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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리창춘 등 문혁 세대에 대북 온정파 많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하기 앞서 포옹하고 있다. 북·중의 정상들은 지난 60년간 ‘사회주의 형제국’ 인사법인 포옹으로 서로를 맞아 왔다. 중국 CCTV 촬영 AFP=연합뉴스
지난 5일 4시간30분 동안 열린 김정일(68)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68)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는 보통의 국가 대 국가 간 정상회담에선 나올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후 주석이 “내정 및 외교에서의 중대 문제와 국제·지역 정세, 국정운영 경험을 심도 있게 의사소통 해가자”며 전략적 소통 강화를 제안했고, 김 위원장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한 부분이다.

‘내정·외교 전략적 소통 강화’ 발표한 중국, 누가 김정일 감싸나

북·중 관계의 질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관점에 따라 위기에 처한 북한이 대중국 의존도를 높인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정상회담에서는 또 “양국의 선대 지도자들이 키워낸 전통적 우의 관계가 세대 교체로 인해 변화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김 위원장의 언급에 후 주석이 화답했다.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를 사실상 묵인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8일 조선중앙통신 등 언론매체를 통해 정상회담 사실을 뒤늦게 보도했다.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중 동안 한 나라가 펼칠 수 있는 외교 의전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중국의 태도는 국제사회에 “북한을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로도 해석될 정도다.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한 북한, 중국의 G2 국가 위상에 흠집을 내는 북한을 중국은 왜 감싸고 도는 걸까. 여기엔 북한과의 혈맹을 중시하는 중국 지도부의 이념성향과 북한을 안보상의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중국은 북한이 두 번째 핵실험을 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심해진 지난해 여름, 이런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확정했다고 한다. 북한을 껴안고 관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통주의의 승리다.

미국에 “北 붕괴되지 않게 관리할 것”
북한의 1, 2차 핵실험은 중국 지도부의 대북 기류를 흔들었다. 베이징의 소장 학자들은 북한 비판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선 ‘북한 독재자 김정일로 인해 중국의 대외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젊은 세대들의 여론도 확산됐다. 우리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주중 한국 대사관은 “핵실험 후 중국의 대북 정책 변화가 조심스레 감지된다”는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고위 외교 소식통은 “중국 지도부가 당시 정부 산하 연구기관, 베이징대 등에 대북 정책 검토 보고서를 내라고 지시했는데, 지나고 보니 대북 정책을 재정비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렴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전문가 사이에선 “스스로 개혁·개방하지 않는 ‘불량국가’ 북한을 계속 안고 가는 것은 중국의 부담”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붕괴는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과의 대결 완충지대(버퍼존)로 북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고 한다. 심지어 “인도·러시아 등 중국의 주변국이 모두 핵을 갖고 있는데 북한이 더 갖고 있는 게 뭐가 심각하냐”는 얘기도 나왔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 지도부는 지난해 6월 재외 공관장 회의 형식을 통해 대북 온정주의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회의에서 중국 지도부는 류사오밍(54·劉曉明) 당시 주북한 대사를 조장으로 팀을 구성해 난상 토론을 벌이도록 했다. 그 결과 북한과 혈맹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이런 결론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정해 놓은 방향이기도 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중국의 다이빙궈 국무위원(외교담당·부총리급)이 미측에도 중국의 대북 정책 방향을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관장 회의 이후 9월엔 다이빙궈 국무위원, 10월엔 원자바오 총리 등 고위급들이 잇따라 평양을 찾은 것은 ‘북·중 수교 60주년 기념 방문’을 넘어선 행보였다. 원 총리는 6·25 참전 중 사망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묘를 방문, “지금 조국은 강대하고 인민은 행복하니, 당신은 편히 잠드시오”라고 말하며 북·중 혈맹을 강조했다.

부주석시절 후는 “정상 국가 관계로”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 정치국위원 25명의 면면은 북한과의 혈맹·의리를 중시하는 대북 온정주의 인사가 대다수다. 이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40년대생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현상 유지가 동북아 안정이고, 중국 경제발전에도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해양세력(미국·일본)의 북상을 막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고, 북한 이슈는 중국의 외교 지렛대로 쓸 수 있다는 전략적 고려를 깔고 있다.

중국은 집단 지도 체제여서 정치국원 개인의 성향·입장이 정책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해 성향 분류가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중국 지도부 집단의 DNA도 분화한다. 개인적 성향은 남북한과의 인연, 정치적 성장 배경, 현재 직책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군 출신과 사상·공안 분야의 인사는 대체로 북한과의 사상적 유대·혈맹을 강조하는 쪽이다.

먼저 후진타오 국가주석. 2003년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추대된 그는 테크노크라트로 분류되지만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그(이론가)다. 전임자 장쩌민(江澤民)보다 사상성이 강하다. 정부 소식통은 “후진타오는 부주석 시절에 ‘이제 북한과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주석에 취임한 뒤엔 북한관리론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의 김위원장 영접’ 이라는 전례 없는 파격은 후 주석 체제가 들어선 이후인 2004년 시작됐다.

서열 5위의 리창춘(66) 상무위원은 선전을 총괄하는 인물. 그동안 한국과 거리를 둬왔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처음 방한해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됐고 따라서 지금은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열 9위로 공안 분야를 맡은 저우융캉(68) 당 중앙 정법위 서기는 ‘반미 성향이 강한 인물’로 분류되고 한 번도 방한하지 않았다.

장더장(64) 국무원 부총리는 북한과 인연이 깊다. 옌볜대 조선학과를 나오고 김일성대 경제학부에서 공부했다. 정치국 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어 구사가 유창하다. “아무래도 북한에 좀 더 가까울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의 얘기다. 서열 3위 원자바오(68) 총리와 서열 4위 자칭린(70) 정협 주석도 굳이 분류하자면 대북 온정론자다.

중국식 개혁·개방 대놓고 요구
중국 고위층의 시니어 그룹이 북한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면 6·25 때 맺어진 혈맹보다 문화혁명 때 중국이 북한에 진 빚을 언급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196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문혁 당시 수많은 중국인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으로 먹을 것을 찾아 흘러갔고, 북한은 이들을 내치지 않고 먹여 살렸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단둥의 고위 관계자가 젊은 시절 압록강을 건넜던 경험을 회고하며 현재의 북한 모습에 안타까워 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문혁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성장한 50대 신진세력은 다른 성향이다.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시와 저장성 당서기를 거치며 성장한 시진핑(57·서열 6위) 부주석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다. 북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후 주석의 차기 후계자로 내정된 시진핑은 그러나 당장은 중앙의 결정과 방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이 부주석이 된 뒤 첫 해외순방지로 북한을 선택했는데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공산당 내부의 조율된 결과를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서열 7위의 리커창(55) 국무원 부총리는 공청단 출신으로, 후 주석과 사상적 스펙트럼도 비슷하다.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많은 편이다. 하이난성 성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경제 마인드가 강하다. 리 부총리는 올해 처음으로 방한할 가능성이 크다. 위정성(65) 상하이 당서기는 94년 이후 네 차례나 방한했다. 왕양(55) 광둥성 당서기, 보시라이(61) 충칭시 당서기 역시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경험이 많아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평이다. 서열 2위 우방궈(69)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호방한 성격으로 중립적인 편이다. 우 위원장은 우리 정부 인사를 만나 “북한은 참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어쩌냐, 맞춰서 살아야지”라는 취지의 말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때 중국은 좀체 보기 힘든 환대를 베풀었지만 과거와 달라진 자세도 보인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대놓고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6일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이 한 예다. 원 총리는 김 위원장에게 “중국의 개방·개혁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은 개혁·개방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고, 중국은 이를 존중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북한 인사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다. 방중 일정에 개방의 상징적인 장소를 담아 그 뜻을 완곡히 전달해 왔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도 중국이 북한을 껴안고 나갈 것이지만,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젊은 세대의 대북 여론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장학자 중에는 “현대전 개념에서는 미군이 신의주에 있든, 평택에 있든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다르게 보는 논리다. 정부 당국자는 “42년생인 후진타오 시대와 50년대에 태어난 시진핑(53년생), 리커창(55년생)이 이끄는 중국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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