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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하는 44세 명문 귀족 … “보수당의 좌파”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7일(현지시간) 총선 개표 결과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한 뒤 런던의 성 스티븐스 클럽을 나오며 손을 흔들고 있다. 전체 650석 가운데 642석이 확정된 이날 오후 3시 현재 보수당은 304석을 얻어 원내 1당을 확정했다. 반면 집권 노동당은 257석에 그쳤다.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던 자유민주당은 57석을 얻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총선을 승리로 이끈 데이비드 캐머런(44)은 2005년 당수로 뽑힐 때부터 ‘보수당의 토니 블레어’로 주목받았다. ‘개혁과 변화’를 내세워 41세에 최연소 노동당 당수가 됐던 블레어처럼 39세의 젊은 나이에 당의 개혁을 부르짖으며 대표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노팅힐(캐머런이 사는 런던의 부촌)의 멋쟁이’로 불릴 만큼 서글서글한 외모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뜨거운 정치적 야심 또한 블레어를 연상케 했다.

그는 보수당이면서도 선배 보수당 당수인 마거릿 대처(85)와는 여러모로 딴판이었다. 대처가 신자유주의란 칼을 휘두르며 전형적인 우파정책을 펼친 반면 캐머런은 ‘온정적 보수주의’를 주창해 왔다. 대처가 냉정한 경쟁과 시장주의를 강조했다면 캐머런은 소외된 지역과 계층에 대한 관심을 주장했다. 그가 ‘보수당의 좌파’로 불리는 이유다.

캐머런은 2006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정권의 신보수주의에 대해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만 나누는 비현실적이고 단순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돈뿐만 아니라 국민 마음에 기쁨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국내총생산(GDP) 대신 ‘총웰빙지수(GWB)’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2001~2005년엔 진보 성향의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고정 칼럼을 연재했다. 캐머런은 70여 차례의 칼럼에서 보수당의 가치를 알리고 블레어 정권을 비판했지만 빈곤층 의료지원, 대학 보조금 확대 등 당의 노선과 다른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캐머런은 귀족 엘리트의 전형이다. 영국 왕 윌리엄 4세의 후손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먼 친척이다.

증권계 거물인 아버지와 치안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사립 명문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졸업하는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대학 졸업 후 보수당의 정치자문 역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부인 서맨서(39) 역시 귀족가문 출신으로 런던의 명품 문구점 스마이슨의 고위 간부다.

정통 귀족임에도 캐머런은 줄곧 서민적이면서 가정적인 면모를 과시해왔다. 보통의 영국인처럼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흑맥주를 즐겼다. 의사당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당수로 확정되던 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 그에게 한 기자가 “며칠이나 자전거를 더 탈 거냐”고 뼈있는 질문을 던지자 “BBC 방송이 헬리콥터를 보내주기 전까지”라며 재치있는 답을 하기도 했다.

3명의 자녀를 뒀던 그가 지난해 6세의 장남 이반을 병으로 잃은 사건은 동정표를 끌어모으는 계기가 됐다. 이반은 간질을 앓다가 지난해 2월 숨졌다. 캐머런은 이반을 고가의 사립병원이 아닌 국립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했다. 이 사건은 캐머런의 귀족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 3월 부인 서맨서의 임신 사실이 알려진 것도 도움이 됐다. 캐머런 부부의 아픔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은 서맨서의 임신 소식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당파를 떠나 국익을 우선시하는 모습도 표심을 파고들었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영국을 강타하자 캐머런은 “노동당과 친구는 아니지만 지금은 하나가 돼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노동당의 위기 대응책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비록 야당이지만) 보수당도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를 하지 않고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전망했다”며 스스로 반성하는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충형·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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