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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96> 투표용지 변천사

다가오는 6·2 지방선거에선 8장의 투표용지를 씁니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교육감, 교육위원을 뽑기 때문이지요. 다른 나라의 투표용지는 어떨까요. 문맹률이 높은 인도는 투표기에 후보자와 정당을 상징하는 연꽃·코끼리·화살·칼과 방패 등을 그려 넣고 단추(번호)를 누르게 한다네요. 미국에선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으면 미키마우스 얼굴을 투표용지에 그리는 일도 있답니다. 투표용지의 변천사를 살펴봤습니다.

백일현 기자

1960년 참의원 선거 땐 막대 28개 그려넣어

1960년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투표용지. 후보의 기호를 1, 2, 3 같은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로 표기한 게 이색적이다. 당시만 해도 문맹률이 높다 보니 후보를 식별하기 위해 막대 개수로 숫자를 대신했다. 28번 후보의 경우 막대를 28개 그려넣었다. [중앙선관위 제공]
한국에서 최초의 선거는 1948년 5월10일 치러졌습니다. 4·3 사건이 발생한 제주도 2개 구를 제외한 전국 198개 선거구에서 의원 198명을 뽑아 헌정 사상 최초의 제헌국회가 구성됐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적 의미가 큰 ‘제헌의회 투표용지’는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림 1(사진 위), 그림 2(사진 아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투표용지는 60년 정·부통령 선거에 쓴 용지(그림1, 2)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유령 유권자 조작, 3~5인조 공개 투표, 야당 참관인 쫓아내기 등 이른바 ‘3·15 부정선거’로 유명했지요. 기호를 1, 2, 3 대신 막대 하나, 막대 둘, 막대 셋으로 표기하고 이름도 세로쓰기로 한자와 한글을 같이 썼습니다. 막대 기호는 아라비아숫자를 모르는 문맹 유권자가 후보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해방 직후 80%에 이르던 문맹률은 시간이 지나며 급감하긴 했지만 60년 전후에도 4~5%는 됐기 때문입니다. 60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는 후보가 28명이다 보니 막대기를 28개나 그려 넣었습니다.

아라비아 숫자 사용은 1971년 대선 때부터

그림 3, 그림 4, 그림 5, 그림 6(사진 위부터 순서대로)
오늘날처럼 아라비아숫자를 사용한 투표용지는 제7대 대통령선거(71년 4월 27일) 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존에는 실패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아라비아숫자 투표용지는 71년 5월 25일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용지(그림3)입니다. 이름뿐 아니라 정당명까지 한글과 한자를 같이 명기했습니다. 특히 87년 제13대 대선 투표용지(그림4)에는 1번 민주정의당 노태우, 2번 통일민주당 김영삼, 3번 평화민주당 김대중, 4번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등 향후 권력을 쥐는 3명의 대통령과 1명의 총리가 나란히 표기돼 있습니다.

단순한 투표용지도 있습니다. 80년 10월 22일 치러진 제5차 국민투표(그림5), 87년 10월 27일 치러진 제6차 국민투표용지(그림6)가 대표적입니다. 왼쪽엔 ‘X’ 표시와 ‘반대’ 글자가, 오른쪽엔 ‘O’ 표시와 ‘찬성’ 글자가 담겨 유사합니다. 투표 결과 찬성률도 각각 91.6%, 93.1%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투표용지는 각각 ‘선거인단이 간선제 대통령을 뽑는 내용을 담은 전두환 신군부의 제5공화국 헌법’ ‘6월 민주항쟁의 결실로 인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담은 제6공화국 헌법’ 등 성격이 판이한 헌법을 개정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1993년부터 가로쓰기, 투표용지 세로로 길어져

그림 7
한글만 사용하는 투표용지는 최근에야 도입됐습니다. 91년 구·시·군의회 의원선거 용지(그림7)가 최초입니다. 한글·한자 병용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가 영향을 미쳤지요. 비록 이듬해인 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전처럼 국문과 한문을 병기했지만 그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는 한글만 사용하게 됐습니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뀐 문화는 투표용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에는 이름을 세로쓰기로 하다 보니 투표용지도 가로로 길었습니다. 하지만 93년 14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가로쓰기 결과 처음으로 투표용지가 세로로 길어졌습니다. 전국 단위 선거로는 95년 6월 27일 치러진 제1회 동시 지방선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세로로 긴 투표용지를 쓰고 있습니다.

2003년 계룡시의원 선거엔 32명 출마 … 용지 길이 57.5cm

그림 8
2003년 치러진 초대 계룡시의회 의원선거 때 일입니다. 한 선거구인 계룡시 두마면에서 4명을 뽑는 선거에 후보는 무려 32명에 달했습니다(그림8). 투표용지 길이만 57.5㎝였습니다. 당시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기호와 이름을 찾아 정확히 찍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올해 6·2지방선거는 역대 선거 사상 가장 많은 8장의 투표용지가 배포된다는 점 외에 교육감 투표용지에 아라비아숫자가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동안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은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받았는데 1, 2번을 받은 후보가 대부분 당선되는 폐해가 있었습니다. 1번은 여당, 2번은 야당 등 숫자가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데다 후보를 잘 모르는 유권자들이 앞 번호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회는 올 2월 법을 개정해 1, 2 같은 아라비아숫자를 쓰지 않는 대신 투표지에 오를 후보의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문맹이 퇴치되면서 71년부터 나타난 아라비아숫자 투표용지를 이번에는 다른 이유 때문에 안 쓰는 셈입니다.



달라진 기표용구
붓대·탄피서 만년기표봉으로


“기표용구는 구멍이 크고 확실한 붓대, 탄피 등을 쓰되 필터, 솜 등으로 막히어 무효표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

1967년 6월 8일 치러진 제7대 총선거에서 기표용구로 사용된 탄피와 붓대롱. 표준화된 기표용구는 85년에야 등장한다. [중앙선관위 제공]
1967년 5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해 6·8총선에 대비해 각급 선관위에 지시한 내용입니다. 이처럼 초기 한국 선거에서는 대나무로 된 붓대롱이나 탄피 등 ‘O’ 모양을 찍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했습니다. 70년대에 이르면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볼펜이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볼펜·붓대롱 등 사용하는 도구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기표용구가 사용되기 시작한 건 85년입니다. 이때도 기표 용구에 찍힌 모양은 ‘O’로 유지, 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92년까지 지속됐습니다. 하지만 가끔 투표용지를 접는 과정에서 인주가 다른 쪽에 묻는 경우가 생겨 이중 표기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에 92년 제14대 대선부터 ‘O’안에 ‘人(인)‘을 넣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人’자도 대칭을 이루는 만큼 이것만으로는 역시 실제 찍은 것과 인주가 묻은 것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人’자가 14대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의 ‘삼’자를 연상시킨다”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그 결과 94년부터 O안에 ‘卜(복)’자가 들어가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종이가 접히더라도 어느 쪽이 실제 찍은 건지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2005년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주 없이 찍을 수 있는 ‘만년기표봉’이 도입됐습니다.

투표함도 목재·철재·알루미늄을 거쳐 플라스틱으로 재질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무게를 줄이고 옮기기 쉽게 한 것입니다. 특히 투표함 색상은 예전에는 한 가지뿐이었지만 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부터 4종의 색상이 등장했습니다.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등 직접 선출해야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헷갈리지 않도록 투표용지 색상과 투표함 색상을 맞춘 겁니다. 올해 6·2지방선거에서는 8장 투표용지의 색상과 크기를 각각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투표용지와 기표용구·투표함을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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