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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 청일전쟁 → 6·25 근·현대 120년 격동의 역사 목격

<1>일본군과 미군 등 외국군의 주둔지에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1층, 지상 6층에 2만6000여㎡의 6개 전시 공간이 있다. <2>일본군 기병중대 병영으로 쓰이던 옛 건물. <3>한미연합사, 유엔사, 미8군 사령부가 있는 용산 미군기지 영내. <4>1994년에 개관한 전쟁기념관과 청동 전신상(높이 2.2m). 신동연 기자, 중앙포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과 가족공원 일대는 학습과 나들이를 겸하기에 좋은 장소다. 민족문화의 전당인 국립중앙박물관이 도심 녹지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평일에도 그렇지만 휴일이면 견학 온 학생들과 소풍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끊일 줄 모른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36> 용산 공원

박물관 건물을 나와 보신각종(보물 2호)이 있는 남동쪽 뜰을 거닐어 가족공원으로 들어선다. 청둥오리와 잉어가 노니는 연못 주위로 산책로가 열려 있다. 조각공원 풀밭에서 오락하고 있는 유치원생들의 웃음소리가 해맑다.

태극기 공원으로 향한다. 50봉의 태극기가 둥그렇게 서 있는 가운데 무궁화 형상의 잔디밭이 놓여 있다. 깃대 사이로 무궁화도 심었다. 소박하지만 민족 혼을 되살린다는 취지가 여기서만큼은 새뜻하다. 근대와 일제 강점기, 현대까지도 이 일대는 줄곧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강역이었다. 잠깐 동안 왔다가 가버리는 짧은 봄날, 연분홍 꽃잎 바람에 흩날리던 기억을 머금은 벚나무 숲 너머로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보인다.

미8군 무대서 한국 대중음악 이끈 스타 배출
모든 공간은 배타성을 지닌다. 누군가가 특정 공간을 점유하면 동시에 다른 세력이 그 공간을 활용하지 못한다. 공간은 인간의 실천적 목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분할되고 경계선으로 둘러싸인다. 더구나 그 공간이 타국의 군대가 머무는 공간이라면 더더욱 배타성이 크다.

우리는 서울 강남 반포에서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널 때마다 다리 북단이 잘린 것처럼 직각으로 우회하는 생급스러운 도로를 체험하곤 한다. 무엇이 쭉쭉 뻗어야 하는 도로를 우회시켰을까? 관통할 수 없는 미군 용산기지가 있어서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가족공원이 들어섰지만 그 전까지는 미군기지 골프장 부지였다.

이곳이 1992년 11월 한국 정부로 반환된 데 이어 이태원로가 둘로 나누는 남쪽과 북쪽의 기지도 2012년까지 반환된다. 정부(국토해양부 용산공원 조성 추진기획단)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따라 국민 의견을 수렴해 공원 명칭을 공모하고 남산과 한강, 관악산과 연계된 녹지축의 생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은 동작대교와 곧추 연결될 수 있는 도로를 예상하고 세웠다. 하지만 그 도로가 메트로폴리스 도심 속 꿈의 생태공원을 관통하게 만들려면 시민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동작대교 북단은 맘 놓고 달리지 못하는 도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용산(龍山)은 한강을 끼고 있다는 지리학적 이점으로 일찍이 전국 조운선(漕運船:화물선)이 모이는 포구로 발전했다. 한강에서 활약하던 경강 상인의 본거지로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의 시발지였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선 외국군 주둔지가 되고 만다.

용산은 역사적으로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강과 접해 있고 남산과도 가까워 일찍이 고려 시대에 몽골 침략군은 이 지역을 병참기지로 이용했다. 임진왜란 때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각각 원효로4가, 청파동 일대에 주둔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에는 청나라 군대가 머물렀다. 이때 조선 내란을 평정한다는 명분으로 우창칭(吳長慶) 부대를 수행해 와서 조선 역사에 등장한 문제의 인물이 위안스카이(袁世凱)다. 청군이 임오군란을 평정하자 군영으로 답방하러 온 대원군을 군함으로 압송해 톈진에 연금한 것이다. 위안스카이는 이 작전과 대원군의 잔당을 토벌하는 전투에도 참여했다. 임오군란이 평정된 뒤 청나라 우창칭 부대는 조선 정세를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계속 서울에 주둔했다. 1884년 우창칭이 조선을 떠나자 위안스카이는 횡포를 부리며 본색을 드러낸다.

이후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 증원 전력도 용산에 자리 잡았고, 민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때도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이 개입했다. 일제는 1908년 이곳에 조선군사령부를 설립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대륙 침략을 본격화했다. 남영동이라는 지명도 조선군사령부 남쪽에 병영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 24사단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용산기지 시대를 열었다.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시민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8군의 밤무대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을 선도하는 록음악과 그룹사운드 활동무대였고 이를 통해 많은 대중 스타들이 배출되었다.

삼각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성장 거점이다. 삼각지 화랑가는 한국전쟁 직후 미8군 주둔과 함께 초상화, 이발소 그림이 양산되었다. 가난뱅이 화가 박수근과 이중섭 등이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던 곳이기도 하다.

박수근·이중섭, 생계 위해 삼각지서 그림 그려
용산 미군기지는 총 81만 평이다. 주한미군사령부와 8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가 있는 메인 포스트(Main Post)와 주거시설·학교·병원이 있는 사우스 포스트(South Post)로 나뉘어져 있다.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공간이 반환된다. 머지않아 이곳에 계획된 도심 속 꿈의 공원이 태어난다. 도심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독서를 하고, 수영과 스케이팅을 하면서 사계절을 느끼고 호흡하게 된다.

뉴욕에 맨해튼 센트럴파크가 없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뉴욕 시민에게 센트럴파크는 작은 천국이다. ‘뉴욕의 가을’ ‘러브 스토리’ ‘나 홀로 집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영화에 이 공원이 등장한다.

올해 1월 27일 타계한 셀린저의 명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방황하는 청소년 홀든은 ‘겨울이 와 센트럴파크 호수가 얼어붙으면 오리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곤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레일에서 탈선한 그 자신이야말로 호수가 얼어붙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겨울 오리 신세와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용산공원이 우리네 문학작품이나 영상물에 단골처럼 묘사될 만한 명품으로 태어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한국전쟁 60주년의 해다. 용산 전쟁기념관과 미군기지를 바라보며 6·25전쟁과 천안함 사건을 떠올린다. 군대는 국가의 공인된 무력기관이다. 동족 간의 남북 대치 상황이라 무력을 행사할 수 없음이 답답하다. 그뿐인가. 대한민국 군사력은 세계에서도 강군으로 손꼽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안에 외국 군대를 들이는 역사를 12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국가는 고유의 영토 안에서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결사체가 아니든가.
땅의 쓰임새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국가와 민족, 군대와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보는 명소, 용산공원! 서울과 대한민국의 문화 상징으로 거듭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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