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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2> 변산 마실길

변산마실길을 걷는 재미 중 으뜸은 썰물 때 물 빠진 펄을 걷는 재미다. 변산마실길은, 바다가 길을 지웠다가 다시 그리는 길이다.
‘마실’은 ‘마을’의 호남 방언이다. 하나 ‘마실’은 촌부락을 뜻하는 명사로 쓰이기보단 ‘마실 간다’는 동사의 어근이 더 친숙하다. 충남 논산이 친정인 울 엄니도 ‘마실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잘 안다. 사전을 뒤져 보니 ‘마을’에는 ‘이웃에 놀러가는 일’이라는 뜻이 더 있었다. 그러니까 ‘마을 간다’고 써야 옳은 표기다.



[중앙일보 45주년ㆍ프로스펙스 30주년 공동기획]
길은 길인데 물때가 맞아야 걸을 수 있답니다

지난해 10월 전북 부안군에 마실길이 생겼다. 지방자치단체가 속속 길을 열어젖히자 부안도 뒤질세라 변산반도 따라 길을 낸 것이다. 워낙 풍광이 수려한 땅이라 길은 이내 명소가 됐다. 주말마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가 마실길 어귀에 사람을 잔뜩 부렸다. 마실길을 걸었다. 마냥 좋았다. 길이 모질지 않아 좋았고, 갯바람이 얼굴을 간질여 좋았고, 듬성듬성 핀 야생화가 좋았고, 해질 녘 붉은 바다가 내려다보여 좋았고, 모래사장에 발자국 찍어서 좋았다. 하나 제일 좋은 건 따로 있었다. 마실길. 마실길을 발음할 때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어감이 가장 좋았다. 기분 좋은 마실이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 기원



walkholic(워크홀릭). 중앙일보가 3년 전부터 펼치고 있는 ‘걷기 국민운동’ 캠페인이다. 워크홀릭 캠페인의 주요 사업 중에 ‘전 국토 잇기 프로젝트’가 있다. 사람이 주인이 되는 길을 지자체마다 닦아 국토를 하나로 잇자는 사업이다. 그 사업에 충청북도·강원도·제주도 등 여러 지자체가 참여했는데, 전라북도도 그중 하나였다. 전북은 지난해 9월 ‘전 국토 잇기 프로젝트’ 동참을 선언하며 전북 지역을 길 하나로 잇는 ‘1000리 에움길’ 사업을 발표했다. 그 에움길의 첫 작품이 변산 마실길이다.



부안군청 사람이 들려준 마실길의 기원이다. 덩달아 김빠지는 사실도 알게 됐다. ‘변산 마실길’이란 이름은 제주 올레 모양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도청이 에움길 사업을 주도하면서 시·군마다 길 이름을 지어 줬다. 부안군이 ‘변산 마실길’을 받을 때 군산시는 ‘망해산 둘레길’을, 장수군은 ‘마루한길’을 받았다. 진안군도 마실길을 받았다. 그러니까 ‘변산 마실길’이란 이름은 변산반도의 정서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여기서 다시 의문. 그럼 부안군은 애초에 없던 길을 아예 새로 낸 것일까. 군청 사람의 답변이 다시 허를 찔렀다.



“군사지역이었어요. 해안선 따라 경비 초소가 있는데 그 초소를 따라 길이 나 있어요. 그 길이 이번에 개방된 거예요. 지금도 가끔 군인들이 초소에서 근무를 선다던데….”



비무장지대(DMZ)도 아닌데 군사지역이란다. 그럼 마실길의 주인은 갯마을 사람이 아니라 서해안 경비를 서는 군인이란 말인가. 난데없는 내막을 듣고 뜨악한 표정을 짓자 부안군청 사람이 “걸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걸음을 부추겼다.



# 두 개의 길



변산마실길 2코스 중간에 설치된 해안초소.수두룩하다.
초소는 정말로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서해안은 굴곡이 많은 리아스식 해안이다. 그 숱한 모퉁이마다 초소가 들어서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마실길을 다녀갔는데 왜 여태 해안초소 얘기는 없었죠?”



“여긴 2코스이니까요. 해안초소는 대부분 2코스에 몰려 있어요. 사람이 붐비는 곳은 3코스이거든요. 격포해수욕장이 있는 관광지고요.”



그러고 보니 길에서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은 가지에서 떨어진 꽃잎으로 흥건했다. 길 위에는 꽃잎만 가득할 뿐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았다. 오른쪽 바다 위로 고집스러운 직선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새만금 방파제다. 방파제는 막 부안 땅과 군산 땅을 연결한 다음이었다. 방파제 안쪽의 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하나 전국에서 가장 많이 올라왔다는 백합은 서너 해 전 종적을 감췄다.



변산반도 해안을 따라 들어서 있는 초소는 한국전쟁 이후 설치됐다. 그전에는 어부의 길이었다. 초소가 들어선 뒤에도 바다로 일 나가는 어부는 막지 않았다. 국유지였던 땅 일부가 김대중 정부 시절 민간인에게 환원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종종 군인이 초소로 나와 경계 근무를 선다.



이제 겨우 사람의 길을 회복한 길 위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길을 바라봤다. 하나의 길은 어제와 자연을, 다른 하나의 길은 내일과 문명을 상징하고 있었다.



# 물이 길을 내다



변산마실길 3코스 수성당 앞에서. 마침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


해신을 모시는 수성당에서. 마침 굿판이 열리는 참이었다.
숲만 걸어도 지루하고 해안만 걸어도 심심하다. 하나 마실길은 그렇지 않다. 걷는 재미만 따지면 제주 올레에 버금간다. 마실길은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해수욕장을 가로지르고, 밭고랑을 따르고, 갯바위를 넘는다. 수성당에서는 마침 굿판을 준비하는 참이었다. 적벽강 절벽 위에 서 있는 수성당은 변산 바다를 지키는 할머니 해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하나 변산 마실길만의 매력은 따로 있다. 물때에 따라 길이 사라졌다 나타난다. 그러니까 썰물이면 물 빠진 펄이 마실길이 되고, 밀물이면 해안 절벽 위 오솔길이 마실길이 된다. 어디에서도 밟은 적이 없는 신비의 길이다.



변산마실길 2코스 초입에서 물길. 썰물 때여서 고깃배가 뭍에 나와 있다.
일부러 썰물 때를 맞춰 고사포해수욕장과 하섬 전망대 코스를 걸었다. 채 바다로 나가지 못한 갯것으로 펄은, 아니 길은 부산했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모래의 질감이 제법 단단했다. 푹푹 빠지는 펄이 아니었다. 길이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맞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수평선 어름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변산반도에서 일몰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허다한 서해안 낙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는 해 바라보는 곳은 길 위다.






길 정보  변산 마실길은 현재 18㎞가 나 있다. 새만금 전시관에서 변산반도 북쪽 해안을 따라 격포항까지 이어진다. 연말까지 변산반도 남쪽 해안을 따라 줄포까지 길을 내면 총길이 64㎞의 변산 마실길이 완성된다. 아직 개발이 덜 돼 격포해수욕장 근처를 빼고는 변변한 편의시설이 없다. 변산 마실길에만 필요한 정보가 있다. 물때다. 1코스가 시작되는 새만금 방조제 안내소에서 물때를 알 수 있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24, 환경녹지과 063-580-4331. 서해안 고속도로 부안IC로 빠져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새만금 전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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