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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67명이 죽었다, 89층서 66명 88층은 단 1명, 왜 그랬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인이 자유의지로 결정해서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의 이면에도 집단 심리가 감춰져 있다.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항공기 테러를 당한 뒤 연기 속에 무너지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히든 브레인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 초록물고기
460쪽, 1만4800원


# 1. 2001년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 88, 89층에는 금융회사 ‘키프, 브뤼엣&우즈’사의 직원 12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사고로 그 중 67명이 사망했는데 66명이 89층에서 일했다. 88층 근무자 중엔 오직 한 명만이 숨졌다. 도대체 각 층의 사무실에선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 2. 이스라엘 심리학자 아리엘 메라리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 테러리스트들은 결코 사이코 패스적 자동인형이나 니힐리스트가 아니었다. 대부분 종교적 배경도 없었으며 심지어 무신론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부유한 특권층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았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던졌을까.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의 과학담당 기자인 이 책의 지은이는 그 원인을 간단하게 정리한다. ‘숨겨진 뇌’, 즉 무의식적 편향 탓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숨겨진 뇌’는 우리 두개골 안에 있는 특정 부분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 못한 새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다양한 영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례 1의 조사결과를 보면, 88층에선 J. J. 아귀어란 이가 사람들에게 빠져나가라고 소리친 반면 89층에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 자리에 머물렀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생사가 갈렸다는 결과는 다르지만 실은 당시 이 회사 직원들은 사실상 동일한 결정을 했다고 지적한다. 집단의 논리에 순응했다는 것이다. 평소와 달리 재난이 닥칠 경우 개인의 결정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집단행동 자체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든다. 진화과정에서 집단에 의존하면 좀더 안전하다는 ‘교훈’이 우리 몸에 배었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면 집단 안에서 일치된 합의에 이르려는 욕망이 ‘숨겨진 뇌’의 강렬한 충동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결정을 전제로 한 대형건물의 비상탈출로는 무용지물이 되는 대신 한 출입구에 사람이 몰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한다.

사례 2는 이와 반대다.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큰 집단의 심리, 즉 낯선 사람들의 ‘집단적 압력’에 영향을 받는 반면 자살테러범은 무의식적으로 소규모 집단의 심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의미를 부여받고 싶은 숨겨진 뇌의 욕구에 따르는 이들은 자살테러범만이 아니라 기업의 정예 임원, 용감한 병사들, 이상주의적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종교나 애국심, 봉사가 행동동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테러리스트 조직이 자신들의 대의가 중요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 것이란 인식만 심어주면 특별히 나서 사람들을 모집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은 공급이 늘 수요를 웃돌기 때문에 자살테러범들은 비정상적 사람이란 전체하에 세운 대 테러 대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편향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위험에 관해서만이 아니다. 도덕적 판단이나 투자에서도 이를 찾아낼 수 있다. 철학자 피터 싱어에 따르면 200달러 짜리 구두가 못 쓰게 되더라도 연못에 빠진 아이를 구하겠는가란 질문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한다.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전 세계 수 백만의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선단체에 200달러를 기부하겠느냐는 물음엔 주저한다. 이처럼 우리가 집단적 수난과 떼죽음에 무관심한 것은 커다란 숫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무능함 때문이란다.

냉정하고 합리적일 것 같은 주식 투자에도 무의식적 편향이 작용한다. 심리학자 애덤 알터 등에 따르면 쉽게 발음되는 이름의 회사들 주가가 그렇지 않은 회사의 주가보다 상장 첫 날엔 11.2% 높았고 1년 후엔 33%로 벌어졌다. 물론 회사 이름이 가진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지만, 자신들이 신중한 선택을 한다는 투자자들의 믿음과 달리 발음하기 어려운 기업이름은 불안감과 연결시키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책은 이처럼 합리적 마음이 숨겨진 뇌의 교묘한 책략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성이 편향을 극복할 유일한 보루라고 하는 정도다. 그러니 망언을 일삼는 일본 우익 정치가나 상식 밖의 소리를 내뱉는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할밖에.

김성희 기자



‘착한 거짓말은 괜찮다’는 그럴듯한 환상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예담
384쪽, 1만5000원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함께 차를 마시는데 “말씀이 지루하네요”라고 속삭이든가, 새 옷을 입고 출근한 사람에게 대뜸 “그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조언해주는 사람. 스스로 ‘난 정직하다’며 자부할 그에겐 ‘사회성 없다’는 딱지가 붙기 십상이다. 30년 간 거짓말과 일상의 속임수 연구를 해온 지은이는 “거짓말이 때로는 사회규범 역할을 한다”며 “실상 우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책을 통해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고, 우리는 또 왜 그렇게 잘 속고, 이런 거짓말 문화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했다.

지은이는 거짓말에 대한 통념이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착한 거짓말 환상’도 그 중의 하나. 사람들은 착한 거짓말은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것은 환상이란다. 작은 거짓말은 더 많은 거짓말을 낳는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짓말을 하면 표시가 나기 마련이라는 믿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은 알아내기 쉽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환경이 조성돼 있단다. 사람들은 상대가 거짓말을 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아예 의심을 안 하는 ‘진실편향’이 있고, 사사건건 진실 여부를 가리는 데 정신적 에너지를 쓰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짓말 하는 법을 가르치는 ‘모델 라이어’다. 비록 대수롭지 않는 거짓말이라도 아이들은 어른을 보며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거짓말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배운다. 거짓말이 우리 사회의 엄연한 한 부분인 또 다른 증거는 ‘외도’다. 유명 정치인과 배우, 스포츠 스타 등 바람 피우다가 들통 나면 잃을 게 많은 사람들도 위험을 감수(?)하는데, 잃을 게 많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과연 어떻겠냐고 그는 묻는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직장 등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거짓말과 속임수다. “스트레스가 심한 회사에서는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일어난다.” 조직 상층부의 나쁜 기대치와 태도가 조직 전체의 문화를 병들게 하는 ‘썩은 사과’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속임수가 만연한 것은 사회의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속임수의 폭넓은 유용성 때문”이라면서도 “거짓말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에 관대한 사회는 결국 속임수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때문이란다. 거짓말의 다양한 측면을 세밀하게 들춰낸 내용도 흥미롭지만, 코미디언처럼 유머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솜씨가 매력적인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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