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분수대] 기업의 ‘화장발’

“난 무죄입니다!” 2006년 10월, 법정에 선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은 모든 혐의에 대해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판결 결과는 징역 24년4개월. 경제사범에 대한 역대 최고 형량이었다. 흉악범용 교도소라도 피할 수 있게 형량을 10개월만 줄여 달라고 변호사가 간청했으나 판사는 딱 잘라 거절했다. 한때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총수가 살인·강간범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스킬링이 무죄를 고집한 건 엔론이 동원한 ‘회계의 마법’이 불법과 합법 사이 회색지대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기죄로 몰려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범죄의 주요 도구는 특수목적법인이었다. 엔론은 이런 법인을 3000여 개나 세워 부실 자산을 떠넘기고 이면 거래를 일삼았다. 이들 법인과의 거래 내역을 다룬 자료가 12만 장에 달했을 지경이다. 그러니 이사들은 물론 최고재무책임자조차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원과 투자자들이 속아 넘어간 건 당연지사다. 엔론의 실상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있긴 했다. 파산 전 4∼5년간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 점이다. 회계상 많은 돈을 버는 듯 꾸몄어도 실제 발생한 이익이 없다 보니 국세청이 세금을 매길 수 없었던 거다. 이를 알아채지 못한 탓에 종업원 수만 명이 퇴직금과 일자리를 날렸고 투자자들은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봐야 했다(말콤 글래드웰,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최근 골드먼삭스 역시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묶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며 투자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단 거다. 알고 보니 정작 이 CDO를 만든 회사는 CDO 값이 떨어지는 쪽에 베팅했었단다. 이후 집값 하락으로 CDO 가치도 곤두박질치며 이 회사는 큰돈을 벌었다. 골드먼삭스도 수수료를 쏠쏠히 챙긴 반면 애꿎은 투자자들만 쪽박을 찼다. 하지만 e-메일 등 관련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골드먼삭스는 억울하단 입장이다. 27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도 무죄란 논리를 펼칠 거라고 한다. 엔론 사태와 꼭 닮은꼴이다.



기업들이 맘먹고 감추려 들면 잘 모르는 이들은 속기 십상이다. 변장에 가까운 화장술 때문에 여자의 민얼굴을 짐작도 못하는 남자들처럼 말이다. 범죄로 입증하기도 쉽지 않으니 딱한 노릇이다. 짙은 ‘화장발’을 꿰뚫어볼 매 같은 눈이 필요한 이유다.



신예리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