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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서울 수복 태극기 게양’ 박정모씨 별세

박정모 예비역 대령(왼쪽)은 서울 수복 직전인 1950년 9월 27일 오전 6시10분 국군으로서는 처음으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50년 당시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중앙포토]
해병 소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전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예비역 대령이 6일 오전 11시40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84세.

해병 소대장으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고인은 열이틀 만인 9월27일 오전 6시10분에 숨어있는 적의 저격 위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중앙청 옥상에 걸려있던 적의 인공기를 걷어내고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튿날 국군과 연합군은 적군을 내몰고 수도 서울을 완전히 수복했다. (9·28 서울 수복) 당시 중앙청 태극기 게양과 관련해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라는 내용의 표창장을 한국 해병대에 전달해 무공을 치하했다. 이로써 고인은 최전선에서 적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해병의 상징이 됐다.

고인은 1926년 전남 신안군 도초면의 한 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44년 일본 후쿠오카 오리오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일제의 강요로 이듬해 1월 다나베 해병단에 입대했지만 그해 8월15일 일왕의 항복방송을 듣고 부대를 탈출해 밀선을 타고 귀국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 해군에 입대한 고인은 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등의 작전에 참가하다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1월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해병 소대장으로 최전선에서 싸운 그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외에도 금곡전투와 원산상륙작전, 화천댐 탈환작전 등에서 무공을 세웠다. 52년 대위로 진급해 연대 작전장교로 전투에 참여했다.

태극기 게양 사진은 57년 재현해 찍은 것이다. [중앙포토]
61년 7월 대령으로 예편한 고인은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국방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애길 여사와 박석용 서울예술단 수석지도위원 등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301호실(02-2258-5979). 발인은 8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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