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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소감] 미당상 정현종 시인

또 하루가 가고 있습니다.

안부를 묻는다는 게 점점 더 실감 나는 시대입니다.

이 오만과 편견의 시대,정신적.물리적인 폭력과 테러의 시대,(요새 생화학무기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습니다만) 돈이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기도 하고 서서히 마비시키기도 하는 자본이라는 생화학무기와 권력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생화학무기,

그 역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기도 하고 서서히 마비시키기도 하는 그 생화학무기의 독성(毒性)으로 세상이 온통 오염되어 여지없이 천박해지고 거칠어진 오늘날, 생활의 안녕과 마음의 평화를 그리는 마음 한이 없을 수밖에 없으니, 안부를 묻는 건 습관적으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리하여 시쓰기는 사람세상과 세상사람의 안부를 묻는 행위며 시는 필경 안부를 묻는 말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공동체의 건강과 개인들의 항상 모자라는 평화와 기쁨을 위해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 사람세상의 안녕뿐만 아니라 만물의 안부도 항상 궁금합니다.

가령 내 뒤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그동안' 안녕하셨느냐고 묻듯이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때 주고받는 인사(말)가 모두 시간의/시간에 의한/시간을 위한 것이듯 세상살이의 안부를 묻는 시도 시간예술입니다.

다 아는 얘기입니다만 그것은 시의 형식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또 시간적 존재인 사람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작품을 쓰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또 문학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보자면 호머에서 서정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작품의 감동은 시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건들의 연속(이걸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에서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나 '추이'를 느낄 수 있을 때 옵니다.

그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지가 말하자면 외적 상황의 내면화며 미적 체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동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체험의 내용은 슬픔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며 무슨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특히 서정시의 힘은,옛날에도 그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정서적 응축과 직관적 통찰을 가지고 모든 걸 '노래'한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노래를 한다는 건 세상살이의 고통과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생물의 한 종인 인간의 최소한의 기쁨과 위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는 걸 뜻합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시간은 슬픔과 동의어이고 덧없음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또 제가 겪어본 바로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기관을 거쳐 국가에 이르기까지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그런 사람들 때문에 더불어 겪는 괴로움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은 역사 지향적이고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는 반면 가령 시(예술)를 쓰는 사람은 시간 지향적이고 시간의 핵심인 덧없음에 민감합니다(그리고 역사가 비교적 용서 없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학은 또한 용서의 한 형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당신들은 역사를 독점하시오, 나는 덧없음을 독점하겠습니다….

무상하지 않은 것은 무상뿐입니다.시는 덧없음에 대한 항심(恒心)입니다.그리고 덧없음으로 또는 덧없음에 점화해서 얻는 에너지가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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