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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카틴의 비운과 천안함의 비극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온 시커먼 화산재 구름이 유럽의 하늘을 뒤덮었던 지난 일요일(18일). 폴란드의 고도(古都) 크라코프에서는 ‘세기(世紀)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80여 개국에서 온 조문사절단과 30만 명의 추모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의 유해가 바벨성(城) 성당 지하묘소에 안치됐다. 바벨성 주변은 열흘 전 불의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카친스키 대통령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는 조화(弔花)와 촛불의 바다로 변했다.

영국에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있고, 프랑스에 팡테옹이 있다면 폴란드에는 바벨성 성당이 있다. ‘영웅들의 안식처’다. 바벨성 성당 지하묘소는 옛 폴란드 왕국의 역대 국왕들과 국가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망명정부의 수반이었던 블라디슬라드 시코르시키 장군, 폴란드 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독립 영웅 요제프 필수드스키의 유해가 이곳에 묻혀 있다. 카친스키는 바벨성 성당 지하묘소에 안장된 폴란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재임 중 카친스키는 논란이 많은 대통령이었다. 소속 정당이 다른 총리와 사사건건 부닥쳤다. 죽기 직전 지지율은 20%대에 불과했다. 1989년 폴란드의 탈(脫)공산 민주화 이후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이 모든 논란을 일거에 잠재우면서 그는 폴란드의 영웅으로 부활했다. 죽음 앞에서 관대해지는 인간의 보편적 성정(性情) 탓일까.

[일러스트=강일구]
폴란드 출신으로, 부다페스트 소재 중부유럽대학 교수인 빅토르 오시아틴스키 박사는 “(카친스키 대통령이 죽어서 영웅이 된 것은) 죽은 장소 때문이지 업적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폴란드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카틴 숲에서 죽었기 때문일 뿐, 치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카틴 숲 대학살’ 70주년 추모행사 참석을 위해 전용기 편으로 현지를 찾았던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 96명은 관제탑의 회항 권유를 무시한 채 짙은 안개를 뚫고 무리하게 착륙을 강행하다 전원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소련과 나치 독일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일명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1939년 9월 폴란드를 동·서로 분할 점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이듬해 3월, 소련 비밀경찰은 전쟁포로로 잡혔거나 임의로 체포한 폴란드인 2만5700명에 대한 처형 계획을 수립, 스탈린의 승인을 받았다. 8000여 명의 군 장교를 비롯, 대학교수·의사·변호사·엔지니어·언론인·작가·교사 등 지식인이 대부분이었다. 군 간부와 인텔리의 씨를 말림으로써 폴란드 독립의 싹을 잘라놓기 위해서였다. 4월부터 대대적인 학살이 시작됐고, 트럭에 실린 시신은 소련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숲 일대에 집단 매장됐다. 수용소별로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밤새도록 진행된 처형은 노동절인 5월 1일을 빼고 두 달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손을 뒤로 묶은 수감자의 뒷덜미에 권총을 발사했는데, 무기로는 소련제 권총 대신 독일제 7.65㎜ 발터 권총이 사용됐다. 소련제는 반동이 심해 계속 발사하면 손목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형된 인원이 총 2만2436명이다.

43년 카틴 숲 집단매장지가 우연히 발견됐지만 소련은 나치 독일의 소행이라며 발뺌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소련의 협력이 필요했던 미국과 영국도 애써 진상을 외면했다. 해방 후 폴란드 공산 치하에서도 카틴은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금칙어(禁飭語)였다. 냉전이 끝나가던 89년에야 소련은 스탈린의 지시로 카틴 숲 대학살이 자행됐음을 시인했고, 90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관련 비밀문서 183건 중 일부를 공개했지만 지금도 116건은 국가기밀이란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또 카틴의 학살은 나치의 유대인 인종학살과는 다르며, 관련자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폴란드인에게 카틴은 희생과 순교의 상징이다. 70년 후 그곳을 찾은 대통령 일행이 전원 현장에서 사망했으니 기막힌 역사의 악연이 아닐 수 없다. 카친스키 일행은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착륙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것이지 영웅적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틴에 대한 폴란드인의 집단 무의식은 탑승자 전원을 순교자로, 카친스키 대통령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순교의 제단 앞에서 이성은 빛을 잃는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우리는 46명의 젊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우리 또한 사건의 진상과 실체보다 순교와 희생을 앞세우는 집단 무의식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벌써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외치는 복수심과 적개심이 스멀거리고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최종 판명된다면 마땅히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그러면 다 되는 것인가”라고 이성은 묻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화산재의 위험을 무릅쓰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카친스키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의 죽음을 계기로 러시아 공영방송은 카틴의 비극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다. 카틴 숲 대학살의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고,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함으로써 더 이상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카틴 숲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일 것이다. 진상조사를 통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단순한 보복을 넘어 다시는 그런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 관계를 바꿔나가는 것, 그것이 천안함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 아닐까.

글=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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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