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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수목원·식물원 … 봄·여름 사이에 핀 ‘천상의 화원’

나무에 꽃 피고 꽃 진 자리에 푸른 잎 돋는 계절이 돌아왔다. 봄이 무르익는 5월엔 수목원에 가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던 봄이 거기에 살고 있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2000년 4월 16일 민병갈(1921~2002)의 일기 ①



천리포수목원이 오늘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뽑혔다. 세계에서 12번째이자 아시아에서 첫 번째 수상이다. 상 욕심이 있어 반평생 나무와 살았던 건 아닌데, 인증 동판을 받고 보니 지난 세월이 아스라하다.



내년이면 천리포로 내려온 지 40년째다. 그땐 벌거숭이 붉은 땅이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고향땅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이 작은 나라 서쪽 구석에서 나무 심고 꽃 피우며 살았을까. 나는 왜 나무 앞에서 그토록 엄격했을까.



되돌아 보니 직원들에게 너무 모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웃자란 나뭇가지를 자른 직원을 해고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내 흉을 보고 다녔을 것이다. 저러니 평생 장가도 못 갔지 하고 말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다시 커진다. 연못을 뜨지 못하겠다. 나는 죽어서 개구리가 될 것이다. 개구리가 되어 풀숲 아래서 마음껏 뛰놀며 살 것이다. 오늘따라 봄바람이 싱그럽다.



2005년 4월 8일 고 민병갈의 일기 ②



오늘은 내 세 번째 기일이다. 국립수목원이 3주기라고 국립수목원 숲 명예의 전당에 나를 헌정했다. 동판 초상 아래 새긴 글귀가 나로선 과분할 따름이다.



‘이 땅과 나무를 사랑한 민병갈.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 1962년부터 40여 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남 태안의 헐벗은 산림을 1만300여 종의 식물종이 살고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가 우리 국민에게 선물한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보고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될 것이다’.



3년 전 오늘 내가 죽자 수목원의 블루베리 한 그루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해마다 풍성하게 열매가 열리던 녀석이었는데, 그 녀석도 참….



2010년 어느 봄날 김미정(1988~ )의 일기



중앙일보 기자가 대뜸 나이를 묻는다. “88년생이오”라고 답했더니 “그럼 무엇을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다시 묻는다. 내가 애송이처럼 보이나 보다. 일부러 두 눈 똑바로 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천리포수목원 코디네이터입니다. 중학교 때 우연히 여길 들렀다 평생 나무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평온하고 안락한 풍경을 저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했고, 올 1월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 사는 1만5000여 종의 식물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놀란 얼굴로 되묻는다. “그럼 천리포수목원이 인생을 바꾼 건가요?” “네.” “꿈을 이룬 거네요.” “네.” 기자의 태도가 갑자기 순해졌다.



나무도 감기에 걸린다. 여기, 기운 잃은 목련만 봐도 알 수 있다. 올봄 날씨는 정말 끔찍했다. 아니, 저 아줌마가 목련꽃을 만지고 있다. 저런 사람 꼭 있다. 풀도 나무도 생명인데, 바라보기만 해도 그들의 표정을 알 수 있는데,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다. 나는 나무가 더 좋다.



요즘 수목원이 힘들다. 회원에게만 개방했던 수목원을 지난해 일반인에게도 문을 연 것은 사실 어려운 형편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이 오면 아무래도 식물에 해가 된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오면 좋겠다. 수목원 살림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식물원은 하루하루 풍경이 다르다. 꽃이 피었다 지고 그 꽃 진 자리에 잎이 돋는다. 날마다 푸르러지는 버드나무만 봐도 답답했던 가슴이 환해진다. 어라? 단풍 꽃이 폈네. 단풍놀이 좋아하는 한국인이라지만 단풍 꽃 지켜본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해가 진다. 떠날 채비 하던 기자가 불쑥 묻는다. “꿈을 이루고 나면 인생의 꿈이 없어진 거 아닌가요?”



“수목원을 만들 거예요. 창립자 선생님처럼요.” 이번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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