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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면 정치 못해, 고통받더라도 끝까지 가겠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하루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 결정을 받은 이후 심경을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하루 3000만원이면 내가 파산한다”며 “이런 결정은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나는 심적으로 테러를 당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한나라당 조전혁(50) 의원은 4월 27일 저녁 “공포스럽다”는 말로 통화를 시작했다. 교원단체 가입 교사 명단을 인터넷이나 언론에 계속 공개하면 하루 3000만원씩 전교조에 지급하라는 법원 결정이 난 후였다. 닷새 전인 지난달 22일 인터뷰(중앙SUNDAY 4월 25일자 1,3면 163호)를 한 뒤여서 법원의 결정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조 의원은 3000만원이라는 금액이 워낙 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어떻게 할 건가.
“한 닷새 정도 참으면 돈이 다 없어질 테니까 파산을 하든지, 친구·친척의 도움을 받든지….”

-법원 결정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돈으로 압박하는 것이) 전교조가 상투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돈 없고 약한 교장, 동료 교사를 압박할 때 쓰는 방법이다. (목소리 톤이 강해지며) 굴복하면 정치를 못한다. 고통받더라도 끝까지 가겠다.”

-항소를 안 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했는데.
“남부지법의 결정은 대한민국에서 조전혁 같은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안 발의, 대정부 질의, 법률 심사만 하라는 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밝히고 해결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무다.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겠다.”

법원 결정에 첫 반응은 '공포스럽다'
조 의원은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튿날인 28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조 의원 방에 들렀다. 그는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방에는 전날 출판기념회를 한 조 의원의 저서 '한국 교육을 토론하다'라는 책이 허벅지 높이로 여러 줄 쌓여 있었다. 조 의원은 일주일 전에 비해 얼굴이 약간 부은 듯했지만 활기는 여전했다.

-교원단체 소속 명단을 못 내리겠다고 했으니 이제 어쩔 건가.
“내가 물러설 수 없게 했으니 이제 끝까지 갈 수밖에….”

-집에서 받은 문자메시지는 어쩌나.
“아내에게서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마누라의 살 권리도 중요하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늘 그랬다. 나는 사실 말을 잘하진 못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살과 뼈를 발라내겠다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지금 상태를 잘 표현한 것 같다.”

-법원이 3000만원으로 결정한 근거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거가 없다(보좌관이 가져온 결정문에는 산출 근거는 없었다).”

김효재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전혁 의원의 논리에 동의한다”며 전교조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정태근·김용태·구상찬·정두언·김효재·진수희·차명진 의원. [연합뉴스]
조 의원은 이번 가처분 결정의 재판장인 양재영(48·사시 26회)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가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할 때 내린 ‘변호사 개인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문을 내놓은 뒤 “그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당시 판결은 이번 가처분 결정과 사안이 비슷한 데도 결과는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 판결 내용을 이날 오후 공개했다.

이때 이두아(39·초선·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 들어섰다.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법원 결정문을 포함한 다른 서류를 보여 달라고 했다. 명단 공개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였다. 이 의원이 나가자 이번에는 윤석용(59·한나라당 서울 강동을) 의원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들어왔다. 윤 의원은 “고생한다. 이거라도…” 하며 봉투를 전했다.

조 의원이 판결문에조차 산정 근거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1일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 그것은 정상적 고민 끝에 나온 합리적 액수일까, 괘씸죄를 물은 과도한 채찍일까.판사 출신 김관기 변호사는 “3000만원이라는 액수는 과도하다”며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쉽게 결정한 듯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안만을 놓고 본다면 전교조 명단 공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양심적 선택의 문제”라며 “과도한 이행강제금을 부과함으로써 양심의 선택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간접강제가 가능하냐 안 하냐의 논란이 있는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라고 김 변호사는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국회에서의 공중부양 폭력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경우 벌금 한 푼 안 물었다”며 법원 결정을 비판했다. PD수첩에 대한 정정보도 판결 시 법원이 이행강제금을 매주 500만원으로 산정한 사례도 거론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부장판사 여상훈)는 지난해 6월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 보도를 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상대로 낸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MBC는 정정 및 반론보도 판결을 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MBC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일주일에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간접강제 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양재영 서울남부지법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했다. 양 부장판사는 응하지 않았다. 대신 남부지법 최의호 공보판사가 지난달 30일 그와 통화한 뒤 기자들에게 입장을 전했다.

-하루 3000만원 부과가 적절했나.
“심리적 압박을 위해 적절한 금액을 산정했다고 본다. 액수 산정 기준이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압박 수준으로 3000만원은 과다하지 않다. 조 의원이 판결문을 송달받고 바로 인터넷에서 명단을 내리면 돈을 안 내도 된다. 조 의원의 행동은 계속 법을 위반하면서 금액이 많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국회의원의 행동을 민사소송으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나.
“국회의원은 국회 내 발언에 대해 형사상 면책이 되고 민사상으로는 정상 참작이 된다. 하지만 국회 밖 행동은 사법적 재판의 대상이다. 대통령도 민사사건의 대상이 되지 않나.”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은.
“(조 의원이) 자기 이름을 알리려고 한 것 같다. 입법기관이 진짜 필요하면 입법적 조치를 통해 충분히 공개할 수 있고, 법원은 그 법률을 적용하면 된다. 그런데 현행법을 위반해 굳이 공개해야 하나.”

지지자 '하루치 3000만원 내주겠다'
양 부장판사는 수석부장으로서 본안 소송이 아니라 가처분·가압류 등 신청사건을 처리한다. 전교조가 낸 간접강제금 신청사건을 양 부장판사가 맡은 이유다. 양 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은 아니다. 지난 3월엔 ‘KBS 경영진은 기존 노조 이외에 언론노조 KBS본부와의 단체교섭에도 응해야 한다’는 취지의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노조의 손을 들어 준 바 있다.

전교조 측은 가입 교사 6만 명의 명단 공개로 인한 피해에 비해 하루 3000만원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교조는 하루 8500만원의 강제이행금을 청구했었다.
이동근 대법원 공보관은 “조 의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교조 조합원의 명단을 공개한 순간, 명단 공개를 금지한 법원 결정의 효력은 상실됐다”며 “조 의원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지금이라도 명단을 내리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의원에 대한 이행강제금이 과도한가 아닌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액수 산정은 판사의 재량이다. 사안에 따라 편차가 크다. 노동자들에게 불법 시위를 할 때마다 1인당 50만~100만원씩을 피해자에게 부과하라고 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건설사에 막대한 피해를 준 보증회사에 대해 하루 1억원을 지급하라는 간접강제 결정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행강제금의 효과는 크지만 과태료나 벌금보다 권익침해의 가능성은 더욱 높다”며 “신속한 구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원 일각에서는 조 의원이 여전히 인터넷에서 명단을 삭제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조 의원은 남부지법 재판부의 입법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는 입장이다. 조 의원은 23일 헌법재판소에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서 “전교조 등이 제기한 가처분신청 사건은 개인이 아닌 국회의원 조전혁을 상대로 한 것이고 국회의원이 국정조사권을 활용해 얻은 교원단체 명단을 공개하는 문제는 국회의원의 직무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의 직무 행위에 속하는 가처분사건에 대해 법원은 재판권이 없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따라서 법원의 소송에는 일절 응하지 않기로 했다. 조 의원을 대리하는 이재교 변호사는 “이번 가처분 결정은 형사·민사·가사·행정소송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가 기관이나 국회의원에게 사법부가 이런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결정하는 재판은 성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교조 “3일 강제집행 신청할 것”
전교조와 조 의원은 30일 남부지법으로부터 가처분사건 판결문을 송달받았다. 이에 따라 조 의원은 1일부터 매일 3000만원씩을 전교조에 지급해야 하는 채무자가 됐다. 이행강제금이 밀리면 조 의원의 부동산 압류나 채권 추심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 의원이 인터넷에서 전교조 교원 명단을 삭제하면 그때 이후의 지급 의무는 없어진다. 전교조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이르면 3일 조 의원에 대한 강제집행을 법원에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교조의 조 의원 압박에 맞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조의원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김효재·정두언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5명은 30일 조 의원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전교조 명단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정두언 의원은 “50명 이상 동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의원들의 동참을 제의했던 김효재 의원은 “학부모 입장에서 생각 안해본 사람이 없는 문제를 조전혁 의원이 혼자하고 있어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문제는 법원과 한나라당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전교조와 한나라당 의원의 문제”라며 “헌법이 보장한 공적인 조직에 가입한 걸 공개한 것이 뭐가 두렵고 부끄러워 (명단 공개를)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집단행동에 신중한 입장이다. 자칫하면 한나라당 전체가 사법부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의원도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전체가 움직이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요즘 조 의원 사무실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한다. 조 의원 보좌관은 “10통 중 9통은 후원금을 내겠다는 전화였다”며 “하루치 3000만원을 내주겠다고 한 지지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교조 명단 공개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46.4%가 명단공개에 찬성한 반면 33.6%는 반대 입장이었다. 모른다 또는 무응답자는 20%였다.

송상훈·조강수·홍주희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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