2년 됐는데 아직 아이가 없어요. 솔직히 출산이 부담스러워요.

-설: 회사일과 집안일을 다 잘하는 수퍼우먼은 없어. ‘육아도 아웃소싱’이 필요해. 주변의 도움을 최대한 받으라는 거지. 나도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도움과 희생 덕분에 두 아이를 키웠어. ‘워킹맘(일하는 엄마)’이라면 누구에게나 육아는 힘들어. 고민이 있더라도 덮어두면 안 돼. 혹시 일 때문에 늦게 애를 갖겠다면 절대 반대야. 빨리 낳고 빨리 키워야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어.

-곽: 팀원 시절에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됐지만 이제는 팀장이니까 리더십을 고민하게 돼요.

-설: 내 사무실에 액자가 하나 있는데 ‘사랑’이라고 쓰여 있어. 리더십의 바탕에는 사랑이 반드시 깔려 있어야 해. 그 다음은 경청이야. 지위가 올라가다 보면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면 안 돼. 잘 듣는 일이 정말 중요해. 우리 회사는 사내 통신망에 블로그가 활성화돼 있어. 직원들과 간담회나 대화를 하면 그걸로 마는 게 아니라 반드시 피드백을 블로그에 남기지. “당신의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상무님, 감동했어요”하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 그런 식으로 진심이 통하는 교감이 리더십의 요체라고 생각해. 물론 일에 대한 전문성은 기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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