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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생태계 변해야 미래 있다 ① 지적재산권 제값 받아야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선진국을 허겁지겁 쫓아가기에 바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돈 들어갈 데도 많은데 투자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기초과학 투자에 큰돈을 쏟아부을 여력과 참을성이 부족했다. 이렇다 보니 원천기술을 차근차근 개발하기보다는 응용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 가시적 성과를 빨리 내는 연구자가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하나를 연구해도 그럴듯한 걸 오래 붙잡고 있기보다 논문이든 특허든 건수를 많이 올리는 것이 선호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특허 개발 교수 몫은 쥐꼬리 … 큰 열매는 기업이 따 간다

이제 21세기도 10년이 지났다. 과학기술 연구의 패러다임을 쇄신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 먼 길이다. 과학계 안팎에서 거론되는 시급한 과제 세 가지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KAIST와 경희대·연세대 등 주요 대학들이 연구 성과물인 특허 소유권을 놓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업들과 지난해부터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업에 더 이상 특허권을 쉽사리 넘겨주지 않겠다고 반기를 든 것이다. 발명가로서 응분의 권리를 찾기 위해 기업에 특허를 넘기더라도 제값을 받자는 이야기다.



이런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지금도 연구자들이 기업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경우 특허 소유권을 기업에 허용하는 풍토가 당연시된다. 설사 특허료를 지불한다 해도 헐값이란 느낌이 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세대 홍대식 연구처장은 “이는 특허의 값어치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떨어뜨리고 과학기술 종사자들의 연구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에서 수주한 연구비는 그런 마찰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정부 과제에 기업이 일정 역할을 하거나, 기업이 단독 발주한 과제는 특허소유권 갈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허 주인을 제대로 찾아줘야 작금의 국제 특허전쟁에 임할 토양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목소리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산학협력백서(2009년도 판)에 따르면 국내 146개 대학이 등록한 특허는 2003년 926건, 2006년 2973건, 2008년 3801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 중 연구비 보조 등으로 기업과 얽혀있는 특허는 대학별로 10~30%로 추산된다.



◆불공정 실태=서남표 KAIST 총장은 “특허소유권을 요구하는 기업한테는 연구비를 받지 않겠다”고 2008년 2월 선언했다. 연간 200~300건에 달하는 기업 발주 연구과제의 특허권을 상당수 기업이 가져간 관행에 불만을 표한 것이다. 발명자인 교수와 연구시설을 제공한 대학 입장에서 길게 봐 남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 기업과 계약하는 연구과제 중 KAIST가 특허를 갖는 경우가 늘었다. 그러나 돈을 대는 쪽의 발언권은 여전히 세다. 2008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계약한 기업 과제 중 특허가 나온 287건을 보니 86건은 KAIST가, 53건은 기업이, 148건은 절반씩 특허권을 가져갔다.



경희대와 연세대도 기업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더라도 특허소유권을 해당 기업이 다 가져가는 건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입장을 지난해 세웠다. 종전에는 KAIST처럼 대다수 특허권을 기업에 줬다. 경희대 황주호 연구처장은 “어떤 기업은 돈을 댄 연구의 특허권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다른 교수의 유사기술 특허를 포괄적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전했다. 지적재산권 관리에 소홀한 대학의 경우 이런 불평등계약을 맺는 일이 적잖다. 이 때문에 발명자도 모르게 특허가 기업에 넘어가는 일도 많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의 나성곤 변리사는 “대학과 기업이 특허를 공동 소유할 경우라도 상당수는 계약 조건이 교묘해 기업이 실질적 소유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비를 댄 대가로 특허를 가져가려는 것은 민간기업뿐 아니라 일부 공기업도 가세한다. 황주호 교수는 현재 한 공기업이 끈질기게 특허를 넘겨 달라고 요구해 밀고당기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뿐 아니라 정부출연연구소 사정도 비슷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지난해 어느 대기업과 한 연구계약을 보자. 특허가 나와 그 회사가 사 가게 되면 건당 1000만~2000만원이었다. 아무리 많아도 2억원을 넘지 않는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가 있었다. 대학이나 연구소가 불평등 계약을 감수하고 기업과 손잡는 건 연구비가 아쉽기 때문이다. 연구비를 얼마나 따오느냐가 연구자 개인과 기관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업계는 금전적 투자를 한 쪽에서 특허 과실을 많이 차지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의료소재 업체인 엠아이텍의 김철수 사장은 “기업에 소속된 연구원들이 특허를 받으면 그 소유권이 기업에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교수나 연구원들에게 급여 대신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미국 스탠퍼드대학이나 MIT 등 첨단 과학기술로 유명한 선진 대학에서는 이런 관행이 거의 없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 대학에 연구 과제를 줄 때는 특허권을 통째로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비를 대준 기업이라도 해당 특허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대학마다 내규를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기업은 대학에서 특허의 소유권 대신 이를 활용하는 실시권을 받는 것이 미국의 일반적 관행이다.



◆영향과 대책=기업들이 특허를 싼값에 취득할 수 있다면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지만 불이익이 부메랑처럼 되돌아가기도 한다. 과학기술자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앙갚음으로 핵심 기술을 교묘히 빼놓고 전해준다. 국가적으로도 ‘특허괴물’로 불리는 해외 특허매집 전문업체들에 먹잇감을 제공하는 꼴이 되기도 한다. 이들 역시 헐값이지만 국내 기업보다는 후한 값을 쳐줘 될성부른 특허를 싹쓸이한다. 이는 나중에 국내 기업이 해당 기술을 활용해 물건을 만들 때 소송을 걸어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매집 대상은 특허나 비즈니스모델(BM)에서부터 아이디어 차원의 것까지 다양하다.



교과부의 김영식 과학기술정책실장은 “특허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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