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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상 대상받은 박민주·이예지양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신체 장애 등을 담담히 이겨내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이 올해 서울시민상 어린이와 청소년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인 박민주(서울 청운초 6)·이예지(서울 정신여중 3) 두 학생은 “겉으로는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도 한두 가지 어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딱히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귀감이 되고 있는 두 학생을 만났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장애인 오빠 덕분에 배우는 게 더 많아

박민주(서울 청운초 6·왼쪽)양은 매일같이 시각장애 1급인 오빠 기홍군의 하교 시간에 마중 나가 함께 돌아온다. [황정옥 기자]
민주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 1급인 오빠 기홍(서울맹학교 중등부 3)군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부도 잘해서 학교에서 상도 곧잘 받아오는 데다 하나뿐인 동생 민주에게 늘 다정하게 대해주는 자랑스러운 오빠로 여겨왔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상처를 받는 일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오빠의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앞까지 가 기다리다 함께 귀가하는 길에 같은 반 남학생과 마주친 것이다. 민주는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 애가 심하게 놀려서 정말 속이 상했다”며 “오빠는 단지 눈이 불편한 사람일 뿐 별다를 게 없는데, 놀리거나 쳐다보거나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엄마 김재경씨가 식당에 나가면서부터 민주 몫의 일이 더 늘었다. 아버지 월급으로는 네 식구 살림살이가 빠듯해 엄마까지 맞벌이에 나서자 오빠 점심과 저녁식사를 챙기고 숙제를 도와주느라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까지 없어졌다. 민주는 “휴일이면 친구들이 같이 놀자며 집으로 절 부르러 와요. 시간이 없어서 늘 그냥 돌려보내죠. 아무 제약 없이 행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어린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오락가락해요”라며 웃었다.

오빠를 돌보면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교우관계도 좋아 1학년 때부터 5년간 ‘기본이 된 어린이 상’을 받아왔다. 이 상은 서울시교육청에서 학교별로 한 어린이만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민주는 “오빠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빠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요. 책도 좋아해서 제가 대신 읽어줘요. 눈이 안 보이지만 열심히 사는 오빠 모습을 보면 저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제가 오빠를 돌봐주는 줄 알지만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더 많다니까요.”

‘괴물손’이라 놀리던 아이에게 종이학 선물도

예지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 손가락이 두 개뿐이다. 팔도 가늘고 약해 무거운 물건을 드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예지의 어머니 현숙열씨는 “팔 근육이라도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어렸을 때 피아노를 시켜봤다”며 “예지가 한 곡 한 곡 연주해 내면서 팔이 단련되는 건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갖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예지의 피아노 실력은 전공을 고민했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지금은 바이올린 실력까지 갖춰 학교 관현악반과 교회의 성가대 반주 봉사까지 도맡고 있다. 바이올린은 빠르게 줄을 잡아 음을 조정해야 하는 왼손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상 예지의 왼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전 그냥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했다. 6학년이 되던 해 예지의 사연을 들은 바이올린 제작 업체에서 좌우가 바뀐 바이올린을 특별 제작해 보내줬다. 오른손으로 음을 조율하고 왼손으로 바이올린 활을 켜면 되는 것. 예지는 “나만의 바이올린이 생겼으니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예지는 학교 성적도 전교 10위권이다. 중학교 입학 당시 전교 150등 안팎이었던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현씨는 “중1 때 담임선생님이 예지를 ‘작은 영웅’이라 부르셨어요. 예지를 학급 임원으로 삼더니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게 했죠. 그때 경험이 예지에게 큰 자신감을 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현씨는 예지의 손에 얽힌 사연도 들려줬다.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남자아이들이 ‘괴물손’이라고 놀려댔었다. 예지는 울지도 않고 집에 돌아오더니 색종이로 종이학과 학알 등을 차분히 접었다. “음료수 마시고 남은 빈 유리병에 색색깔로 접은 종이학을 담아 놀렸던 애들에게 선물하더라고요. 선물을 받은 아이 집 엄마가 그걸 들고 울면서 찾아와 예지에게 사과하고 간 적이 있어요.”

예지의 꿈은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지금도 미니홈피에 자신의 장애나 학교생활에서 느낀 소소한 감정들을 칼럼 형식으로 적어 게재한다. 예지는 “저는 제 장애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끼고 생활하는 것처럼 손이 불편하면 좌우 바뀐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되는 거죠. 왼손 덕분에 생각은 깊어졌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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