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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같은 사극 속 허구, 그곳에 가면 답이 있다

▶질문 “궁녀의 인생역전, 과연 만만한 일인가?”
▶답변 “드라마 ‘동이’에서 희빈 장씨는 현재 장상궁으로 나온다. 그럴 듯한 설정이다. 상궁은 궁녀 중에서는 최고지만 정식 후궁은 아니다. 장씨는 현재 애매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숙종이 재입궁을 시킬 정도로 애정이 깊었음에도, 아직 정식 후궁이 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왕과의 성관계 즉 승은(承恩)이 궁녀에게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홈피에 ‘추노’와 ‘동이’가 뜬 까닭


…궁녀의 신분 상승에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왕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왕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과가 있어야 했다. 아이 그중에도 왕자를 낳고 볼 일이었다. 적자가 있다면 밀리겠지만, 적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궁녀로서도 한번 해볼 만한 일이었다. 조선 숙종 이후로는 유난히 적자가 드물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 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www.kostma.net) ‘역사 드라마의 사실과 허구’ 코너에 실린 MBC 드라마 ‘동이’에 관한 글이다. 3월 22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동이는 조선 21대 영조의 생모이자 19대 숙종의 후궁이었던 천민 출신 여인 숙빈 최씨의 삶과 그의 아들(영조)이 임금에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세기 중반 조선사회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이 코너에는 이 글 말고도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역사와 관련된 질문과 답변 15개가 올라있다.

‘조선시대의 CSI, 오작인은 누구인가?’
‘조선시대 검시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같은 질문에서는 드라마 주인공 동이의 아버지 직업인 ‘오작인’에 대해 설명한다. 조선시대 각 포도청에서 오작인을 두고 시체 검안을 했다는 사실을 『사법제도연혁도보』『무원록』(법의학서) 등에 나오는 자료와 함께 생생하게 소개한다. 동이의 오빠가 장악원에서 해금을 연주하는 악공으로 등장하는 것을 두고 장악원에 대한 질문과 답변(장악원은 어떤 곳이었을까? 악공은 어떻게 선발되었나?)도 등록돼 있다. 이밖에 ‘영조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비문’을 소개하거나 ‘동이는 정말 천민이었을까?’ 등의 드라마 배경에 대한 내용도 있다.

‘역사 드라마의 사실과 허구’ 코너를 만들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 연구원들. 왼쪽부터 이현주·이옥선 연구원, 김현 소장, 이주혜·안성수·권오정·김봉좌 연구원, 안승준 실장. 신동연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은 책을 펴내고, 조선왕실의 서적, 민간 고문서 등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는 멀게 느껴졌다. 이번처럼 드라마를 연결고리로 일반인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은 새로운 실험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역사이야기를 해보려는 것이다.

‘역사드라마의 사실과 허구’ 코너를 기획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 김현(51) 소장은 “드라마 작가나 PD들한테 딴죽을 걸려고 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일은 비전문가인 국민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런 시도를 계기로 거리를 좁히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허구의 이야기인데 거기에 엄격한 역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김 소장은“역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 제작자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제작자들이 자신의 드라마 내용 속 역사적 오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데 정작 이를 명확히 확인해 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 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에서 그 고민을 해결한 뒤 더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원이나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교수들의 사진과 그림을 첨부해 이해를 돕고 사람 이름이나 서적의 경우 단어를 클릭하면 그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사이트로 이동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언급된 경우 해당 실록을 클릭하면 한글로 번역된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로 이동해 원문을 읽을 수 있다.
소재는 매주 한차례 관계자들이 회의를 해서 결정한다.

4월 마지막 주 수요일(28일) 오전 10시에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 고전자료정보화연구실. 안승준(50) 실장과 이현주(41)·이주혜(31)·권오정(36)· 김봉좌(32)·이옥선(48)·안성수(37) 연구원이 모여 26, 27일 방송된 드라마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팀은 드라마 동이가 시작된 이후 매주 수요일 이런 회의를 열어 소재를 선택해왔다.

“이번 주는 사람 얘기만 나와서 아이템 잡을 게 별로 없네요.”
“그러게요. 이번 주는 그렇네요. 근데 인현왕후가 다른 드라마와는 다르게 그려지는 것 같은데 그걸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맞아요. 지금까지 드라마 속 인현왕후는 내성적이고 피해자로 그려졌는데 여기선 적극적인 사람으로 나오잖아요.”

“인현왕후라면 관련 책이나 논문도 많아서 괜찮을 것 같네요.”

한 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인현왕후의 정치적 활동과 조선시대 궁녀에 관한 내용, 두 가지가 아이템으로 결정됐다. 주제가 정해지면 필자를 선정한다. 관련 분야에 대한 책이나 논문을 찾고 전문가에게 글을 의뢰해 다음주 방송 전에 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에 올린다. 동이가 시작한 3월 말 이후 지금까지(현재 14회까지 방송) 매주 약 2개씩 글을 올리고 있다. 총 50부로 예정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역사드라마의 사실과 허구’ 코너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동이가 방송되는 월요일이나 화요일 저녁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한 경우 다시 보기 서비스로 본다. 이주혜 연구원은 “드라마를 볼 때 항상 메모하면서 보는데 드라마 내용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궁금해 할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본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드라마의 시청률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권오정 연구원은 “아무리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트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용 없어요. 드라마가 인기 있어야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도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죠”라고 했다. 3월 말부터 시작한 ‘동이, 사실과 허구’는 현재까지 16만 여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추노 서비스는 지금까지 19만 클릭
연구원들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아이템으로 선정하더라도 관련 자료가 충분치 않거나 적당한 필자가 없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사안의 경우 하나의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역사 자료를 토대로 양쪽 모두의 주장을 소개한다. 안승준 실장은 “사실 이 프로젝트가 우리 연구원들의 본래 업무가 아니다. 각자 원래 업무를 하면서 별도로 일을 더 하고 있는 거라 시간이 많이 모자라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드라마의 사실과 허구에 대해 인문학자들이 답을 하는 프로젝트는 동이가 처음이 아니다. 한국학자료센터에서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방송된 KBS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내용 중 ‘도망간 노비를 어떻게 찾았을까? 추노꾼이 정말 존재했을까? 소현세자는 독살되었을까?’ 등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주제 11가지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답을 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당시 이 서비스는 18만여 건(현재까지 19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해 화제가 됐다.

김 소장은 “추노는 역사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드라마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극의 재미를 위해 바꾸고 과장했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이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갖더라. 여기에 주목했다”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실 이 서비스는 지난해 화제가 됐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영될 때부터 생각한 것이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미실’이 과연 실존 인물인가, 정말 선덕여왕과 대결을 펼쳤나 등의 논란이 생겼다. 김 소장은 “전 국민의 관심이 미실에게 집중돼 있었는데 아무도 거기에 대해 답을 하지 않더라. 물론 정설이 확립되지 않아 딱 부러진 답은 낼 수 없지만 최소한 관련된 자료는 소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안승준 실장은 “선덕여왕은 제작 과정에서 ‘신라사학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역사학회의 도움을 기초로 제작진이 선덕여왕과 미실의 정책대결(세금문제, 대중국 외교 문제 등)이란 흥미로운 대결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덕여왕 드라마 속 역사에 대한 국민적인 호기심이 실제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드라마 종영과 함께 사라져 버리자 이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그때 추노가 방영됐다고 했다.

드라마 추노를 소재로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이를 알릴 방법이 여의치 않았다. 안승준 실장은 “사실 사람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에 잘 안 들어와요. 그래서 네이버에 함께해 보자고 제안을 했죠”라고 말했다. 그 결과 네이버 검색창에 추노나 동이를 입력하면 방송사 홈페이지 밑에 ‘사실과 허구’ 코너가 등장한다. 질문을 클릭하면 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의 답변으로 연결된다.

김현 소장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국책 연구기관에는 수많은 자료와 연구 인력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구 결과를 대중이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의 사업인 경우가 많아 일반인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됐다”며 “지금까지는 궁합이 잘 안 맞았는데 이번에는 드라마와 인터넷이 매개자가 돼 궁합을 맞출 수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콘텐트를 잘 만들어 역사를 알리려 해도 추노나 동이 같은 드라마가 없었거나 일반인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포털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란 명칭으로 1978년에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교육기관. 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학을 연구하고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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