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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자존심 내세워 힘 대결 할 때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시아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지 않고 ‘국지전’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전략적 선택 덕분이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무장해제시키는 대신 일본 영토에 대규모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이었다. 일본의 군사적 재부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국가인 중국과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또 남한에도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재남침 시도를 미연에 방지하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완충지대를 구축했다.

그 결과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폐허 위에서 눈부신 속도로 경제재건을 이룩할 수 있었다. 세계 2위의 경제력과 다자외교를 통하여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재부상했다. 한국 역시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에서 과감하게 국방예산을 삭감하고 경제발전의 길로 매진했다.

정상화를 통해 베트남전쟁에서 발을 빼는 한편 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구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는 유익했다. 국내적으로는 문화대혁명으로 대표되는 정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개혁·개방 노선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중국·일본은 모두 미국이 제공해 주는 안보환경 덕분에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경제력 신장에 성공한 세 나라가 모두 기존의 안보환경에 불만을 갖고 자체적인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오랜 경제침체와 중국의 부상으로 손상된 자존심을 군사력 확장을 통해 만회하
고자 하고 있다. 군비 확장을 발판으로 ‘정상국가’로 변신하고 대등한 미·일 동맹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도 결국은 미국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새로운 강대국인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얘기다. 중국은 낙후된 군사력을 현대화하고 대만의 분리독립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국방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춘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별다른 안보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G2(미국·중국)의 상대국인 미국에 견줄 만한 군사력을 갖추겠다는 자존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의 전환을 통해서 미국과 대등한 동맹관계를 수립하고 자주국방의 틀을 갖추겠다고 한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동북아의 ‘패권국’인 미국에 안보를 의존했지만 비대칭적인 동맹의 틀을 깨고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한·중·일 3국은 모두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인 국가들이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에는 정규군이 없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승한 한국은 여전히 전시작전권을 미군에 부여하고 있다. 바야흐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의 군사력 역시 수적으로는 막강하지만 전략과 첨단 장비 등에 있어서는 열악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나라들이 자체적인 국방력을 갖추려는 것은 국가 자존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여 있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북아 전체의 전략적 구도를 봤을 때 이는 심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강성한 중국·일본 사이에서 쓰라린 역사를 경험했던 한국으로서는 특히 그렇다. 중국과 일본이 모두 경제력과 군사력을 겸비한 ‘정상국가’로 부상하게 된다면 한국의 안보 상황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동북아시아 안보공동체를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국가안보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에 앞서 현실의 문제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한·중·일 3국이 국가적 자존심을 버리고 국방보다 경제에 주력한 결과 얻어낸 값진 열매다. 아직까지 냉전의 잔재인 북한이 버티고 있고 지역안보를 책임질 안보공동체도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다른 나라에 대한 섣부른 자존심을 앞세우다간 한·중·일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동북아 3국의 성숙한 국민의식과 지혜로운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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