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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이렌

전남 목포의 유달산에 ‘오포대’가 있다. ‘오포(午砲)’는 말 그대로 정오를 알리는 대포다. 1909년 설치됐는데, 조선 현종시대 제작한 선입포를 사용했다. 한 번 쏘는 데 화약 30냥이 들었다고 한다. 시계가 귀한 시절의 공식 시보(時報)인 셈이다. 서울은 경복궁 금천교가 오포 발사대였다. 그런데 1908년 4월 1일 당시 일본 통감부가 시차(時差)를 무시하고 일본의 정오에 맞춰 오포를 쏜다. 우리나라의 오전 11시가 정오로 바뀐 연유다.



이들 오포는 일본이 전쟁물자로 공출하면서 사이렌으로 대체된다.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이상(李箱)의 ‘날개’에는 ‘가야 하나? 어디로 가나? 이때 뚜~하고 정오의 사이렌이 울렸다’는 대목이 있다. ‘오포를 쏜다’가 ‘오포 분다’로 바뀐 시점이다. 서울시 시사(市史)에 따르면 이 사이렌을 ‘우정’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우~’ 하는 소리로 정오를 알리기 때문이란다.



시각을 알리던 사이렌은 전쟁을 거치면서 경보(警報)로 자리 잡는다. 주로 공습경보다.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의 모습으로 영혼의 목소리를 내던 바다의 요정 사이렌이 경계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럴 것이 호머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사이렌은 원래 감미로운 노래로 배의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존재다. 오디세이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몸을 묶어 무사히 지나감으로써 낙담한 사이렌이 자살했다지만.



근래의 도시는 사이렌의 홍수다. 경찰차, 구급차, 소방차는 물론 각종 사이렌이 그칠 날이 없다. 자동차 도난방지 사이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다. 전위주의 음악가들이 소방차의 경적과 사이렌 소리가 포함된 ‘다성(多聲) 음악’을 선보인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일 터다. 이게 싫어 전위예술가 케이지는 ‘4분33초’에서 아예 ‘소리 없는 음악’을 선보이지만. 소리 없는 사이렌도 있다. 천안함 경우다. 엄중한 안보적 현실을 일깨운 경보다.



어제 전국에 낯선 사이렌이 울렸다. 소방방재청의 민방위 재난 경보다. 공습경보는 3~5초 간격 파상음이지만, 재난경보는 2초 주기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형식이다. 음역은 519~700헤르츠. 지난해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의 자문을 받아 개발했다. 경보를 차별화한 것은 대피 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공습경보에는 지하로 대피해야 하지만, 재난경보에는 공터로 달려가야 한다. 지진으로 경보가 울렸는데, 지하로 대피하면 큰일이다. 이제 사이렌도 가려서 들어야 하는 시대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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