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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없는 완벽 소프트웨어 디지털화로 세계와 만난다

장경각 지킴이인 관후 스님이 5일(어린이날) 오후 어린이 두 명에게 경판이 보관된 장경각 내부를 구경시켜 주고 있다. 장경각은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곳이다. 신동연 기자
초조·재조 대장경, 속장경 경판은 어림잡아 24만 장이다. 인쇄본 전체를 구비한 도서관도 아직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해도 그것을 일일이 펼쳐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한문본이어서 문장을 해독하고 연구하기도 쉽지 않다. 전산화가 돼 있다면 누구라도 쉽게 필요한 부분을 검색하고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다. 그것은 획기적인 경전 보급이자 연구활동 지원책이다. 말 그대로 지식기반 사업이다.

또 다른 천년 준비하는 디지털 대장경...컴퓨터 낯설던 85년,간단한 색인 작성해 대장경 전산화 첫발

일찍이 그런 꿈을 꾼 수행자가 있었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사진)이다. 해인사 도서관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종림 스님은 고려대장경 목록과 해제의 전산화 작업을 시도했다. 당시 강주(講主:사찰 소속 강원의 책임자)로 있던 무관 스님과 강원 학인들, 컴퓨터에 관심 있는 몇몇 인사들이 동참했다. 경전 내용을 입력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단지 경전 이름과 번호, 30자 내외의 간단한 해제를 달아 입력 카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를 구하지 못해 시부저기 접어야 했다. 당시 컴퓨터는 산중 스님들이 갖기 힘든 엄청난 고가품이었다.

“세상만사 억지로 되는 일은 없지. 인연이 지어져야 하고 때가 맞아야 하는 거요. 시절운이라는 거지.” 종림 스님은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꾸고 있던 버클리대학 루이스 랭커스터 교수를 만났다. 당시 그는 중국 상하이의 한 연구소를 통해 고려대장경을 입력하고 있었다. 적은 연구비로 시험 삼아 대반야경의 일부를 입력한 랭커스터 교수 역시 예산과 인력난에 봉착해 있었다.

93년 봄, 랭커스터 교수는 불교경전 전산화를 홍보하기 위한 워크숍을 열었다. 불교학을 전공하던 학생과 전문가들을 위한 조촐한 모임이었다. 이 자그마한 모임이 역사적인 만남의 계기가 됐다. 해인사 대장경연구소가 고려대장경 전산화의 주체가 되는 데 합의했고 랭커스터 교수는 그간 입력된 데이터베이스(DB)와 관련 자료들을 조건 없이 기증했다. 랭커스터 교수는 한국 불교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았던 것이다. 94년 9월, 해인사에서 두 번째 모임이 있었다. 그 후로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고려대장경 전문의 입력이 완성됐다. 한국 불교계와 한국 사회가 지닌 놀라운 잠재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전 해인사 도서관장 종림 스님
불전(佛典) 전산화는 96년 고려대장경 입력이 완료되는 것을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는다. 입력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컴퓨터는 불전 연구의 신기원이 됐다. 컴퓨터 속으로 들어간 글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거의 모든 원전을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구해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고려대장경연구소’를 클릭하면 3000년의 보물창고를 샅샅이 열람해볼 수 있어요. 경판 새김 이전 천년의 지혜, 경판 새김 이후 천년의 문화유산, 그리고 인류가 열어갈 천 년의 미래! 그것은 상상력이고 문화콘텐트라, 일제 때부터 한국 불교가 줄곧 개혁을 추진해왔지만 지식기반을 재정립하는 이 사업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고 혁명입니다.” 종림 스님의 설명이다.

종교 다원주의가 상식처럼 된 오늘날, 세상의 모든 불교 경전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하며 볼 수 없을까? 고려대장경을 놓고 팔리원전이나 산스크리트 원전, 티베트 원전들과도 대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전이 담긴 디지털 아카이브(Digital Archive:영구성이 있는 자료들을 디지털화해 보관하는 일), 이를 통해 통합대장경이 완성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고려대장경과 한글대장경을 결합시키는 게 우선이다.

컴맹에 가까운 종림 스님과 랭커스터 교수의 만남은 천년 전, 고려인들이 이룩했던 판각 작업과는 또 다른 업적을 낳았다. 불전 전산화는 불교권 안팎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산화 초기에는 스님과 불교학자들이 전산화를 추진한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산화가 현실화된 지금, 연구자들은 정보의 바다와도 같은 DB를 확보했고 일반인들은 문화 콘텐트를 향유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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