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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넓은문, 한국은 좁은문 … 실력 비슷해도 ‘역차별’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 투어프로들 ‘One 아시아 투어’ 보이콧 나선 까닭

양용은이 23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장에서 열린 유럽-한국프로골프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 2라운드 1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서귀포=연합뉴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요.”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이 벌어지고 있는 23일 제주 핀크스 골프장, 중견 골퍼 모중경은 깊숙이 들이마셨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발렌타인 챔피언십은 총상금이 220만 유로(약 38억원)의 국내 최대 경기다. 우승 상금은 5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국내 투어 상금왕인 배상문이 1년 동안 번 상금(5억5000만원)보다 많다. 그런데 이 커다란 축제를 앞두고도 국내 선수들은 전혀 기쁘지 않다.



한국 프로 골퍼들은 5월 초 열릴 예정인 GS칼텍스 매경 오픈 보이콧 선언을 했다. 매경 오픈도 상금 8억원이 걸린 큰 대회다. 전통도 깊다. 그런데 선수들은 절대 안 나가겠다고 서명을 했다. 선수회 박도규 회장은 “보이콧 서약을 어길 경우 5년간 자격정지를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수들의 태도가 강경하다”고 말했다.



골프 초창기에도 프로들의 집단 보이콧이 있었다. 19세기 스코틀랜드에서 프로는 부자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고 골프 용품을 팔며 골프 코스를 관리하는 사람들이었다. VIP를 위해 캐디가 되기도 했다.



1860년 첫 오픈 챔피언십에는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온 프로 8명이 참가했다. 그들이 모인 가장 큰 이유는 골프 실력을 겨루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회 다음 날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캐디피를 벌어보려는 생각이었다. 명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아마추어 골퍼는 명예를 중시하고 프로는 돈을 위해 경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아마추어 골퍼는 정직한 젠틀맨으로, 프로들은 스코어를 속이기도 하는 믿지 못할 사람들로 여겨졌다. 실제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오픈 챔피언십에서는 프로 선수들에게만 스코어를 기록하는 감시자가 따라붙었다.



타이거 우즈와 잭 니클라우스의 선조뻘 되는 최초의 프로 골퍼 톰 모리스도 수모 속에서 살았다. 그는 캐디를 할 때 티잉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신사의 공을 올려줬다. 파 3홀에서는 공에 침을 묻히고 모래를 살짝 얹었다. 그린에서 스핀이 잘 걸리게 하려는 이유였다. 행실이 좋지 않은 프로는 아마추어 골퍼에게 얻어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골프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공을 잘 치는 프로 골퍼는 일종의 스타가 돼갔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픈 초대 챔피언인 윌리 파크는 동료들을 모아 놓고 파업을 주창했다.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골프 돈은 다른 사람들이 챙긴다”는 논리였다. 당시 골프 대회에는 커다란 내기 돈이 걸렸다. 주인공으로 뛰는 선수들이 얻는 몫은 거의 없었다. 최고의 골퍼들이 파업을 하면 그 산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파업 투쟁에서 이겼다.



국내 투어 프로들이 보이콧을 일으킨 발단은 원아시아(One Asia)투어다. “아시아 각국의 투어를 연합해 PGA 투어나 유러피언 투어에 대항할 수 있는 커다란 투어를 만들겠다”고 나선 신설 단체다. 이미 이를 표방한 단체 아시안 투어가 있었다.



그런데 원아시아 투어는 출범을 강행했다. 원아시아 투어 창립을 주도한 대한골프협회 김동욱 부회장이 밝힌 명분은 이렇다. “아시안 투어는 유러피언 투어에 종속적 성격이 있으며 알맹이는 남아공이나 유럽 선수들이 차지한 껍데기만 아시안 투어다. 또 스폰서와 팬들이 중요한데 선수들이 투어를 장악해 수익금 등을 전부 가져가는 문제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그래서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 선수들이 주인으로 활동하고 수익금도 각국 협회를 통해 아시아 골프 발전에 쓰이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원아시아 투어를 발족시켰다”고 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의 영국골프박물관에 있는 19세기 프로 골퍼의 밀랍 모형.
원아시아 투어는 한국과 호주, 중국 골프협회가 주도했다. 호주와 중국은 새로운 투어가 절실했다. 호주는 뛰어난 선수가 많지만 경기 침체로 대회가 거의 없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 때문에 큰 대회가 몇 개 열리고 있었지만 중국 선수들의 경기력은 매우 낮다. 자국에서 하는 대회인데 실력 순으로 출전하게 되니 나갈 수도 없었다. 남의 잔칫상만 차려준 꼴이었다. 호주는 대회, 중국은 출전권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애매했다. KGT(한국프로골프투어, 옛 KPGA)는 “국내 투어에서는 원아시아 투어 발족을 환영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원아시아 투어로 인해 한국 선수들이 중국에서 열리는 큰 대회에 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참가 선수 수는 한정돼 있다. 아시안 투어 Q스쿨을 통해서도 나갈 수 있다. 반면 원아시아 투어로 인해 국내 투어는 2부 투어로 밀릴 위험이 있다.



처음에 선수들은 좋아했다. 상금이 많은 커다란 대회를 열어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원아시아 투어는 새로운 대회를 만들지 못했다. 대신 기존 대회를 끌어갔다. 매경 오픈이 올해 원아시아 투어로 옮겼다. SK텔레콤 오픈도 그랬다. SBS가 공중파에서 중계를 해주겠다는 말에 스폰서들은 나쁠 게 없다고 봤다.



그러나 지난해 원아시아 투어 대회로 열렸던 한국오픈의 스폰서 코오롱은 올해 원아시아 투어 대회에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 코오롱은 “중국 선수들이 많이 나왔는데 실력이 낮아 대회 수준까지 떨어졌다.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아시아 투어는 “아시아 선수가 주인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창설의 명분이다. 그래서 출전 자격이 특이하다. 세계 랭킹 250위 이내의 아시아, 호주 선수 20명이 1순위다. 그다음 한국과 호주, 중국 투어 선수들 22명씩이다. 진입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수준 높은 투어가 되려면 최고 선수를 끌어 모아야 하는데 이 원칙에도 맞지 않다. 물론 이러한 보호무역은 역내 선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호주와 중국 선수에겐 그렇다. 한국은 ‘글쎄’다.



중국 청두에서 열린 원아시아 투어 대회에서 이 현상은 극명하게 나타났다. 모중경은 “한국과 중국 선수는 적고 호주 선수는 76명이 나왔다. 원아시아 투어가 아니라 호주 투어였다”고 말했다. 세계 랭킹 250위 이내의 아시아 선수는 거의 호주 선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호주에 비해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국내 대회에 나간 선수들이 월드 랭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아시아 투어에서 한국은 골프 수준이 낮은 중국과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된다.



선수회 박도규 회장은 “국내에서 열리는 원아시아 투어는 국내 출전권을 빼앗아 호주와 중국 선수에게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원아시아 투어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불리한 출전 선수 조항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매경 오픈은 선수들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국내 출전 선수 수를 70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선수들은 임시변통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 원아시아 투어가 국내 투어를 잠식하게 된다. 몇 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국내 투어를 살리기 위해 보이콧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출전 선수 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원아시아 투어는 본질적으로 프로 선수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코틀랜드 프로들의 파업 이후 프로의 권익은 조금씩 증대됐다. 1901년 영국에서 그들의 모임(PGA)이 생겼다. 20세기 초 월터 헤이건은 대회 보이콧을 무기로 프로의 클럽 하우스 정문 입장과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이전까지 프로는 클럽 후문으로 입장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먹었다. 대회 때도 그랬다.



60년대 빅 스타인 아널드 파머를 통해 선수는 골프의 주인이 됐다. 현재 투어 프로들은 레슨 프로들이 포함된 모임에서 독립해 투어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 아시안 투어까지 선수(투어 프로)가 골프 대회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이 돈도 벌고 있는 것이다.



충돌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원아시아 투어는 골프 협회가 투어의 주체로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은 선수들 쪽이다.



제주=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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