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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자인 프로젝트 ③ 홍익대 대학원생들이 재발견한 ‘전통색’

우리에겐 전통의 색이 있다. 청·적·황·백·흑이라는 오방색(五方色)이다. 각각의 색엔 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뜻이 숨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돌이나 명절엔 꼬마들에게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잔칫상 국수에 오색 고명이 올라간다. 단지 예뻐서가 아닌 상징의 기호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두 번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의미가 부각되지 못했다. 색을 입히는 곳에선 어김없이 ‘오방색 카드’가 나왔지만 소재나 형태에 묻혔다. 하지만 이쯤에서 짚어줘야 했다. 한국적 정체성은 형태·무늬만이 아닌 색으로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방색이 ‘컬러풀 원더풀’을 외치는 요즘엔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본래의 의미가 어떻게 변용될 수 있을지, 색동저고리와 오색 고명의 다음은 무엇이 될지 궁금증도 늘어났다. 그래서 이달 주제로 오방색을 던졌다. 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과 대학원생들이 나섰다. 답은 기발했다. 그들은 중간색을 응용해 썼고, 오방색으로 또 다른 ‘색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최신 트렌드에 컬러를 녹여 내기도 했다. 항아리 모양 부적과 족두리 장식 뱅글 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신 전통의 첫발이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평안을 기원하는 항아리 목걸이 김도아(27)

5개 항아리가 연달아 달린 목걸이다. 오방색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적색의 의미가 모티프가 됐다. 적색은 예부터 악귀를 쫓는 수호(부적)의 뜻. 예부터 붉은 빛의 황토가 자주 쓰인 이유였다. 또 과거엔 ‘장맛을 보면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장은 한 가정을 대표했고 보관하는 항아리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 두 가지를 접목시켜 항아리 목걸이를 만들었다.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다. 소재는 황토처럼 서민적인 은을 이용했다.

슬픔 묻어나는 흰색 고깔 한영희(27)

승무 때 쓰는 고깔에 7개의 가면을 부조처럼 붙였다. 언뜻 보면 입체감 있고 화려한 모자지만 슬픔을 표현하는 액세서리다. 일단 흰색 자체가 애잔하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는 공허함이 느껴진다. 가면도 마찬가지다. 웃음과 울음을 모두 감추려는 도구다. 과거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서민들은 그 뒤에 억압된 감정을 숨겨야 했다. 작품은 이런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했다. 고깔은 일부러 차갑고 딱딱한 금속을 쓰지 않았다. 처연하고 힘 없는 느낌을 살리려 천과 가죽을 택했다.

뱅글과 만난 다섯 빛깔 김하리(29)

요즘 유행하는 뱅글과 오방색이 만났다. 동서양 문화가 섞이는 요즘 패션계에 어울리는 시도였다. 디테일은 전통에서 찾았다. 고려시대 이후 대표적 장신구인 족두리를 가져왔다. 족두리 맨 위에는 항상 오방색 장식이 있다는 것에 착안했다. 족두리를 위에서 본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 뱅글에 붙였다. 가운데엔 알록달록한 준보석을 넣어 팝아트 같은 경쾌함도 살렸다. 은 뱅글에 진주·비취·마노·호박 등 전통적 준보석류를 고루 사용했다. 오밀조밀한 장식과 큼지막한 뱅글이 전체적인 구조를 잡아줬다.

마음까지 파래지는 목걸이 유정은(26)

오방색 중 청색에 주목했다. 여름철 가장 어울리는 색깔이기도 하지만 파란색이 뜻하는 ‘액막이’의 상징을 살리고 싶었다. 꾸미는 장식이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소품이 된다. 미신적인 컨셉트와 달리 디자인은 최대한 현대적으로 보이려 했다. 인조가죽으로 휘날리는 나뭇잎 모양을 만들고 목걸이틀은 나뭇가지처럼 가는 와이어를 겹쳤다. 자연주의가 대세인 올봄 트렌드를 따른 것이다. 나뭇잎 하나 하나는 똑딱이 버튼으로 붙여 모양을 바꿀 수 있게 했다. 목걸이틀은 청색이 가장 강렬해보일 수 있도록 검정을 골랐다.

노을 질 때 느낌 그대로 조문숙(30)

오방색도 결국은 자연이 출발점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단순히 다섯 가지가 아닌 중간색(오간색)을 쓰면서 더 풍부해졌다. 노을이 지는 풍경은 그런 오방색과 가장 닮은 현상이었다. 명명할 수 없는 많은 색깔이 섞여 있어 오묘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 순간적으로 달라지는 색감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특징들을 살리기 위해 금속 대신 유리를 택했다. 빛의 강도·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컬러 변화를 최대한 살리려는 것이었다. 단 금속 작업 때 흔히 쓰는 ‘유화 가리(표면 착색)’를 했다. 색이 뜨지 않고 묵직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해가 지기 전 어둑어둑해지는 찰나를 표현하기 좋았다.

한글로 꾸민 조각보 모양의 장식 김민지(26)

‘오방색’이라는 한글 자체를 패턴화시켰다. 알파벳만으로도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일단 얇은 금속 표면을 화이트골드(백)·옐로골드(황), 블랙골드(흑)로 도금해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또 판을 구부려 입체적으로 보이면서 전통적인 곡선미도 살렸다. 내부는 세심하게 장식했다. 조각보 느낌의 사각 무늬를 새긴 것. 빈 칸에 청·적 등 글자를 나눠 새겨 넣었다. 여기에 액세서리니만큼 약간 화려해 보이는 포인트가 필요했다. 모조 터키석·산호·오닉스 등 보석을 박아 오방색을 한 번 더 강조했다.

가야금 케이스에 담긴 브로치 안여진(28)


오방색의 다섯 개 브로치를 만들었다. 여기에 중점을 둔 것은 ‘어울림’이다. 오방색의 바탕이 되는 오행사상의 핵심이라서다. 일부러 브로치 크기와 색의 농도를 각각 다르게 했다. 모였을 때 어느 것 하나만 도드라지지 않기 위해서다. 틀은 은을 쓰고 색을 내기 위해 염색된 모시를 덧입혔다. 모시는 예부터 옷으로도, 조각보·밥상보 등으로도 쓰인 옷감이다. 우리나라의 소박한 장식의 미를 대표하기도 한다. 여기에 브로치를 넣는 케이스도 따로 만들었다. 가야금 모양이다. 악기가 내는 전통 5음계 역시 오방색과 같은 의미가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케이스는 벽에 거는 인테리어 소품이 되기도 한다.



프로젝트 참여한 미래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오방색
“빛깔마다 숨은 스토리 … 그걸 강렬하게 풀어내는 게 디자이너”


“한국적 액세서리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까딱하단 싸구려 기념품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김민지(26)양은 프로젝트 내내 이 점을 고민했다. 전통을 내세우다 보면 조악해지기 일쑤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한영희(27)양도 마찬가지였다. 색동 같은 1차원 디자인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파격을 내세울 수도 없는 일. 액세서리는 옷에 비해 독특한 디자인이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피나 무게에 한계도 있었다. 같은 고민을 끌어안고 7명이 세미나까지 열었다. ‘진짜 오방색이 뭔가’를 파고들었다. 컨셉트를 잡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컬러로 말한다

안여진(28)양은 “오방색의 매력은 숨어 있는 스토리”라고 말했다. 그걸 다양하게, 강렬하게 풀어내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란 것도 깨달았다. 유정은(26)양도 “색깔 하나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인지를 말해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며 공감했다.

김도아(27)양은 오방색을 공부한 뒤 주변을 새롭게 보게 됐다. 서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이나 사극의 한복 하나에도 관심이 갔다. 김양은 “뜻을 알고 보니 전통이 지루하다는 편견 대신 전래동화를 듣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방색은 글로벌하다

프로젝트를 하며 학생들이 내린 결론은 똑같았다. 오방색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글로벌하다는 것. 조문숙(30)양은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 컬러조차 우리가 이미 써 왔던 색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색이라는 게 본래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동서양을 나눌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다. 조양은 “앞으로 자연현상을 색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더 해 보고 싶다”며 “오방색만이 아닌 중간 색깔인 오간색까지 폭넓게 다뤄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하리(29)양은 오방색을 트렌드와 연결시켰다. 해외 컬렉션을 파고들었다. 최근 해외 디자이너들도 에스닉하고 앤티크한 디자인을 글로벌하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김양은 이를 디딤돌 삼아 목표를 세웠다. “해외 명품에선 못 나올 파인 주얼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우리 전통 보석도 널리 알리고요.”



코리안디자인프로젝트는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 코리안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한국 예비 디자이너들의 미션입니다. 세계가 코리안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요즘,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창의적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마련한 코너입니다.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을 매달 한 번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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