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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산 불리고, 신진 작가 키우고...'웰스 매니지먼트'

1, 2 1934년 설립된 영국문화원은 자국 미술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컬렉션을 해오고 있다. 리처드 해밀턴, 데이비드 호크니, 헨리 무어, 루시앙 프로이드 등 영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 많다. 영국문화원이 컬렉션한 작품은 지금까지 8500여 점에 이른다. 이 작품들을 중심으로 각종 기획전·순회전이 열린다. 사진은 런던 남쪽에 자리한 영국문화원 컬렉션 수장고 내부.
지난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앞가슴’이 1억640만 달러(약 1188억원)라는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 과연 누가 이런 작품을 살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인터넷 정보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국제 미술시장은 이제 환금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고, ‘미술 작품은 그 예술적 가치 이상의 신자본(new capital)’이라는 개념 역시 이런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점차 뚜렷하게 인식되는 듯하다. 미술품은 ‘환금성(liquidity) 강한 자본’이며 ‘웰스 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 차원에서 좋은 투자상품이라는.

국가 미술 컬렉션은 ‘21세기 신자본’
그런 측면에서 한 국가가 미술품을 구입해 ‘국가대표 컬렉션’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국가 자산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영국이 18세기 계몽주의 시절 미술관·박물관을 처음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도 하다. 국ㆍ공립 미술관 소장품이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구입해 국민의 창조 교육과 문화재 보존이라는 역할을 기본 틀로 한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한 시대에 만들어진 한 국가의 미술 컬렉션은 미래 관광적인 측면으로도, 신자본적인 가치로도, 아니 더 나아가 그 국가를 방문해야만 ‘거기서’ 볼 수 있다는 개념인 글로컬(Global+Local)한 가치로 나타날 수 있다. 즉 ‘굴뚝 없는 거대한 공장’의 역할과 기능을 한 국가가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검증이 진행 중인 현대미술 작품을 구입해 컬렉션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현존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검증해 ‘국가대표’를 뽑는 것은, 객관성이 매우 중요할뿐더러 잘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소장 창고 자리나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작품 선택과 구입 과정 체계화
그런 관점에서 2008년 영국 아트 카운슬이 발표한 자료는 주목할 만하다. ‘테이스트 버드(Taste Bud)’는 영국 정부가 처음 시도한 미술시장 연구보고서다. 2001년 이후 급속하게 커지는 미술시장에 대한 국가적 이해와 해석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국가 차원에서 미술시장에 대한 대국민 의견을 들어보는, 또 그들의 관심을 살펴보는 첫 시도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3년간 연구 커미션을 받아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이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이자 EISA 현대미술시장 코스 디렉터인 세라 텔월(Sarah Thelwall)과 런던의 상업화랑 ‘캐비닛’의 디렉터 앤드루 윗틀리(Andrew Weatley)라는 점. 상업화랑 주인이 국가적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는 것이 조금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캐비닛 갤러리는 지난 10여 년간 실험적인 작가들을 발굴해 오면서 좋은 전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곳으로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딜러, 큐레이터, 컬렉션 어드바이저, 아티스트, 비평가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보고서를 만든다는 점은 영국식 실용주의가 아닐 수 없다.

세라 텔월은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웠던 것은 국가가 국내외 미술시장 정보를 모아 분석하는 정도의 일상적인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급성장하는 미술시장의 다양한 얼굴을 목격하면서, 국가가 미술 컬렉션을 만듦에 있어서 어떤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 내용들이 주로 연구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결국 현대 미술작품의 가치평가 기준에 대한 연구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떠한 작품을 어떻게 구입한다는 것을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미술 컬렉션 가장 많은 나라
이 보고서의 하이라이트는 미술작품의 유통과 관련된 ‘에코(ECO) 시스템’ 분석이다. 작가들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단계를 거쳐 사립·공립 미술관의 컬렉션이 되는지 설명해 주는 도표다(그래픽 참조). 이러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는 공공 미술기관의 ‘국가대표’로 뽑히는 작품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작품을 선정하는 전문인들은 얼마나 공정하고 엄선해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는 컬렉션을 만드는 문화 자체가 미술시장을 가장 활발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기본적으로 영국은 국가가 사주는 현대미술 컬렉션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도시마다 있는 미술관들은 예산이 적든 많든 간에 작품을 조금씩 사주고 있다. 그 위에는 영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 미술계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있다. 영국 아트 카운슬이 만드는 영국 현대미술 컬렉션, 해외에 영국 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영국문화원 컬렉션 등 상당한 수의 현대미술 컬렉션이 존재한다.

한 번 구입한 작품은 되팔지 않아
어떻게 보면,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마냥 좋을 것 같기만 하다. 하지만 어떤 사회도 완벽한 곳은 없는 법. 영국 국가 컬렉션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국가대표를 뽑는 것은 잘하고 있으나, 후발선수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공미술관의 컬렉션들이 이미 ‘정통(canon)’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름을 얻은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예산 안에서 아직 더 검증이 필요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해 세라 텔월은 이렇게 말한다.

“영국 공공 컬렉션 정책에는 한번 산 작품은 아무리 구입을 잘못했어도 다시 되팔거나 관리하는 정책(De-Acquisition Policy)이 없다. 사립미술관이나 기업미술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작품이 자신의 컬렉션에 더 이상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2차 시장에 되팔아 다른 작품을 살 수 있는 재정이라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공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만약 되팔 경우 윤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작가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 구입을 더욱 더디게 만드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영국에서는 컬렉션을 통해 후발주자를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제이자 이슈로, 많은 전문가에 의해 더욱 그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최고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하더라도, 후발선수를 키우지 않으면 미래의 국가대표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컬렉터, 펀드, 조직의 힘
이 대목에서 개인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미술(Art of Today)’이라는 개념으로 젊은 학생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사 모으고 있는 사치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자블로보비치라는 컬렉터의 ‘Project space 176 컬렉션 미술관’, 데이비드 로버트 컬렉션미술관 등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시장에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다. 공공 국가미술관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걸기 위해 신인작가 컬렉션용 특별 펀드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프리즈 아트페어 시작 이후 설립된 기금은 1년에 10만 파운드(약 2억원)를 영국 신인작가 작품만을 구입하는 데 쓴다. 여기서 구입한 작품은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된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전국 국ㆍ공립미술관에 보내주는 사립조직도 있다. CAS(Contemporary Art Society)라는 기관이 그렇다. 컬렉터들로 구성된 이 기관에서는 회원들이 함께 모여 전시를 보고, 토론하고, 미술작품 구입을 위한 기금을 기증한다. 구입된 작품들은 국가 국ㆍ공립미술관에 대여되거나 기증되기에 작품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컬렉터들은 자금만 대고 작품 선정은 12명으로 구성된 미술사가·큐레이터·미술비평가들이 결정한다.

전문 기관에서 작품 구입 조언
국가 컬렉션 만들기에서 또 한 가지 아주 좋은 사례가 ‘전문영역에 대한 인정과 협업’이다. 예를 들어 럭스(LUX)라는 영상미술 아카이브 센터는 많은 작가의 영상작업을 관리해 준다. 그리고 공공미술관이 영상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면, 그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작품에 대한 조언하는가 하면, 작가들과 연결해 작품을 구입해 주는 역할까지도 한다. 로커스트 플러스(LoCust+)라는 기관도 그렇다. 그 기관은 작가들이 새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 제안서를 모두 소장해 두고, 관련된 자료 및 작품을 관리한다.

한국, 세련된 정책과 계획 있어야
이러한 국가적인, 또 사립기관들의 ‘컬렉션을 통한 국가대표&후발주자 키우기’ 노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지난 7~8년간 세계에서 가장 호황이었다는 미술시장을 경험하면서 한국 미술시장도 규모나 인프라가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했다. 하지만 컬렉션의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아직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마음만 가지고 국가대표, 후발선수의 구별 없이 컬렉션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조금 더 세련된 정책과 계획을 가지고 그 좋은 열정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단지 가처분소득의 증가로 자신만의 유희적 차원의 컬렉션 만들기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문화 영역의 중요한 콘텐트인 미술 컬렉션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새로운 자산이기도 하기에, 개인이나 기관이나 국가나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미술사 및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런던에 거주하며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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