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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26) 율구합(栗逑蛤·성게)

큰 것은 지름이 서너 치 정도다. 고슴도치 같은 털 가운데 밤송이 같은 껍질이 있다. 알은 응고되지 않은 쇠기름 같고 색은 노랗다. 껍질은 검고 무르고 연해 부서지기 쉽다. 맛은 달다. 날로 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먹기도 한다. (중간 생략)



강장제라는데, 어제 열 개 먹은 사람이 달라 보였다



성게 알이 가장 많이 차오를 때가 음력 2월부터 3월까지다.



성게도 종류가 많다. 말똥성게(왼쪽)와 보라성게.
큰 사리가 되면 바닷물이 한정없이 물러나면서 오랫동안 잠겨 있던 땅이 검푸르게 드러난다. TV 채널마다 모세의 기적이네 뭐네 호들갑을 떨어댄다. 해마다 나타나는 자연현상을 왜 기적이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야흐로 갯것을 시작하는 시기다.



바닷가 돌을 뒤져보면 성게·군소·해삼·오분자기 따위가 눈에 띈다. 한두 시간이면 며칠 반찬거리는 충분하다. 깐깐한 어촌계나 해녀도 이 시기는 눈감아 준다. 단 이런 저런 종패(어린 패류: 농사로 치면 씨앗 역할이다. 전복을 뿌려놓는 경우가 많다) 뿌린 곳은 피한다.



맛이야 다들 한가닥씩 하지만 고소하기는 성게가 으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검은색에 긴 가시가 있는 게 보라성게이고, 진갈색에 짧은 가시가 있는 것은 말똥성게(『자산어보』에는 승률구(僧栗毬)로 나온다)다. 보라성게가 덩치가 커서 먹을 게 많을 것 같지만 말똥성게가 잡기도 쉽고 맛도 더 좋다.



칼로 자르면 내장 사이에 노란 알이 보인다. 생식소이다. 젓가락 끝 부분이나 작은 티스푼으로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우선 혀끝에 대고 음미를 하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그 정도만 되어도 허리 굽혀 돌 뒤집은 보람이 난다. 이 녀석을 주식으로 하는 돌돔의 습성도 이해가 된다.



뜨거운 밥에 계란 노른자랑 비벼먹으면 일품이다. 국을 끓여먹기도 한다. 제주에는 ‘구살국(성게국)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마을은 ‘밤살’이라고 부른다. 한의에서는 성게를 ‘바다에서 나는 쓸개’로 보아 남자들의 강장제로 주로 썼단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마을 어떤 사내, 지난밤 이거 열 개 정도 먹었는데 오늘 아침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알은 소금물에 담그면 단단해진다.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것은 명반 녹인 물에 담가둔 것이기 쉽다. 때깔이 좋아지고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삶아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알을 파내기가 쉽다. 기름진 날것 때문에 간혹 생기는 배탈 염려도 없어진다.



가을에도 알이 차기는 하는데 지금 철만 못하다. 우선 두어 개 깨보고 알이 차있지 않으면 잡지 않는 게 좋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그런데 『자산어보』에는 말똥성게에 대해 이렇게 덧붙여져 있다.



밤송이 조개에 비해 털이 짧고 가늘고 빛깔은 노랗다는 게 다르다. 창대(昌大: 장덕순이라는 사람으로 손암 정약전 선생에게 흑산도 물산에 대해 도움말을 준 이) 말에 의하면 지난달 이 조개를 보았는데 입 속에서 새가 나왔다고 한다. 머리와 부리가 이미 형성돼 있었으며 머리에 이끼 같은 털이 달려 있었다. 죽은 것인가 해서 만져보니 움직이는 것이 평일과 다를 바 없었다. 껍질 속의 모양은 보지 않았으나 이것이 변해 파랑새가 된 것이다. 새로 변한다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율구조(栗逑鳥)가 이것이라고 한다.



오호라, 파랑새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었구나. 그 예쁘고 귀하고 상서롭다는 새의 본적이 성게 뱃속이었다니. 비과학적이라고? 손암 선생은 갯장어에 대한 설명 중에도 ‘보통 석굴 같은 데서 무리지어 뱀으로 변한다고 하나 아직 확인해보지는 못했다’고 하신 바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물고기는 대략 2만5000종이다. 매년 100여 종이 새롭게 발견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을 것이며 내일 당장 입이 떡 벌어질 기상천외한 종(種)이 나타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실사구시의 실학자가 이런 인용을 했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성게는 바닷속 바닥을 기어다닌다. 성게 입장에서 보면 저 위에서 물결을 타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새다. 날치가 허공을 꿈꾸듯, 그들도 이륙을 인생 목표로 삼았으리라. 수백 개의 다리를 가지고도 시속 2m 이동 속도가 괴로웠으리라. 애벌레가 꿈틀꿈틀 쉬지 않고 나뭇가지를 오르는 것은 창공으로의 비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파랑새로 변하는 성게. 그래, 날치를 처음 보았을 때, 새는 원래 물고기고 물고기는 처음에 새였다고 생각한 내 판단은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어렸을 때부터 숱하고 보고 먹었지만 한 번도 파랑새로 변하는 것을 못 보았던 것은 단지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이다.



음력 1일이나 15일이 사리다. 이때 바닷가로 가보면 이 비밀스러운 변신의 현장을 볼지도 모른다.



소설가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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