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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여자친구

“눈 좀 감아주실래요?”
나는 5월 7일 저녁에 아들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예쁘다. 군대 간 아들의 여자친구는 고맙고 미안하고 짠해서 더 예쁘다. 만나자고 하면 다른 약속을 취소하고라도 달려갈 정도로. 다만 어버이날 전날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뭔가 전해줄 게 있다지 않는가. 나는 ‘혹시 어버이날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정말 괜찮다’고 문자를 보냈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부담스러운 그런 선물이 아니에요’라는 회신을 받고 나는 반성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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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여자친구와 나는 저녁을 먹고 커피숍으로 갔다. 빈자리가 없어서 바에 앉았다. 나는 아들만 둘 두었다. 딸자식이 없는 부모는 불우하다. 아들은 자라면서 점점 말수가 줄다가 사춘기를 즈음해서는 묵언수행하는 수도자가 되어버린다. 나는 항상 딸 가진 친구나 이웃이 부러웠다. 딸은 아들과 달리 말을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여자친구도 말을 한다.

이제 나는 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아들의 대학 1년 후배이고 같은 동아리 소속이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열광했고, 그 영화에 출연도 한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의 친구 김중혁의 소설도 좋아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묻는다. 아내와 나는 어떻게 만났는지,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지, 주로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음악에 열광하는지. 나는 아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6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주로 예술영화를 보며 두꺼운 인문학 책을 읽고 음악이라면 클래식 그것도 요즘은 구스타프 말러에 빠져 있다. 다 허세다. 사실 나는 아내를 만날 때도 수없이 딴 여자에게 한눈을 팔았으며, 예술영화라고는 5~6년 전에 본 ‘아타나주아’가 마지막이었고, 인문학 책은 잠 안 오는 밤에 수면제 대신 잠깐 펼칠 뿐이다. 말러는 클래식 애호가인 전무님 따라서 올 초에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것을 한 번 들어본 게 전부다. 그런 나를 아들의 여자친구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눈 좀 감아주실래요?”
갑자기 눈은 왜 감으라고 하는 걸까? 너무 존경한 나머지 볼에 뽀뽀라도 해주려는 걸까? 그건 좀 곤란하다. 앞에 있는 바리스타가 다 볼 텐데. 그래도 아들의 여자친구 말이니 나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음악이, 사람들이 나누는 소리가, 물 끓는 소리가, 숨소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보인다. 소리를 따라 커피 냄새와 여자 화장품 냄새가, 그리고 꽃 향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나는 왼쪽 가슴에 달린 카네이션과 내 앞에 놓인 작은 사진첩을 본다. 사진첩에는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다. 사진 속에서 아들은 자기 소개를 하고, 노래하고, 음악을 듣고, 손을 흔들고, 영화 팸플릿을 보고, 책을 읽고, 엽기적인 표정을 짓고, 씨름을 하고, 점프하고, 버스에서 자고, 여자친구와 나란히 얼굴을 맞대고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오누이처럼 닮았다.

“감사합니다. 착하고 멋진 오빠를 낳아 주셔서요.”
그날 나는 사춘기 아들처럼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감사합니다. 착하긴 하지만 멋없는 아들의 여자친구가 되어주어서.”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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