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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완소남 유감

하늘, 해, 달, 바람, 꽃 등을 부를 때마다 저런 좋은 말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감탄하게 된다. 사랑이 러브(Love)가 되고 사람은 인(人)이 된다. 그 차이에서 까마득한 시간과 공간이 느껴지고 인간의 영혼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요즘에도 말은 계속 만들어진다. ‘할리우드 액션’이란 말을 처음 접하고 나도 모르게 흐흐흐 웃은 기억이 있다. 상대가 치지도 않았는데 쓰러지는 축구 선수의 이미지를 이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빙상경기 쇼트트랙에서 손을 번쩍 들며 놀란 척하던 오노의 액션에 우리는 저마다 옐로 카드를 줬다. 지난겨울 미국의 폭설 사태 때 등장했던 ‘스노마겟돈’은 눈(snow)과 아마겟돈의 이미지를 섞은 근사한 배합이었다. ‘affluenza(부자병)’란 단어가 새로 사전에 올랐다는 기사를 본다. 부유함(affluence)에 대한 열망과 과시가 인플루엔자처럼 번지는 세상의 단면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신조어다.



중국에서 새로 나온 ‘하이누(孩奴)’란 말은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선 어떤 말보다 발군이다. 아이(孩) 옆에 붙은 노예(奴)라는 한 글자가 허리 휘도록 자식 교육에 몸바치는 우리네 현실, 그리고 삶의 의미마저 돌아보게 만든다.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울하다. 품절남, 까칠녀, 돌싱, 완소남, 엄친아, 신상녀, 된장녀, 완판녀…. 영화 배우 장동건은 임자가 생겼으니 품절남이고 피겨 여왕 김연아는 관련 상품이 뭐든 다 팔리니 완판녀란다. 지식사회가 말 만들기를 외면하고 있는 사이, 세종대왕이 울고 갈 신조어가 판을 치고 있다. 완소남은 방송은 물론이고 일반인의 입에서도 수시로 들을 정도로 시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한데 완전 소중한 남자란 게 문법에는 맞는 것일까. 완전 맛이 간 남자라면 몰라도 완전 소중한 남자는 어법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상관없다, 내 맘이다 식의 이런 신조어들이 왜 성행하는지 어떤 문화현상인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알 길은 없다. 다만 이들의 생산자와 주소비자가 혹 한문을 배우지 않은 세대, 또는 한문과 멀어진 세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든다. 언젠가 초등학생에 대한 한문교육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놓고 한글 단체들이 “어린이들에게 한자의 멍에를 다시 씌우려는 반(反)역사적 행위”라고 비난했던 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 시대에 그런 주장은 참 덧없다. 완소남이나 신상녀를 되뇌다 보면 차라리 학생들에게 한문의 멍에를 씌우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번역어 성립사정』(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해영 옮김, 일빛)이란 책을 보면 개화기 일본이 소사이어티(Society)란 영어를 사회(社會)로 번역하기까지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모색을 거쳤는지 보여준다. 개인, 근대, 존재, 자유 등도 다 어렵게 만들어졌다. 우리 사회는 말 만들기에 무심한 듯 보인다. 점점 아름답지 않은 쪽으로 변해가는 한국 말을 모른 체하고 때로는 슬그머니 갖다 쓴다. ‘갓길’이란 말을 만들 때처럼 우리도 좋은 말을 위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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